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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첫 인상

 이란의 정신적 지도자 이맘 호메이니와 하메네이
이란의 정신적 지도자 이맘 호메이니와 하메네이 ⓒ 이상기

테헤란 이맘 호메이니(Imam Khomeini) 국제공항의 약자는 IKA다. 도시 이름의 영문 표현이 아닌, 사람 이름의 영문표현이 들어간 특별한 예다. 이맘 호메이니가 이란 현대사에서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공항의 이름을 통해 이란의 종교지도자 이맘 호메이니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이란은 세속적인 정치를 정신적인 종교가 이끌어 가는 신정(神政)을 펼치고 있다. 그 때문에 이슬람의 전통과 율법을 가장 잘 지키고 있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공항에서 만나는 인물 사진도 이맘 호메이니와 하메네이(Khamenei)다. 하메네이는 호메이니가 죽은 1989년부터 이란의 정신적인 지도자인 이맘이 되었다. 호메이니가 단호하고 지적인 모습이라면, 하메네이는 상대적으로 온화하고 인간적인 모습이다. 입국장에서 비자를 확인하는 아주 간단한 절차를 거친 다음 공항을 빠져나오니 현지인 가이드 다리우쉬(Daryoosh Minoui)가 기다리고 있다. 영어, 독일어, 에스파냐어에 능통하고 역사와 문화에 해박한 투어 가이드다.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공항
테헤란의 이맘 호메이니 공항 ⓒ 이상기

그와 함께 버스를 타고 테헤란 시내로 향한다. 테헤란 공항은 시내에서 남쪽으로 50㎞ 떨어져 있다. 그래서 호텔까지 가는데 한 시간 정도 걸린단다. 중간에 이맘 호메이니 영묘를 지난다. 조명을 해서 신비스럽다. 세 개의 돔과 네 개의 미나레트가 분명히 보인다. 이곳이 호메이니 영묘라고 하지만, 그곳에는 그의 아내와 자식 그리고 1979년 이슬람 혁명에 참여한 인물들이 함께 묻혀 있다고 한다. 그곳은 이슬람학 연구소, 문화센터, 쇼핑몰로 그 용도를 넓혀가고 있다. 완성되면 그 면적이 20㎢에 이를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녹색궁으로 가보니

 사드 아바드궁의 조형물
사드 아바드궁의 조형물 ⓒ 이상기

테헤란 시내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에 일어나니 하늘이 파랗고 날씨가 좋다. 그런데 아침 기온이 영하다. 더운 나라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 그것은 이란의 주요 도시들이 해발 1000m 이상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테헤란도 해발 1184m에 위치한 고원도시다. 우리의 첫 일정은 테헤란 북쪽 타즈리쉬(Tajrish) 지역에 자리 잡은 사드 아바드 궁전이다. 사드 아바드궁은 팔레비 왕조시대 조성된 여름궁전으로 현재는 복합 박물관 단지가 되었다.

건물이 모두 18개나 있으며, 그 중 중요한 건물이 녹색궁과 백색궁, 박물관과 미술관이다. 우리는 그 중 녹색궁과 백색궁을 보기로 한다. 그것은 이 두 궁전에 이란의 현대 왕조인 팔레비(Pahlavi) 왕가의 삶과 역사가 스며있기 때문이다. 사드 아바드 궁전이 있는 이곳 다르반드(Darband) 지역에는 아직도 눈이 남아 있다. 궁전 주변의 가로수는 플라타너스다. 우리는 북서쪽 끝에 있는 녹색궁으로 향한다. 주변에 오미드바르(Omidvar) 형제박물관과 아흐마드 샤(Ahmad Shah) 궁전이 있다.

