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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을 하거나 자발적 하방을 해서 마을에서 먹고 살려면, 무엇보다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마을이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마을학개론'은 '마을에서 사람답게 먹고 사는 법'을 공부하자는 것이다. 그러자면 마을, 공동체, 시민, 기업, 정책, 사회 등에 대해 다시, 새로, 열심히 공부할 필요가 있다. 공부에 그치지 말고 현장에서 행동하고 실천하고 체화해야 한다. 그러면 마침내 마을에서 사람답게 먹고 살 수 있다.

요즘 도시에서도 마을만들기, 또는 마을공동체 활동이 유행이다. 하지만 도시는 '마을'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동네'라고 부르는 게 타당할 것이다. "마을이 세계를 구한다"던 마하트마 간디도 농촌을 수탈해 이룩된 도시를 마을로 생각하지 않았다. '마을은 주로 시골에서 사람사는 집들이 모여있는 곳'이라는 사전의 뚜렷한 물증까지 있다.

제주 한달살이 마을학교  마을학개론 강의- 제주 서귀포 한달살이마을학교
제주 한달살이 마을학교 마을학개론 강의- 제주 서귀포 한달살이마을학교 ⓒ 정기석

모름지기 '마을'이려면 최소한 삶(생활)과 일(생업)이 하나의 시공간에서 조화롭게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거기에 쉼(휴식)과 놀이(문화)까지 보태 누릴 수있다면 더 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먹고 살기 위해 건설된 생업과 소비의 터전'인 도시의 '동네'에서는 '먹고 사는' 생업에 매달리느라 앞만 보고 살아가게 된다. 삶과 일이 따로 떨어지고, 삶이 일에 치여 살게 된다. '먹고 사는 일' 때문에 '사람 답게 사는 삶'은 뒷전으로 밀린다.

하지만 도시의 헛된 욕심과 부질없는 미련, 그리고 얄팍한 체면을 내려놓은 시골의 '마을'에서는 '사람'이 보인다. 자연도 눈에 들어온다. 먹고 살려고 노동을 하다가도 멈춰서서 뒤도 돌아보고 옆을 살펴볼 여유가 생긴다. 삶과 일이 서로 하나 되고, 여기에 쉼과 놀이가 보태지면 비로소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에 적합한 시공간이 된다. 마침내 '마을'이 된다.

영암 선애빌 마을학개론 강의 - 영암 선애빌 생태마을
영암 선애빌마을학개론 강의 - 영암 선애빌 생태마을 ⓒ 영암 선애빌

마을학개론은 '먹고 사는 법'

그럼에도 도시 사람들은 선뜻 '사람 사는 마을'로 내려가지 못한다. 막상 마을로 내려가자니 '뭘 하며 살아야 할지,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불안감과 두려움이 앞선다.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현실적으로 가로막는다. 그렇게 우물쭈물하다 어느새 일도 없어지고 삶도 황혼으로 밀려나 자칫 도시의 잉여인간으로 전락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인생을 도시난민으로 쓸쓸히 마감하게 된다.

결국 '먹고 사는 게' 문제다. 농사를 짓든, 농사를 짓지 않든 '마을에서 먹고 사는 법'이 열쇠다. 마을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법과 제도는 이미 주변에 넘친다. 마을만들기법, 마을공동체법, 사회적경제기본법, 협동조합법, 귀농법, 심지어 농업의 융복합 ICT 스마트공업화법 등. 하지만 법이나 제도, 지원사업보다 먼저 할 일이 있다.

바로 농민 기본소득, 무상교육, 무상의료, 무상급식, 고용안정, 보편적 사회복지 같은 사회복지 안전망이다. 그리고 '먹고 사는 생활의 기술을 가르치는 직업학교', '지역공유 사회적경제 자산은행', '지역단위 협동연대 농업·농촌경영체', '마을공동체와 사회적경제의 융합 플랫폼' 같은 사회적 자본 발전소를 먼저 갖추어야 한다. 그러면 '마을에서 먹고사는 문제'는 저절로 풀릴 수 있다. 

마을이란, 그렇게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사람들과 함께 먹고 살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기대고 돌보고 보살필 수 있는 곳이라야 한다. 그렇게 삶과 일, 그리고 쉼과 놀이가 하나되는 곳이라야 한다. '마을이란 무엇인지', '공동체를 왜 하는지', '지역사회는 어디에 있는지', '마을자치를 어떻게 할지' 끊임없이 묻고 답을 구해야 비로소 마을은 보일 것이다.

