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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산도는 새들에게 이동과정에서 잠시 쉬어가는 휴게소 같은 곳이다. 새들은 흑산도에서 쉬고 먹이를 보충하여 다시 수천km를 이동하여야 한다.
지난달 18일, 국립공원위원회에서 흑산도 소형공항 건설 심의가 진행되어 "보류"로 결과가 나왔다. 환경운동연합은 심의 전날 기자회견에서, 소형공항 건설이 환경이나 경제면에서 모두 부적합하다고 주장하며 국책연구기관의 반대의견들을 고의로 누락하고, 찬성의견 자료만 국립공원위원회 위원들에게 제공한 것을 규탄했었다.

나에게 흑산도는 꿈의 섬이었다. 처음 흑산도에 발을 디딘 것은 1996년 가을이었다. 벌써 20년이 되었다. 탐조라는 것을 처음 시작하던 해였다. 새를 보기 위해 처음 배를 타봤고, 약 3시간여를 달려 흑산도에 도착했다. 선배와 둘이 간 흑산도의 일정은 단 3일이었다. 매년 선배가 묵는다는 이름없는 할머니의 민박집에 대충 짐을 부리고, 쌍안경과 망원경, 새도감을 들고 무작정 길을 나섰다.

익숙하게 이동하는 선배의 뒤를 따라 언덕을 넘고 또 언덕을 넘으며 만난 새들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대륙검은지빠귀, 검은목지빠귀, 촉새, 꼬까참색, 솔딱새, 제비딱새, 울새, 섬개개비 등 내륙지역에서는 만날 수조차 없는 새들의 천국이었다. 그 중 으뜸은 역시 매와 흰죽지수리였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 흰죽지수리와 매가 같은 나무에 앉아서 먹이를 노려보는 모습은 20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흑산도에서 만날 수 있는 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매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흑산도이다.
▲ 흑산도에서 만날 수 있는 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매를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흑산도이다.
ⓒ 이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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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환경운동연합에 따르면 흑산도 멸종위기야생생물 I, II급 조류 29종, 천연기념물 조류 23종 등 총 43종의 법정보호조류가 서식하는 지역으로 확인되었다. 이동시기 숲이나 대지 밭에서 만난 새 종수만 90여종에 이르렀다. 3일간 본새가 90종이나 되는 것이다. 이 중에 난생 처음 보는 새들만 50여종이 넘었다. 새들을 보고 또 보고 눈에 익히고 또 익혔던 곳이다. 때문에 나는 매년 가을 흑산도를 찾아가 새들을 만났다.

이렇게 자주 찾다보니, 예리의 저수지 위에서 만난 물장군도 만날 수 있었다. 왜가리가 먹다 삼키지 못하고 뱉은 물장군이었다. 보자마자 우선 크기에 놀랐다. 일반 개아제비 등과 비교해서 훨씬 컸기 때문이다. 물장군을 실물로 본 적은 흑산도가 마지막이었다.

흑산도는 배에서 비행하는 슴새를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먼바다라는 것을 알려주는 새가 바로 슴새이다. 까치가 손님을 반기듯이 먼바다에 있는 탐조인에게는 등대같은 새가 바로 슴새이고, 이런 슴새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흑산도인 것이다.

흑산도에 찾아오는 철새들은 봄과 가을철 흑산도에서 영양을 보충하고 먼길을 떠나는 나그네 새들이 대부분이다. 수천km 비행을 통해 먼길을 여행온 새들은 흑산도에 도착하면 힘이 없다. 먹이를 바로 먹지 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

흑산도는 새들에게 이동과정에서 잠시 쉬어가는 휴게소 같은 곳이다. 새들은 흑산도에서 쉬고 먹이를 보충하여 다시 수천km를 이동하여야 한다. 휴게소가 사라지면 연료가 고갈되거나 졸음운전 등으로 바다에 추락하여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 나그네새들의 운명이다. 때문에 공항 건설은 새들에게 죽음을 의미한다.

흑산도 공항 예정부지 작은 섬에 공항만 가득 하다.
▲ 흑산도 공항 예정부지 작은 섬에 공항만 가득 하다.
ⓒ 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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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철새들의 낙원으로 유지되어야 할 공간에 공항이라니? 참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철새들의 서식처가 훼손되는 것은 물론 흑산도의 자연경관마저 심각하게 훼손될 수 밖에 없다. 경관이 훼손되면 흑산도를 찾는 관광객마저 발길을 끊게 될 것이다. 흑산도는 배로 들어가도 충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항이 아니라 경관을 보전할 방법을 찾아야 관광객에게 지속적으로 사랑받을 수 있는 곳이 흑산도인 것이다.

환경운동연합의 집회모습 공항 건설 반대 퍼포먼스 중인 모습
▲ 환경운동연합의 집회모습 공항 건설 반대 퍼포먼스 중인 모습
ⓒ 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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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안건이 보류판정을 보였지만 사업이 끝난 것은 아니다. 흑산도 소형공항 건설 사업 건이 국회 예산 통과를 앞두고 있고, 관련 절차가 국회에서 여전히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보류결정에 만족할 수 없는 이유이다. 환경운동연합은 타당성 검증이 매우 부족한 만큼 관련 예산 증액을 금하고 오히려 삭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타당성 뿐만 아니라 철새들의 멸종을 가중시킬 흑산도 소형공항 사업은 이제 중단되어야 한다. 국책 사업이라는 미명하에 경제성과 환경성이 없는 사업을 강행하여 새들의 무덤으로 흑산도를 만드는 일이 없기를 간곡히 바란다. 나는 흑산도에 비행기를 타고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는 배를 원한다!



#흑산도#소규모 공항#철새#국립공원위원회#환경운동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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