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룽따 네팔에는 유난히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이 많다. 소망과 만트라를 깃발에 담아 바람에 날리며 신과의 소통을 꾀하나보다.
룽따네팔에는 유난히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이 많다. 소망과 만트라를 깃발에 담아 바람에 날리며 신과의 소통을 꾀하나보다. ⓒ 강명구

네팔 사람들은 깃발을 좋아하나보다. 세계 모든 나라의 국기가 직사각형 모양인데 네팔국기만 두 개의 삼각형 깃발이 포개진 형태이다. 하나는 해를 담고 하나는 달을 담았다. 네팔 어딜 가도 룽타가 바람에 휘날린다. 히말라야 산간에서 바람에 휘날리는 깃발의 의미가 무엇인지 굳이 찾을 필요는 없지만 유치환의 '깃발'이 머리에 떠오른다. "저 푸른 해원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텔지어의 손수건" 룽따는 불교적 기원에서 온 문화이다.

룽은 바람을 의미하고 따는 말을 의미하니 룽따에 쓰인 만트라나 염원이 저렇게 많다는 것은 이 맑은 사람들에게도 내면의 아우성이 많다는 것이다. 저 색색의 내면의 아우성도 이렇게 모아놓으니 예술이 되고 장관을 이룬다. 그러니 그런 감정들도 떨구어 버리려고 애쓸 일도 아니다. 잘 삭히고 승화시키면 예술이 되고 문화가 된다.

지구상의 8000m가 넘는 14개의 봉우리 중 8개가 네팔에 있다고 한다. 먼지와 매연 속에서 일주일 만에 300km를 달린 육신에도 보상은 필요하다. 산이 우리에게 안식을 주고 보상을 할 것 같다. 가파른 산을 오르자면 다시 육신의 피로함은 쌓이겠지만 산은 마음에 휴식을 준다. 허파꽈리까지 히말라야의 깊은 산속에서 자란 약초의 향기를 품은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게 하는 것은 몸에 할 수 있는 최고의 포상이 될 것이다. 행복이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들어가서 향유하는 것이다.

히말라야의 정글 빗속의 히말라야의 정글은 아득하고 아늑하였다. 이런 곳에서는 마음이 저절로 청정해지는 것 같다.
히말라야의 정글빗속의 히말라야의 정글은 아득하고 아늑하였다. 이런 곳에서는 마음이 저절로 청정해지는 것 같다. ⓒ 강명구

오전 7시에 지프차를 타고 포카라에서 힐레산까지 약 세 시간을 올라간다. 포카라는 네팔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고 히말라야를 찾는 모든 트레커들이 거쳐 가는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경관을 잘 조망할 수 있는 휴양도시이다. 해발 900m이다. 힐레는 해발 1470m로 고레파니를 향하는 코스의 관문이다. 새벽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네팔의 우기가 시작되는 6월이 내일 모레다. 빗속의 산은 파릇하다. 무뚝뚝한 사람마저도 금방 사랑에 빠지게 유혹한다. 둥글게 둥글게 산을 감아서 오르니 마음도 둥그러진다. 산은 오를수록 깊어지고 신비해진다.

종한 형님은 "오늘부터는 인생의 선물!"이라고 근엄하지 않은 얼굴을 억지로 근엄하게 만들어 말하니 대놓고 웃지도 못하고 참느라 혼났다. 진오스님은 "좋다"라는 단어를 연신 사용하며 환희심을 표현한다. 주형, 덕원은 휴가를 내고 온 보람이 있다고 연신 즐거워한다. 원시의 정글 속에 보배장엄이 바라보는 대로 나타나고 빗방울이 나뭇잎에 떨어지는 소리와 산들바람이 숲 속을 지나면 한량없는 묘법의 음악이 울려 퍼진다. 이런 산속에 살면 자연히 마음이 청정해지고 탐욕으로부터 멀어질 것 같다. 그런데 한동안 모든 것을 잊고 히말라야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저 까마득한 준봉의 근처라도 가보고 싶은 강한 욕심이 생긴다. 아쉽게도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2박 3일이었다. '인생의 선물'은 단지 2박 3일이다.

우리는 단지 2박 3일을 4박 5일처럼 엿가락 늘리듯이 늘릴 수 있는 체력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푼힐 전망대 코스는 히말라야 트레킹 중 가장 짧은 코스이다. 하지만 조망권은 훌륭하다고 한다. 날씨만 좋으면 8000m가 넘는 고봉인 안나프르나와 다울라기리를 한눈에 바라볼 수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엿가락처럼 늘린 코스는 힐레, 울레리, 고레파니, 푼힐전망대, 고레파니, 반단티, 타다파니, 출리, 촘롱, 지누단다 온천, 뉴브리지, 시와이이다.

산길을 오르는 노새 산골 주민들의 삶도 척박하지만 무거운 짐을지고 산길을 오르내리는 짐승들의 삶도 안타깝다.
산길을 오르는 노새산골 주민들의 삶도 척박하지만 무거운 짐을지고 산길을 오르내리는 짐승들의 삶도 안타깝다. ⓒ 강명구

고도가 올라갈수록 기분도 고양되어 간다. 안개 너머로는 앞으로 마주하게 될 준봉들이 어렴풋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산 입구에서 산신령은 단단히 마음먹은 자만을 통과시켜줄 것처럼 당당했다. 울레리에서 점심식사를 하기 전 히말라야의 산신령께 간단한 산신제를 지냈다. 한 걸음 한 걸음 뗄 때마다 아득하고 아늑함이 몰려온다.

