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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대고대라고 아는가?"

상림공원에서 만난 한 어르신의 물음이었다. 함양생활 5년차에 접어들어 이제는 어느 정도 함양에 대해 안다고 자부하던 나에게 '대고대'는 생소했다.

그 어르신은 "공배마을 앞에 보면 큼지막한 바위산이 있어 그 곳이 대고대야. 예전에는 인근 모든 학교 학생들이 소풍가던 장소지. 한 번 가봐. 지금은 어찌 변했을지 모르지만..."이라고 말했다.

동기모임을 위해 고향 함양을 찾은 어르신. 지곡 공배마을 출신으로 대고대에 얽힌 전설과 과거의 추억들에 대해 설명하는 어르신의 눈에는 옛 추억이 가득 깃들었다. 그렇게 어르신과 만남 이후 '대고대'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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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고대(大孤臺)는?

지곡면 공배마을에서 수동 방면으로 500m 정도 가다보면 방덕농원이 나온다. 그 반대편을 바라보면 들 한가운데 나무들로 둘러싸인 야트막한 야산이 바로 대고대(大孤臺)다. 88고속도로 남강교 바로 아래라 찾기는 힘들지 않다. 대고대는 뜻 그대로 '크고 외로운(홀로 떨어진) 넓고 평평한 곳'이다.

전설에 따라 떠내려 온 바위라 해서 부래암(浮來巖)'이라고도 부른다. 대고대 정상부는 약 20m 정도 솟은 바위로 평탄해 수십 명의 사람이 앉을 만하며 옛날부터 유생들의 강회(講會)나 시회(詩會)로 이용되는 등 옛날의 명승지이기도하다. 정상부의 바위 면에는 추사 김정희(1785∼1856)가 쓴 '석송(石松) 추사(秋史)'라는 각자와 개은(介隱) 정재기(鄭在箕 1811-1879)가 쓴 '大高臺'라는 각자가 있다. 대고대 바로 아래에는 '청근당(淸近亭)'이라는 정자가 있으며 더 아래에 구졸암 양희(九拙庵 梁喜) 선생의 신도비가 있다.

예로부터 대고대는 유생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던 장소였다. 바로 인근에 남계서원과 청계서원 등 여러 서원들이 위치한 것만을 봐서도 서원의 유생들이 대고대를 찾아 청명옥수 남강수를 바라보며 시를 읊었을 것이다. 점필재 김종직도 대고대의 아름다움을 '구절가(九絶歌)' 제5수에서 표현했다.

灆溪西岸路縈回(남계의 서쪽 언덕길이 꼬불꼬불한데)
黃石奇峯駭馬來(황석산 높은 봉우리에 놀란 말이 오누나)
日暮花林風雨橫(날 저문 화림에 비바람이 몰아치는데)
斷雲飛過大孤臺(조각구름이 날아 대고대를 지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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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내려 온 바위 대고대의 전설

역사적 유적이나 장소 등에는 그 곳과 관련된 전설이 내려온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어온 전설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만들어진다. 마을 어르신들에게 직접 전해들은 이야기는 2가지다. 2개의 전설 모두 비슷하다. 내용의 전개만 조금 다를 뿐.

아주 먼 옛날, 마을 사람들 모두가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을 때, 강변에서 빨래를 하고 있던 아낙의 눈에 강 상류에서 이상한 것이 떠내려 오는 것이 발견된다. 그 아낙이 '바위가 떠내려 온다'라고 외치자 그 바위가 그대로 멈춰 지금의 대고대가 되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떠내려 온 바위, 즉 대고대가 아낙의 외침에 현재의 자리에 그대로 멈춰섰다는 전설이다. 또 다른 전설도 비슷하지만 더욱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옛날 한 이름 높은 고승이 이곳 인근을 지나다 "조만간 이곳에 바위가 떠내려 올 것이다. 만약 누군가 그것을 보고 아무른 말도 하지 않는다면 이곳은 향후 도읍이 될 것이고, 소리친다면 바위는 그곳에서 멈춰 설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이후 정말로 바위가 떠내려 오는 것을 본 한 사람이 '바위가 떠내려 온다'라고 소리치자 바위는 그 자리에 멈춰 서 대고대가 되었다.

다른 듯하지만 비슷한 내용의 전설이다. 움직이는 바위, 그리고 그것을 보아도 소리치지 말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금기, 금기를 깨자마자 멈춰선 바위. 그냥 단순 전설이지만 무엇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예전 우리 백성들이 이상하고 잘못된 것을 보아도 그대로 눈을 감아야 했던 상황, 아니면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과 스크랩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현재의 대고대

대고대에 올라서면 사방 10km까지 조망할 수 있다.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깨끗한 남강의 물길, 남계서원과 청계서원, 그리고 수동의 넓은 들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유림들이 시문을 읊기도 하고, 지역 주민들의 모여 휴식 및 놀이 공간 대고대의 현재의 모습을 어떻게 변했을까?

지금 현재의 모습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흉물'이다. 예전 수많은 학생들이 소풍을 와서 놀았던 대고대 주변은 논밭으로 변했다. 물론 남강과 보산천의 둑이 만들어지면서 영역 자체가 예전보다는 상당히 축소되었지만 예전 쉼터 였던 곳들이 개간되어 논밭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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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고대 앞을 지키던 예전 사찰로 사용되었던 집은 폐허로 변했다. 집 전체가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관리 자체가 되지 않았다. 집 정문에는 어느 단체에서 만든 것인지 모르는 조형물이 버티고 섰다. 마당에는 무성한 잡초가, 집은 기와가 내려앉고 문이 파손되는 등 한동안 손길이 미치지 않은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마당의 나무들도 말라 죽어 앙상한 가지만 남았다. 인근 주민의 말로는 그대로 방치된 것이 10년이 넘었다고 한다.

대고대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양희 선생의 신도비를 옆을 지난다. 뒤쪽으로 난 좁고 가파른 길을 잠깐 오르면 정자 청근당(淸近亭)이 나온다. 이곳 역시 관리가 되지 않았다. 청근당 바로 위가 정상이다. 가로 5m 세로 2~3m 규모의 정상은 무성하게 자라난 산죽으로 덮였다. 정상부에서 공배마을 쪽으로 바라보면 추사의 글씨가 눈에 들어온다.

예전에는 대고대가 강변과 연결되어 있었다지만 지금은 앞뒤로 둑이 쌓여 옛 경관은 찾아 볼 수 없다. 대고대에서 바라보는 현재의 모습은 사실 보잘 것이 없다. 저 멀리 남계서원고 한국화이바까지는 눈에 들어오지만 절경이었던 옛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게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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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고대의 현재 가치는

대고대는 현재 개인 소유이다. 그래서 더욱 관리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대고대를 공원 등으로 조성할 수 있느냐도 문제다. 왜냐면 대고대의 현재 가치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관광지나 공원 등으로 개발하기에는 부담이 많다. 마을의 한 어르신은 "예전에야 이동할 수 있는 차가 없어 멀리 더 좋은 데를 못 갔지. 지금은 훨씬 좋은데도 많은데 굳이 대고대에 가겠어? 개발은 무슨..."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함양 사람들의 옛 추억속의 장소를 그대로 방치하기에는 그 추억에 대한 무책임함이 더욱 클 수도 있다. 함양읍의 한 40대는 "고등학교 3년 간 소풍은 무조건 대고대로 갔었다. 6km 정도였던 것 같은데 먼지를 뒤집어 쓴 후 도착하면 시원한 강물에 뛰어 들고, 즐거운 곳이었다."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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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주간함양 (강대용)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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