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벗과 함께 길을 걷는다는 것, 사랑하고 사진 찍고 글을 쓴다는 것, 이런 것이 행복인 사람들이 있다. 트레킹(Trekking, 가벼운 배낭을 메고 산이나 들을 여유 있게 걸어 이동하면서 자연을 감상하는 여가 스포츠 활동)을 즐기는 사람들의 사랑법이다. 이들에게 편안하게 걷기 좋은 길은 단연 최고의 매력덩이다. 

봉화군의 표지판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봉화군의 표지판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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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다녀온 경북 봉화군(奉化郡)은 '봉승사화(奉承士化, 선비를 받들고 숭상함)'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산림휴양지다. 고택과 정자가 많고, 궁궐 건축에 쓰이는 금강송이 많고, 소나무가 많아 송이버섯도 많고, 수박향이 나는 은어도 많고. 조선 양반의 숨결을 아는 선비도 많고, 삼림욕을 하며 거닐기 좋은 길도 많은 곳이다.

출발지의 봉화군 홍보 아치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출발지의 봉화군 홍보 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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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영주에서 출발하여 단양~영월~봉화를 돌아 다시 영주로 오는 '소백산자락길'을 시작으로, 영양 출신의 청록파 시인인 조지훈 선생의 시 '승무'의 한 구절에서 차용한 영월~봉화~영양~청송을 잇는 '외씨버선길' 등이 유명한 봉화의 길들이다.

매일 10KM 정도를 걷는 나는 신나게 걸었다. 봉화군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매일 10KM 정도를 걷는 나는 신나게 걸었다. 봉화군
ⓒ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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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강원도 태백시의 구봉산에서 부산시 다대포의 몰운대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인 '낙동정맥(洛東正脈)'과 트레킹 길 중 산줄기나 산자락을 따라 길게 조성하여 시점과 종점이 연결되지 않는 길을 지칭하는 '트레일(Trail)'이 하나가 된 '낙동정맥 트레일'이 있다.

안내판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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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친구들은 지난 9월 29일(목) 봉화군의 '낙동정맥 트레일' 1~3구간 중에 1구간 일부를 유유자적(悠悠自適)이며 걸었다. 

가을로 물들다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가을로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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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군의 우측 끝에 자리하고 있는 석포면과 소천면 지역은 봉화에서도 첩첩오지로 예전에는 열차가 없으면 오가는 것이 불편할 정도로 내왕이 어려웠고, 특히 석포역, 승부역, 양원역, 분천역 인근은 봉화읍보다는 태백시가 가까울 정도로 강원도와 접해있는 곳이다. 열차를 타고 다니던 시대나 차를 주로 이용하는 지금이나 생활권은 태백이라고 할 정도로 외진 곳이다.

임도라서 걷기 좋다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임도라서 걷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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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자와 고택이 많은 봉화지만, 이곳에는 이런 것들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오랫동안 화전민이 살던 외지였다. 하지만 깊은 산속 오지여행이 주목을 받고 있는 요즘에는 도리어 조용하고 자연의 멋을 모두 간직하고 있으며, 공기 좋고 물 맑은 지역이라 심산유곡의 참맛을 느낄 수 있어 주목받고 있다.

가을비로 물을 먹은 풀잎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가을비로 물을 먹은 풀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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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중간 중간 만나는 역에서 백두대간 협곡열차를 타고 '하늘도 세평, 땅도 세평'인 승부역 등에 내려 식사는 물론 농산물 구매, 시원한 산바람, 강바람을 따라, 계곡 사이를 걸으면서 자연을 몸으로 느끼고, 도시생활로 지친 사람들에게 마음의 여유를 찾는 시간. 특별한 기차여행과 힐링 트레킹을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이다.

가을꽃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가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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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친구들과 함께 걸은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은 석개재(7.2km 이동) 샘터마을(4.7km 이동) 반야계곡(5.7km 이동) 석포면(12km 이동) 승부역까지지만, 우리들은 반야계곡의 중간인 노루목까지 대략 13km를 걸었다.

배추밭이 아주 크다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배추밭이 아주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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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서울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여 태백시를 통과하여 봉화군 석포면 석개재에 닿으니 오전 11시를 넘기는 시간이었다. 미리 준비한 간식과 사과로 간단히 요기를 한 다음, 천천히 임도를 따라 걸었다.

걷기 좋은 길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걷기 좋은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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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900M 고지로 높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산악도로를 따라 내려가는 길이라 힘이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기온은 서울보다는 10℃이상 낮고 흐린 날씨라 쌀쌀하기까지 했다. 긴팔 옷을 미리 준비하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했다.

가을꽃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가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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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길을 가다 보니, 정말 가을꽃들이 좋다. 서울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야생화 물결에 시나브로 단풍이 찾아오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의 나무와 풀들은 서서히 겨울을 준비하고 있구나!

석개재에서 샘터마을까지는 천천히 조금씩 내려가는 산길인 관계로 걷기에 불편은 없었다. 그냥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내려가는 길이다. 중간 중간 풀과 꽃들을 보면서 나무에 달린 열매도 따 먹으면서 걸었다. 숲 해설가 두 분이 동행하며 나무이름과 풀이름을 익히면서 걸었다.   

한국트레킹학교 윤치술 교장 선생, 멋진 사람이다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한국트레킹학교 윤치술 교장 선생, 멋진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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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마을 직전에 잠시 원두막에 앉아 동행한 한국트레킹학교의 윤치술 교장 선생의 김영랑 시 낭송과 우크렐라와 하모니카 연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며 쉬었다. 노래와 가사에 얼킨 이야기까지 들으니 더욱 재미있었다. 특히 무용가 최승희를 짝사랑했던 김영랑의 이야기는 처음 들어서 더 놀라웠다. 산에서 듣는 시낭송과 악기 연주는 과히 일품이다.