직접 만나는 히말라야는 신보다 오히려 더 강렬했다. 이제 먼지와 매연이 난무하던 찻길에서 반쯤 닫아두었던 호흡을 맘껏 열어젖힐 차례다. 히말라야의 가파른 고개를 오를 때 온몸의 기능들이 최고의 활동을 하면 자연과 내 영혼은 정분이 나 사랑할 때 연인들처럼 하나가 되고 만다. 정신을 혼란케하던 세속의 만념은 겨울 뱀굴의 뱀처럼 서로 똬리를 틀며 하나가 됨을 느끼게 된다. 자연과 내가, 정신과 육체, 순간과 영원이 일체가 되는 황홀함, 하나가 된 그 안에 흐르는 신성한 기운을 경건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감동과 야릇한 슬픔, 절대적인 고독도 여기선 따로따로의 감정이 아니다. 만념이 일념이 되고 그 일념마저도 어느 순간 무념이 되는 절대적인 무를 경험하게 된다.

시야가 확 트여서 산 아래가 다 내려다보이고 저 장엄한 안나푸르나가 올려다 보이면 좋겠지만 이렇게 구름이 끼어서 주위만 보이니 위를 보며 굽실거리지 않아도 되고 아래를 내려다보며 거들먹거리지 않아도 되는 겸손한 마음이 생기는 것 같다. 바로 주위만 보이니 산만하지 않게 주변을 관찰할 수 있어서 좋았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건천으로 있을 개울도 넘쳐흐르고 여기저기 장관을 이루고 쏟아져 내리는 폭포도 축복이 된다. 깊은 계곡을 건너는 아찔한 출렁다리도 건넌다.

우리가 오르는 방향으로 오르는 사람들은 거의 만날 수가 없다. 반대편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은 종종 만난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왔다는 소녀도 지나치고 웨일즈에서 왔다는 소녀도 인사를 나누며 지나쳤다. 한국 아가씨도 한 사람 포터와 함께 산에서 내려와서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홀로 트레킹을 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 특이했다.

그러나 반가워야할 것이 반갑지 않고 오히려 혐오스런 것도 있다. 분명 히말라야의 깊은 산 속에서 한국인의 흔적을 보는 일은 기쁜 일이다. 가령 힐레 가는 길에 마주친 엄홍길 대장이 지은 중학교를 보는 일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네팔의 가게마다 진열된 초코파이를 보는 마음도 반가움이었다. 그러나 산길에 초코파이 포장이 널브러져 있는 모습은 혐오스러운 모습이었다. 진오스님이 얼른 위험을 무릅쓰고 비탈 아래 있는 것까지 쓰레기를 줍는다.

오후 다섯 시쯤 오늘의 목표지점인 2880m의 고레파니에 도착했다. 물은 항상 정수된 물을 마시라고 했는데 목이 말라서 한 모금은 괜찮겠지 하고 한 모금 현지인들이 마시는 물을 마셨다. 로지 주인은 한국에서 일을 하여 번 돈으로 여기다 로지를 지었다고 한다. 여장을 풀고 바로 옆집에서 벌어지는 동네 바비큐파티에 구경갔다. 언제나 그렇듯이 우리는 구경꾼으로 남아있지 않았다. 이들과 함께 하는데 '렛썸삐리리'는 아주 유용했다. 금방 이웃 로지에 있던 캐나다 청년들이 가세한다. 순식간에 산골짜기 마을 잔치는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이 되어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로지에서 만난 캐나다 청년들과 함께 로지 근처에서 마을 잔치가 있었는데 우리가 합류하면서 인터내셔널 축제가 되었다.
로지에서 만난 캐나다 청년들과 함께로지 근처에서 마을 잔치가 있었는데 우리가 합류하면서 인터내셔널 축제가 되었다. ⓒ 강명구

축제가 무르익는 동안 종한 형님은 방 안에서 가져간 소형 사진 인화기로 아이들과 아주머니들 사진을 찍어서 즉석에서 인화해준다. 자기 얼굴이 담긴 사진을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아이들과 아주머니들에게는 밖의 축제보다도 여기가 더 들썩거렸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주인장이 한국에서 배운 기술로 끊여낸 닭백숙을 먹고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정수된 물 외에는 마시지 말라고 했다. 늘 한 모금은 괜찮겠지, 조금은 괜찮겠지란 막연한 확신이 나를 궁지에 빠트리곤 한다. 밤새도록 화장실에 다니고 두꺼운 침낭에 파카를 입어도 오한에 시달려야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푼힐 전망대에 오르는 것이 이번 트레킹의 하이라이트이다. 2박 3일의 축복으로 바꿀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코스가 해발 3210m의 푼힐 전망대 코스이다. 전 세계 트레커들의 로망, 인류를 향한 자연의 큰 선물, 웅장한 안나푸르나의 숨결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를 손을 잡을 듯 가까운 곳에서 만나는 곳이다. 히말라야 위로 떠오르는 태양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어차피 비가 와서 일출이나 안나푸르나의 보배장엄을 눈으로 볼 수는 없었지만 푼힐 전망대도 내게는 허가되지 않은 땅이 되고 말았다. 3000m 급의 언덕에 올라서 본 것과 2880m가 최고기록인 것은 분명 차이가 났다. 네팔에서는 3000m가 넘어도 아직 언덕이라 부르지만 말이다. 다행히 억지로라도 아침을 한술 뜨고 나니 다시 새 기운이 돋는다.


#룽따#고레파니#푼맇 전망대#안나푸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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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온몸의 근육을 이용하여 달리며 여행한다. 달리며 자연과 소통하고 자신과 허심탄회한대화를 나누며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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