귀산촌학교  마을학개론 강의-서울 생명의 숲 귀산촌학교
귀산촌학교 마을학개론 강의-서울 생명의 숲 귀산촌학교 ⓒ 생명의 숲

'마을시민'과 '마을기업'이 살리는 '대안마을' 

여기서 '마을학개론'을 공부하는 학생은, 실천하고 체화하는 주체는 '마을시민'이다. 마을시민이란 지역공동체적 사회자본, 혁신적 인적자본으로서, 마을공동체와 지역사회에서 주체적 역할을 감당하는 농촌 또는 지역 주민을 말한다. 특히 마을시민은 마을공동체사업을 관리하고 경영하는 역량을 갖춘 책임있는 사업주체이기도 하다. 흔히 귀농인들도 마을공동체사업을 통해 외지인이나 주변인이 아닌 마을공동체의 권리와 책임의 주체로 거듭 나게 된다.

마을시민이 마을에서 먹고사는 도구나 무기는 여느 농부들처럼 낫과 호미가 아닐 수 있다. '저마다 도시의 소시민으로 용케 버티면서 챙겨둔 생활의 농기구'를 꺼내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치열한 도시의 직업전선에서 갈고 닦은 경험, 기술, 노하우, 지식정보 같은 빛나는 무형자산'들이다. 이 '먹고 사는 데 요긴하게 소용되고 작동하는' 생활의 무기들만 잘 챙겨서 마을로 내려온다면 주체적인 마을의 시민으로 예측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생활귀농'이 가능하다.

마을연구소 마을학개론을 집필하기 위한 각종 마을학 관련 지식정보자료들
마을연구소마을학개론을 집필하기 위한 각종 마을학 관련 지식정보자료들 ⓒ 정기석

마을시민으로 열심히 마을에서 살다보면 '마을주의자'의 경지에 오르기도 한다. 마을주의자란 국가와 정부. 자본주의와 정치경제학의 구조악에 휘둘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으로서 마을 속으로 뛰어 들어가, 마을사람들과 더불어 부대끼며 생활하는 사람들이다. 마음은 정의롭고 양심적이고, 말과 글은 용기있고 지혜로우며 슬기로우면서 행동은 이타적이고 공동체적이다. 나보다는 남과 이웃과 지역사회와 세상을 좀 더 사람이 살만한 곳으로 바꾸려는 사회혁신적인 참사람이다.

마을시민들과 마을주의자들이 힘과 뜻을 모으면 경제적, 문화적, 교육적, 생태적 마을기업이 가능하다. 마을기업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경제단위체'로서 기업을 뜻하는 게 아니라 '비록 자본주의 사회와 체제에 놓여 있지만, 마을 사람들이 서로를 위해, 마을공동체를 위해, 더불어 설립하고 경영하는 지속발전가능한 사업단위체'를 추구한다.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자활기업 등의 형식을 불문하고 마을공동체사업의 사업주체인 사회적 경제조직을 의미한다.

가령 '친환경 농업기반, 농촌경영체 중심, 도·농상생 생활·생태공동체' 같은 사업체다. 마땅히 자본금은 마을 공동기금, 마을 주민들의 자발적인 투자금, 그리고 현금에 상응하는 온갖 현물을 종자돈으로 한다. 모자라는 시설자금과 운영자금은 정책의 선의를 의심하지 않는 각종 정부지원사업의 보조금으로 마련할 수도 있다. 농사를 잘 아는 원주민 농민이 친환경 영농을 맡고, 기획, 관리, 재무, 마케팅, 생산가공 등은 도시의 귀농인이 역할분담하면 최적의 업무조직이 가능할 것이다,

보은 선애빌  마을학개론 간담회-보은 선애빌생태마을
보은 선애빌 마을학개론 간담회-보은 선애빌생태마을 ⓒ 보은 선애빌

'대안마을'에서 '대안농정'으로 '대안사회'를

'마을시민과 마을주의자'들이 '마을기업'을 꾸리면 '대안마을'은 저절로 만들어질 것이다. 그동안의 마을만들기가 그토록 여러웠던 이유는 '사람'과 '조직'이 없는 사막같은 농촌에 자꾸 '마을'을 토목하고 건축하고 조경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을공동체사업의 3대 사업주체인 '행정, 주민, 전문가'의 자세와 역량이 역부족이었다. 행정은 진정성과 공정성이 미흡하다. 주민은 이해도와 참여도가 부족하다. 전문가의 전문성은 기대에 못 미쳤다. 심지어 사기업들은 수지타산을 맞춰야하니 현장에서 성실성과 도덕성을 챙기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한국적 마을 만들기'는 겉으로는 '농촌관광지화' 또는 '생태공원화'와 다르지 않다. 하드웨어 토건사업에 치중해 외부인의 구경거리나 체험거리에 불과한 관광지, 공원 등이 전국 도처에 양산됐다. 본디 마을은 관광지나 공원이 될 수 없다. 마을주민들이 대대로 생활하고 생존해온 생활공간으로서 후손을 위해 순정한 삶의 터전으로 보전해야 한다. 기왕의 '토건적 마을 만들기'는 '사회생태적 마을 살리기'로 패러다임 자체를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마을이 품고 있는 사회적이고, 인문적이고, 문화적인 요소와 자원들이 융·복합적으로 결합되어 종합예술 작품같은 마을로 승화될 수 있다.