나도 길을 가면서 30년 전에 어렵게 외워둔 김영랑의 시를 천천히 암송하며 걸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모란이 피기까지는/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찬란한 슬픔의 봄을'

과수원이 곳곳에 많다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과수원이 곳곳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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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를 채취하는 철이라 농부들의 일손은 바쁘고, 곳곳에 과수원이며, 배추, 무 농사에도 분주한지 일하는 농군들의 모습이 간간히 보이기도 한다. 정말 느릿느릿 걸었더니 오후2시를 넘겨 점심 예약을 해둔 샘터마을의 한 농가에 도착했다.

샘터마을은 물맛이 좋은 산기슭 샘터를 중심으로 농가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은 지난 1968년 울진 삼척지구에 침투한 무장공비들이 마을을 지나가며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맛난 백숙을 먹다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맛난 백숙을 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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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에 귀농하여 사과농사를 하면서 틈틈이 지었다는 너무 이쁜 농사주택에서 닭백숙으로 식사를 했다. 배는 무척 고팠고, 음식은 너무 맛있어서 국물까지 남김없이 먹었다. 특히 흑임자와 녹두를 넣은 밥은 일품이었다. 미리 사전 답사를 왔던 사람들의 은혜를 받아 좋은 사람들과 맛난 점심을 했다.

폼나는 농가 주택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폼나는 농가 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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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발 고도 700M가 넘고 한파가 매서운 곳에 지어진 농가주택이라 단열에 크게 신경을 썼다고 한다. 나는 주황색을 칠한 집의 외부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이런 곳에 터를 잡고 작은 집을 지어 나도 귀농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낙동강 최상류라 계곡물이 좋다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낙동강 최상류라 계곡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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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마치고는 잠시 차를 한잔하고는 다시 길을 나선다. 이제 대략 반 조금 넘게 길을 걸은 듯하다. 사람마다 걷기의 편차가 심하여 계획보다 가는 길을 조금 더 줄여 노루목까지로 변경했다. 낙동강의 최상류 지역이라 길을 따라 계곡도 물도 깨끗하고 맑은 것이 좋았다. 너무 깨끗하여 투명한 물속에는 작은 물고기들의 노님이 아주 잘 보인다. 이제부터는 농가들이 더 많이 보인다.

가을꽃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가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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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과수원이 많고, 약초를 키우거나 배추농사를 주로 하는 듯하다. 임도가 끝나고 이제부터는 아스팔트(asphalt)로 포장이 되어 걷기 기분은 별로였다. 나는 일반 운동화를 신고 와서 도리어 발은 편한 느낌은 있다. 다음에는 신발을 두 개 가져오면 좋았을 것 같다.

아스팔트 도로의 시작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아스팔트 도로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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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지금은 폐교가 되어 버린 학교를 지나니, 펜션(pension)도 보이고, 도로도 넓어진다. 차도 드문드문 다니고, 계곡도 수량이 많아지고 있다. 이어 반야(盤野)마을이다. 소반(小盤)  같은 모양으로 산간에 자리한 넓은 들을 차지하고 있어 살기 좋은 터라고 해서 반야마을이라고 하고, 지역민들은 너래들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터가 좋은 이 마을은 옛날부터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마을로 들이 넓어 굶어죽는 이가 없고, 언제나 맑은 물과 공기로 전염병의 위험이 없으며, 사방이 높은 산으로 가려져 있어 전란의 위험도 없는 마을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주로 옥수수, 감자, 콩을 재배하는 60여 농가가 거주했지만, 지금은 인구가 줄어 10여 농가가 고랭지채소재배로 살아가고 있는 마을이다. 사실 이 지역은 봉화군에서 가장 큰 고랭지채소재배단지라고 한다.

친구 영직이랑 같이 동행하다.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친구 영직이랑 같이 동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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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중간 사과를 파는 농가와 약초를 다듬어 출하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그리고 강원도 산간에서나 볼 수 있는 대규모 배추밭도 보인다. 나는 동행한 중학교 동창인 영직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이런 곳에 오니 친구가 더 좋다. 사진도 찍고 대화도 나누고, 이후엔 글도 쓰고. 이것이 트레킹의 참맛인가 보다.

반야계곡이 정말 멋지다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반야계곡이 정말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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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계곡물을 잠시 구경하는 사이, 지친 몇몇 사람들의 요구로 우리는 노루목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반야계곡은 울창한 소나무 숲과 맑은 물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고 쉴만한 바위가 많아 여름엔 피서지로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 반 정도 밖에 보지 못했다. 아쉽다.

노루의 목을 닮았다고 하여 노루목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오래 전 춘양목을 반출하기 위해 노루의 목자리에 도로를 낸 이후, 마을이 기운을 다 했는지 점점 인구가 줄어들어 작은 마을이 된 곳이다. 최근에는 반야계곡의 절경과 맑은 물에 반하여 조금씩 귀농, 귀촌인들이 늘어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노루목에서 잠시 쉬면서 마지막으로 꽃과 계곡 구경을 더하고는 아쉽지만 우리들은 다시 버스를 타고 산타마을이 조성되어 있는 분천역으로 이동했다. 5시간 13KM 정도였지만, 행복하고 즐거운 산길트레킹이었다.


태그:#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1구간을 걷다 , #봉화군, #낙동정맥 트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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榴林 김수종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주로 쓰고 있으며, 간혹 독후감(서평), 여행기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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