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6월 11일 오후 4시 30분쯤, 울산 동구 일산해수욕장 인근 도로에서 지역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조선산업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몇 시간 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울산 동구청이 축포를 터뜨렸다.
 6월 11일 오후 4시 30분쯤, 울산 동구 일산해수욕장 인근 도로에서 지역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조선산업 구조조정 저지'를 위한 거리행진을 벌이고 있다. 몇 시간 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울산 동구청이 축포를 터뜨렸다.
ⓒ 박석철

관련사진보기


지난 11일 오후 8시쯤, 형형색색의 불꽃이 '펑' '펑' 소리와 함께 울산 동구의 하늘을 수놓았다.

울산 동구청이 예산을 지원해 울산수협 방어진위판장 일대에서 오후 2시부터 열린 제12회 방어진축제의 마지막 행사이자 하이라이트인 불꽃놀이였다.

공교롭게도 축포를 쏘아올린 곳에서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지역의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몇 시간 전에 "동구 현대중공업에서 진행되고 있는 구조조정을 저지하자"며 2시간 동안 거리행진을 벌인 장소가 있다.

이날 오후 4시부터 동구 일산해수욕장에서 열린 집회와 이어 진행된 거리행진을 취재한 뒤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송고한 후 집으로 돌아온 기자는 가족과 함께 축포 소리와 함께 10여분간 펼쳐진 불꽃을 바라보면서 착잡한 심정이 들었다.

이 지역 주력산업인 조선업이 위기를 맞으면서 최근 주민 구성원들이 하나 둘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출근을 하지 않는 모습을 목격한 터라, 지자체가 시민예산을 투입해 터뜨린 축포가 왜 하필 이날이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한 때 부자도시 대명사로 불리던 울산 동구, 하지만...

해마다 언론에는 "전국에서 가장 소득수준이 높은 도시가 울산"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2014년 12월에는 "울산 1인당 소득 1916만 원으로 5년째 1위, 전국평균 1585만 원 대비 20.9% 높아'라고 보도됐다.

울산의 5개 지자체 중 동구는 울산의 소득수준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했다. 기자가 지역일간지를 나와 식당을 운영하던 지난 2004년 여름 동구 일산해수욕장에는 '이 지역에 돈이 많이 돈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에서 모여든 각설이패가 10개가 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비록 최근 정점을 찍었지만, 조선업이 10여 년간 최고 호황기를 누리던 시기였다. 하지만 이때 동구지역에는 내면적으로 아픔도 많았다. 동구 주력기업인 현대중공업에서는 그해(2004년) 하청노동자 박일수씨가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며 분신해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외면한 정규직노조는 결국 그해 민주노총에서 제명됐다.

이후에도 현대중공업노조는 하청노동자 수가 늘어나는 것에는 아랑곳없이 기이한 행보를 이어갔다. 지금 전문가들이 조선업이 최고 호황기에 속해 있던 시기라고 분석하는 지난 2009년에는 현대중공업노조가 교섭권을 회사에 반납하면서 당시 이명박 정부로부터 모범노조로 칭송받기도 했다.

여기다 당시 현대중공업노조 오종쇄 위원장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선 경기 불황이 오래 지속될 것이다, 현재 전 세계의 발주량이 100이라면 생산능력은 200인데, 이는 50% 이상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의미"라며 구조조정 필요성을 언급하기도 했다(관련기사 : 오종쇄 "50%이상 구조조정해야"... 하청노동자 술렁).

그로부터 7년이 흐른 지금, 구조조정은 실제로 진행되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 지난해 1300여 명, 올해들어 1300여 명의 정규직 사무직들이 희망퇴직이란 이름으로 회사를 떠났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인원이 회사를 따날지 알 수 없다. 더 심각한 것은 하청노동자다. 지난해부터 업체 폐업 등으로 1만여 명 이상이 직장을 잃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2009년 당시 회사에 교섭권을 반납하고 구조조정 필요성까지 역설하던 노조집행부는 몇 년 전부터 노조내에서 나온 자성의 목소리에 힘입어 소위 민주노조 계열로 바뀌면서 구조조정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10년 이상 이어져오던 정규직과 하청 및 일반 지역주민과의 괴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 11일 시민사회와 노동계가 '총고용 보장'을 요구하며 벌인 집회와 거리행진에 막상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은 것과도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정규직노조는 노조대로 내부 갈등에 휩싸이고 그동안 주눅들은 하청노동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4만여명의 하청노동자 중 노조에 가입한 사람이 수백명이 채 안 된다는 점이 이를 반영한다.

'4만명 중 10%만 나서도...'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11일 거리행진에 참가한 구성원이 대부분 동구 외의 사람들이라는 점 때문이다.

특히 지자체의 대응은 미흡하기 그지 없다. 올해들어 조선업 위기감이 고조되자 해당 지자체인 울산 동구청은 지난 5월 3일 조선경기 침체 극복대책을 내놨지만, 막상 그 내용이 '조선업 실직자 등을 우선 채용해 80명에게 5개월간 공원정비 및 시설물 유지관리 등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 '건설사업 조기 추진' 등이라 빈축을 산 바 있다(관련기사 :  80명에게 5개월 일자리? 안일한 울산 동구의 해법).

여기다 지난 11일 저녁 쏘아올린 축포는 '지자체가 과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물론 이날 방어진 축제가 같은날 벌어진 '구조조정 저지' 거리행진보다 앞서 계획된 행사이며 매년 열리는 지역 고유의 축제라는 점에서 일면 이해는 가지만, '과연 아까운 예산을 들여 축포까지 터뜨려야했나' 하는 점에서는 각성이 필요해 보인다.


태그:#울산 동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