 녹색궁
녹색궁 ⓒ 이상기

우리는 이들의 외관을 살펴보고 나서 녹색궁으로 향한다. 녹색궁의 원래 이름은 샤반드궁(Shahvand Palace)이다. 1923년 레자 샤가 이것을 구입해 1929년까지 궁전으로 리노베이션해 계속 사용했다. 이때 잔잔(Zanjan) 지역에서 나는 녹색 진주석으로 외벽을 치장하면서 녹색궁으로 불리게 되었다. 2층 건물로 면적은 1200㎡다. 이 궁전에서 가장 흥미 있는 곳은 마슈하드 공방에서 제작된 카펫이 깔려 있는 거울의 방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은 근현대 이란의 궁전이 대부분 거울의 방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거울의 방이 대개 접견실 또는 알현실에 해당하는데, 그것은 관리나 사신들에게 빛남과 화려함을 보여주려는 의도로 분석된다. 이곳에서는 창문을 통해 테헤란 시내를 내려다 볼 수 있다. 녹색궁의 관람은 북쪽 입구로 들어가 먼저 2층부터 하게 되어 있다. 2층에 바로 거울의 방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 연회실, 식당, 침실 등 생활공간이 있다.

 거울의 방
거울의 방 ⓒ 이상기

이곳의 가구에서는 유럽풍이 느껴진다. 가구뿐 아니라 샹들리에, 시계, 화병, 크리스탈 제품, 그림 등 대부분이 프랑스에서 수입된 것이다. 이들 실내장식물은 루이 16세 때부터 나폴레옹 때까지 작품으로 로코코 양식 계열이다. 우리는 녹색궁을 관람하면서 흰 터번을 쓴 물라(Mullah)들과 만날 수 있었다. 물라라고 하면 이슬람 신학과 법학을 공부한 성직자들로 신도들의 존경을 받는다. 그들은 우리 팀에게 호의를 보이며 말을 걸고 함께 사진촬영하길 원하기도 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이란 사람들이 굉장히 사교적이고 개방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폐쇄적이고 호전적인 나라가 아니었다. 비자 발급이 조금 까다로워서 그렇지, 여행객에게는 아주 호의적이었다. 궁전 내부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궁전 남쪽 정원으로 가게 된다. 그것은 그곳에서  앞에 펼쳐진 사드 아바드 궁전의 여타 건물과 정원을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더 먼 쪽을 바라보면 테헤란 시내가 눈에 들어온다. 또 북쪽으로는 알부르즈 산맥의 눈 덮인 산을 볼 수 있다.

다리만 남은 동상: 잠시 1979년으로

 페르시아 신화 속의 영웅 아라쉬
페르시아 신화 속의 영웅 아라쉬 ⓒ 이상기

녹색궁에서 입구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하얀색 벽을 가진 궁전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이 사드 아바드 궁전에서 가장 큰 건물로 무하마드 레자 샤의 공식 여름궁전이었다. 이곳의 공식 명칭은 멜라트궁(Mellat Palace)이지만 사람들은 녹색궁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백색궁이라고 부른다. 이 궁전은 팔레비 왕가의 집무실과 거주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에는 궁전박물관과 예술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부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는 녹색궁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사진을 마음대로 찍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백색궁은  2164㎡의 대지 위에 3층으로 지어져 있다. 연면적이 5,000㎡나 되며, 연회실, 회의실, 식당 등 큰 방이 10개나 된다. 그 중 식당이 가장 커서 220㎡나 된다. 백색궁에는 모두 54개의 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궁전 안으로 들어가기 전 우리는 두 개의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하나는 페르시아 신화 속의 영웅적인 궁수(활잡이) 아라쉬(Arash)다. 그는 저 먼 곳을 향해 활을 쏘려고 활줄을 힘차게 당기고 있다.

 레자 샤 동상의 하반신 다리
레자 샤 동상의 하반신 다리 ⓒ 이상기

또 다른 하나는 팔레비 왕조의 레자 샤의 동상 하반신 두 다리다. 이것은 1979년 이슬람 혁명 때 군중들에 의해 파괴되었고, 수난의 본보기로 두 다리만 남겨지게 되었다. 이처럼 예술은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해 존재하기도 하지만, 역사적 교훈을 주기 위해 남겨지기도 한다.

