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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한이주민센터 상임대표 정호 스님
 행복한이주민센터 상임대표 정호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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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일을 하냐구요? 인간사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하게 됐습니다. 법과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없습니다. 약자와 소수자를 위해 종교계가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더불어 사는 것이고 그래야 건전한 사회가 되겠지요."

정호 스님은 강한 듯 유연하고 부드러운 듯 억센 스님이다. 10년 전 외국인주민을 지원하는 일을 시작해 비영리 민간단체 '행복한이주민센터'를 설립했고 최근엔 불교계의 대표적인 이주민 지원단체인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상임대표를 맡았다.

거기다 대각사 회주(총책임자), 조계종의 사법기구인 재심호계원의 위원도 맡고 있으니 절간을 호령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결혼이주여성이 아기를 안고 한국어를 배우러 오면 엄마는 교실로 들여보내고 혼자서 갓난아이를 본다.

한 번은 송년 행사에 베트남 전통춤을 추기로 한 엄마가 아기를 안고 왔길래 아기를 보고 있는데 아빠가 술을 마시고 와서 소란을 피웠다. 정호 스님은 아기가 깨지 않도록 문을 닫은 뒤 "네 자식을 내가 보고 있다"고 호통을 쳐 돌려보냈다. 아기를 안은 부드러운 팔에서 억센 소리가 나오다보다.

너와 나의 목소리, 이주민의 목소리

정호 스님이 이주민 지원 일을 시작한 2006년만 해도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이주민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았다. 외국인 근로자는 많아서 임금체불, 폭행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도움을 받을 곳이 없으니 그가 나선 것이다.

그렇게 행복한이주민센터를 만들어서 1년 동안 활동을 하니 결혼이주여성들이 덩달아 찾아왔다. 없는 돈을 들여 센터를 확장하고 이주민을 받았다. 오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위탁 받은 2012년에는 이용자가 3배가 늘어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오산시의 도움을 받아 센터를 이전했다.

그리고는 중도입국 자녀(엄마의 재혼으로 뒤늦게 한국에 들어온 아이들)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센터에서 넉 달 동안 한국어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갈 곳이 없었다. 입학이나 편입서류를 뗄 수 없는 아이들은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며 방황했다.

그래서 정호 스님은 2013년에 위탁형 다문화 대안학교인 '오산 행복한학교'를 개교했다. 해마다 갈 곳 없는 중도입국 아이들이 행복한학교에서 학업의 꿈을 이어간다.

그러고 보면 그가 지나온 10년은 한국 다문화사회의 변화를 정확히 관통한다. 외국인 근로자, 결혼이주여성, 중도입국 청소년 누구든 도움이 필요하면 그가 먼저 나섰다. 정호 스님이 말한 예비학교 개념의 중도입국 청소년 시설은 지난해 경기도교육청에서 다문화 예비학교를 설립해 현실이 됐다.

"불교계의 사회활동이 저조한 것이 늘 마음 아팠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곳마다 다닌 것이 이처럼 크게 되었네요. 우리 사회는 기득권 때문에 개혁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끊임없이 각자가 자기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외국인 주민의 목소리도 갈수록 커질 것입니다. 그들의 목소리가 앞으로 이 사회에 어떻게 드러날지 지켜봐야 합니다."

노동력을 수입했는데 사람이 왔다

 행복한이주민센터 상임대표 정호 스님과 오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이병희(왼쪽)
 행복한이주민센터 상임대표 정호 스님과 오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장 이병희(왼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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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 스님은 한국 다문화 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그는 5천년 역사에 이처럼 급속히 인구 변화가 이뤄진 적이 없다고 말한다. 전쟁이 아닌 다음에야 지금처럼 단기간에 한반도에 이주민이 유입되고 사회가 변화된 적이 없다는 것.

그래서 외국인 주민을 바라보는 내국인들의 인식이 중요해졌다. 백인이 아닌 이주민들은 모두 내려 보는 경향이 생긴 한국 사회는 위험하다.

"'노동력이 필요해서 수입을 했는데 알고 보니 사람이 왔더라'는 얘기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이곳에 데려왔고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 무시하고 차별하고 방치한다면 우리에게 위기가 닥쳐올 겁니다. 앞으로 외국인 주민에 대한 내국인의 인식이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다문화 사회의 성패가 갈릴 것입니다."

정호 스님은 외부에 노출되지 않는 다문화가족을 다시 걱정한다. 결혼이주여성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이용률이 30%에 불과한데 나머지 70%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냐는 것이다. 30%도 상담을 하다보면 갈등하다 이혼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70%는 행복하기만 할까.
그래서 한국에서 계속 살아야 하는 다문화가족에게는 해주고 싶은 말이 더 많다.

"한국어 공부는 기본입니다. 한국어를 알아야 정보를 얻을 수 있고 그래야 자기가 살 길이 열립니다. 공장 가서 돈 버는 것 큰 것 같지만 거기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한국어 공부에 더해서 직업교육도 받고 대학도 다니고 해서 자기 개발에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의식이 살아 있고 깨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불교가 사회에 해 줄 수 있는 것

정호 스님은 마흔이 넘어서야 올바른 불교 의식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불교는 사회에 무엇이냐, 불교가 이 사회에 무엇을 해줄 것이냐' 마흔이 넘어서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비로소 일을 하게 됐다는 것이다.

일상에 매몰돼서 살다보면 결코 깨우칠 수 없고 알 수도 없는 것, 우리의 삶이 그와 같을 때 먼저 일어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실천한 그의 말이 부드럽지만 강하게 들린다.

덧붙이는 글 | 인터뷰는 지난 8월 26일 진행됐습니다.



#정호 스님#행복한이주민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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