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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력을 하란 말이야!"


12.5%. 2016년 2월 청년실업률이다. 1999년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다. 한국통계진흥원에 따르면 체감 실업률은 21.1%다. 내수침체와 수출 부진 등 경제는 회복될 기미가 안 보이며, 취업의 문은 좁아져만 간다. 좁은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청년들은 스펙을 쌓고 있다. 이런 청년들에게 더 노력하라는 게 바로 '노오력'이다.

 

청년들이 노력해도 힘들 정도로 우리 사회는 망가져 있다. 사회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연애, 직업, 집 등은 인생의 목표가 됐다. 그런데도 '노오력'은 문제의 원인을 사회가 아닌 청년 개인에게만 묻는다. 취업 실패의 이유는 청년이 강하지 않고, 노력을 덜 했기 때문이다. 누구의 말마따나, 청년들은 '노오력'의 질서가 지배하고 있는 사회에 살고 있다. 그렇다고 청년들은 사회 탓만 할 수도 없다. 당장의 닥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하며, 열악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노력을 멈춰선 안 된다.


여기 그런 청년들을 응원하는 광고가 있다. POSCO(포스코)의 청년 예찬 캠페인의 일환인 'I AM #STEELSTRONG'이다. 광고의 전반부는 청년들에게 가해지는 '노오력' 류의 압박과 편견들로 시작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벌써 집에 가? 어떻게 남을 이기겠다는 건지' 등의 발언이 청년들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광고의 후반부는 전반부와 정반대로 진행된다. 복싱을 하는 청년이 '노오력'에 한 방을 날리며 이야기는 반전된다.

 

다양한 청년들은 각자의 강함을 보여주며 세상의 편견에 '훅'을 날린다. '청년은 강하지 않다'는 세상의 압박 속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청년들의 모습은 강한 울림을 준다. 청년들의 모습은 '나는 거침없어 강하다, 나는 나다워서 강하다' 등의 문구와 함께 등장하며 감동의 깊이를 더한다.


나는 야근하기 때문에 강하다?


하지만 한 청년의 모습은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광고의 전반부에서 세수로 잠을 깨며 '얘는 곱게 자라서 얼마 못 버틸 거야'라고 발화하는 청년이다. POSCO의 공식 블로그에 의하면 이 청년의 설정은 인턴이다. 후반부에서 인턴 청년은 다시 등장한다. 청년은 밤늦게 야근하고 있다. '나는 끈질겨서 강하다'는 문구가 청년의 모습과 겹친다. 이 시점에서 '야근하지 않으면 끈질기지 않고, 강하지 않다'는 서사가 발생한다. 과연 야근하는 인턴 청년의 모습은 끈질긴 것이며 강함을 보여주는 것일까?


청년 인턴의 야근은 대표적인 청년착취행위로 알려져 있다. 밤 10시, 11시 야근은 기본이다. 주말 출근도 종종 있다. 월급은 70, 80만 원 남짓의 '열정페이'에 불과하다. 이는 일부 청년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현재를 살아가는 대다수 청년 인턴들의 모습이다. 청년들은 스펙에 한 줄이라도 늘리기 위해 공부, 인턴, 계약직 등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다. 야근 강요에도 거절하지 못하며, 스스로 착취를 선택한다. 그 만큼 취업전선의 앞날이 밝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러한 착취가 자연스러운 건 절대 아니다. 야근하면서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 건 착취일 뿐이다. 하지만 야근하는 청년의 모습과 '나는 끈질겨서 강하다'는 문구의 결합은 이를 자연화시킨다. 취업을 위해 인턴을 하며, 야근하는 일은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오히려 야근하지 않는 청년들은 강하지 않고, 노력이 부족하다고 평가를 받는다. 야근은 착취의 모습을 벗고 청년이 마땅히 해야 할 노력의 범주에 들어가게 된다. 야근하지 않는 청년들에게는 '노오력'하라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또다시 '노오력'


위 관점에서 볼 때, 광고 속 나머지 다른 청년들의 모습은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지금 청년들이 겪는 문제들(등록금, 주거비용, 취업 등)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풀지 못한 적폐의 결과다. 청년 개인이 잘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이다. 물론 개인의 노력은 중요하다. 취업 등의 결과는 정당한 노력의 대가로 지불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지금 청년문제, 특히 취업문제는 사회 차원에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단지 청년이 약해서 못 버티는 게 아니다. 하지만 광고의 청년들을 스스로를 강하다고 표현한다. 마치 강하지 않은, 노력하지 않는 청년이 문제인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청년에 대한 세상의 압박과 편견을 순전히 청년 개인의 강함으로 돌파하라는 광고의 메시지는 사회의 '노오력' 질서에 의해 정당성을 얻는다. 청년문제는 청년의 노력 부족, 강하지 않은 결과인 반면 사회의 책임은 거세된다. '노오력'만이 남게 된다.


포스코의 공식 블로그에는 광고의 취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영상이 보여주는 청춘 본연의 강함이, 지금 청춘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보는 분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광고는 치열하게 살고 있는 청년들에게 '노오력'만을 외치며 착취를 자연화시킨다. 우리 사회 적폐의 책임을 안고 있는 자들은 어디에 있나. 적어도 광고에 등장하지는 않는다.


#노오력#I AM #STEELSTRONG#야근#강함#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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