레자 샤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 편을 들다, 영국과 러시아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1941년 8월 실각한다. 그해 9월에는 왕위를 아들 무하마드에게 물려주고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로 망명해 그곳에서 1944년 생을 마감한다. 무하마드 레자 역시 이슬람 혁명으로 실각해 1979년 1월 이집트로 망명했고, 1980년 7월 카이로에서 생을 마감한다.

백색궁으로 들어가 보니

 백색궁
백색궁 ⓒ 이상기

백색궁은 2층과 3층이 멜라트 궁전박물관으로, 1층이 무하마드의 왕비인 파라(Farah) 박물관과 영상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궁전박물관은 계단을 통해 2층으로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입구를 지나 현관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홀이 나온다. 이곳을 중심으로 집무실, 대기실, 접견실, 침실, 식당, 당구실 등이 있다. 접견실에는 무함마드 팔레비 부부와 아들 레자의 흉상이 놓여 있다.

내부 건축은 이란-비잔틴 양식을 따랐고, 장식과 집기류는 파라 왕비의 취향에 따라 프랑스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집무실과 접견실의 의자와 소파 그리고 책장 등은 요즘말로 하면 앤틱 가구다. 침대에는 머리 부분에 천이 드리워져 있다. 식당에는 식기와 다기까지 완벽하게 갖춰져 있다. 당구실에는 당구대와 당구채가 갖춰져 있다. 2층을 보고 나면 계단을 통해 자연스럽게 3층으로 올라간다.

 그랜드 홀
그랜드 홀 ⓒ 이상기

3층 가운데는 그랜드 홀이 마련되어 있다. 바닥은 대리석으로 되어 있고, 가운데 카펫이 깔려 있다. 창문이 있는 벽에는 4개의 유화가 걸려 있다. 이 그림은 페르시아 신화 속 이야기를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을 통해 페르시아 민족이 말을 타는 유목민임을 알 수 있다. 말을 탄 영웅이 활로 사자를 쏘아 잡고, 코끼리를 타고 온 적장을 무찌른다. 그리고 넓은 초원에서 말 사냥을 한다.

이곳에는 또 대연회장, 접견실, 휴게실, 기념품 및 문화재 진열장 등이 있다. 대연회장의 식기는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 수입된 것으로 보인다. 가구 역시 유럽 스타일이다. 그렇지만 카펫만은 타브리즈, 케르만, 마쉬하드 등 이란의 카펫 명가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마쉬하드 아무 오글리(Amu Oghli) 공방에서 만든 145㎡ 짜리 카펫이다. 이곳에 전시된 문화재는 대부분 도자기인데, 그 역사가 기원전 4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테라코타도 있다.

 최고급 식기와 다기
최고급 식기와 다기 ⓒ 이상기

백색궁을 나오면 그 앞에 사드 아바드 왕실 기록박물관이 있다. 그리고 광장 건너편에는 미술, 조각, 건축박물관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들 박물관을 생략한다. 그것은 전시물의 가치와 중요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다음 행선지는 니야바란 지역에 있는 궁전박물관이다. 니야바란 궁전은 카자르시대 여름궁전으로 만들어졌고, 무하마드 레자 팔레비 시절 왕가의 사저로 사용되었다. 니야바란은 페르시아어로 갈대(Reed)를 말한다. 이를 통해 갈대 무성한 산록이 궁전으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걸 상전벽해(桑田碧海)라 한다.

덧붙이는 글 | 팔레비 왕가의 몰락 원인은 국제정세를 잘못 판단하고, 민심에 반하는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아버지인 레자 샤와 아들인 무하마드 레자 모두 망명이라는 이름으로 고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유해는 아직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맘 호메이니 공항#사드 아바드 궁전#녹색궁#백색궁#팔레비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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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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