'대안마을'에서는 마땅히 '대안농정'이 작동되어야 한다. '돈 버는 농업' 이 아닌 '사람 사는 농촌'의 농정기조가 적용되어야 한다. 이름하여 '협동연대 대안국민농정'이라는 농정의 전략과 해법이 필요하다. 나라 전체의 인구수, GDP, 예산 등에서 5퍼센트 정도 밖에 안 되는 '농민만의 한계농정, 고립농정'이 아니라 나머지 95퍼센트의 노동자·도시민·소비자·국민도 농민과 협동하고 연대하는 100퍼센트 '농부의 나라'로 함께 가야 한다.

마을연구소  마을학개론의 산실 ‘마을연구소(Comunne Lab)’-무주 초리넝쿨마을
마을연구소 마을학개론의 산실 ‘마을연구소(Comunne Lab)’-무주 초리넝쿨마을 ⓒ 정기석

'농부의 나라'로 가려면 법이나 제도, 정책이나 전략을 고치는 정도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아예 농정의 틀과 패러다임부터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이름하여 '국민농정', '공익농정', '지역농정', '협동농정'의 4대 농정전환 패러다임으로 논밭을 갈아엎는 '거대한 전환'을 해야 한다.

우선 농민이 국민의 생명을 위하는 농심으로 농사를 짓듯, 국민은 농민의 생활을 자기 가족의 일처럼 걱정하는 '국민농정', 국민의 생존권과 국가의 식량주권을 지키는 농업은 국가기간산업 대접을 하는 '공익농정', 국가 단위에서는 당장 할 수 없는 일도 지역 단위, 마을 단위에서는 우리끼리 해낼 수 있는 '지역농정', 소농과 가족농이 물심양면으로 서로 돕는 '협동농정'을 해야 한다. 

그리고 농민과 지역주민들 스스로 '사회민주적 농민', '사회경제적 농업', '사회생태적 농촌'으로 농정을 집행하는 동력의 축과 방향을 크게 고쳐야 한다. '사회민주적 농민'이란 나와 내 가족만 생각하지 않고, 남과 공동체를 더불어 생각하는 농민을 말한다. '농사 짓는 농민'이 '농사 짓지 않는 남과 공동체'를 더불어 생각하는 '사회적 농민'으로 다시 일어서야 한다.

또  소농, 가족농으로 흩어져 개별화된 농민들이 협동조합 등 농업공동체를 중심으로 협동하고 연대하는 '사회적 농업'의 힘을 발휘해야 한다. 그리고 농촌마을을 관광지화, 공원화로 형해화시킨 '토건적 마을 만들기'의 주술에서 깨어나 '사회생태적 농촌'으로 되살려야 한다.

'농부의 나라'는 상상의 산물이나 한여름밤의 꿈이 아니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등 EU의 선진국들이 지금 그렇다. 결론적으로, 그리고 확정적으로 단언하자면, 오늘날의 유럽을 '행복사회', '농부의 나라'로 이끈 동력은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과 사회 안전망(Social Safety Net)의 힘이다.

유럽의 정치인들과 유럽의 시민들은 어떤 훌륭한 법이나 정책이나 제도 이전에 탄탄한 사회적 자본과 촘촘한 사회 안전망부터 먼저 갖추어두었던 것이다. 그렇게 유럽에서는 국가와 정부가 국민들을 돌보고 보살피며, 국민들은 서로 협동하고 연대하고 있다. '행복사회', '농부의 나라' 유럽으로 난민을 떠날 것인가, 조국을 '행복사회', '농부의 나라'로 바꿀 것인가. 오직 우리 손에 달렸다.

마을당문고   마을, 공동체, 시민, 기업, 정책, 사회 등에 대해 집필한 이른바 ‘마을당문고Commun Books'
마을당문고 마을, 공동체, 시민, 기업, 정책, 사회 등에 대해 집필한 이른바 ‘마을당문고Commun Books' ⓒ 정기석

덧붙이는 글 | ※ 마을학개론(마을에서 먹고 사는 법) : 귀농을 하거나 자발적 하방을 해서 마을에서 먹고 살려면,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마을이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마을, 공동체, 마을시민. 마을기업, 대안마을, 대안농정, 그리고 대안사회를 열심히 공부해서 체화해야 한다. 그러면 마을에서 사람답게 먹고 살 수 있다.



#마을학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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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연구소(Commune Lab) 소장, 詩人(한국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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