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광장 캠핑촌에서 행사준비를 하다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리본공작실에 들러 작업을 거들었다. 2시가 막 넘었을 때 김혜경(27)씨가 놀란 모습으로 황급히 들어와 "농민 30여 분이 세종문화회관 앞에 도착해서 쉬려고 자리를 펴는데 방석을 경찰들이 뺏고 끌어내려 한다"며 누가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함께 작업을 하던 이들과 상의를 한 끝에 대형 핫팩 50개를 들고 김혜경씨가 말한 장소로 달려갔다.
곡성에서 출발한 농민들은 경찰과의 대치 끝에 은박 매트로 자리를 만들어 쪽잠을 청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뜨거운 국물이라도 먹어야 한다며 김치찌개를 끓이고 사발면에 부을 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핫팩을 꺼내 전달하자 손이 언 농민들은 비닐봉지를 뜯기 힘들어 했다. 봉지를 뜯어 전달하고 있을 때였다.
"이렇게 도와주셔서 고맙습니다."농민 몇 분이 벼를 담는 마대를 뜯은 걸로 바람을 막으며 말했다.
"별말씀을요.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핫팩을 전달한 뒤 뜨거운 국물을 나누는 모습을 확인하고 돌아서려는데 "여기 같이 뜨거운 찌개 좀 드시죠"라며 농민분이 권한다.
소주 한 잔 받고 찌개를 뜨라는 건 사양한 뒤 "경찰분들이 여러분을 오늘 밤 잘 지켜드릴 겁니다. 이들도 명령을 받아 움직이지만 속마음은 지금 우리와 마찬가지입니다. 걱정 마시고 잠시 눈 좀 붙이시죠"라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경찰에 연행된 농민도 제법 많은 모양인데 그나마 이곳에 무사한 농민들이 반가웠다.
역사를 만드는 그들의 길 막지마라왜(倭)를 불러 백성의 원성을 잠재우려 한황망한 일 되풀이 하지만은 말아라분개하여 일어선 고부의 동학군이 누구였더냐빈 쌀독 눈물로 지키는 지어미의 어진 남편이요배곯아 우는 아이의 종이호랑이 아버지였다탐욕에 눈 먼 벼슬아치들의 수탈을 견디던이 땅의 주인 농민이요 백성들었다오늘 다시 서군, 동군으로 다그쳐 나선 길사명을 망각한 자들 명령 받아진군행렬 막아서는 자들 똑똑히 지켜보라소임에 집요하지 못 하고탐욕에 집요했던 자들 채근질이야아둔한 난봉꾼 억지 부림이건만 스스로 길 끊어버린 둔한 노릇이건만혈맥의 피돌기 멈추려는 저 자들 하나 남김없이시리게 푸른 하늘에 새기고바다 다 마를 때까지 새겨 반드시 기억해두게 하라그리하여 오랜 세월이 흘러 오늘을 기억할 때누구의 조상이 역적이었는지누구의 어버이가 가슴 따뜻한 부모였는지억년 세월에 깎여 돌이 먼지가 되어도너무도 선연해 지워지지 않게 할 일그리하여야 저들이 설친 오늘이 역사가 된다그리해야 우리가 오늘 외친 함성이 역사가 된다.전날 바로 이분들의 앞길 막지 않기를 바라며 쓴 시를 다시 되뇌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