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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15년 11월 12일 있었던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지난 2015년 11월 12일 있었던 201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 권우성

전직 교사인 나는 얼마 전 동네 청소년 협동조합에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과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씨 이야기>를 읽고 독서토론을 했다. 유년기의 추억, 소통의 중요성 등등 얘기가 오가고, '무엇이 우리를 살게 하는가?'란 주제가 나왔다. 학생들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직업)이 있고, 그 꿈을 위해 산다고 했다. 그러나 점점 그 꿈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져 허무감에 젖기도 한다고 했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성인이 되면 이민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들 뿐만 아니라, 요즘 내가 만나는 고등학생들의 공통된 장래 희망이 '이민'이다. 자신들의 자녀까지  살벌한 경쟁을 겪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덧붙였다. '순수하던 중학교 때 친구는 진짜 친구지만, 고등학교 들어와서는 경쟁 상대란 생각에 진정한 친구를 사귀기 어렵다'는 얘기도 이어졌다. 주위 어른들은 항상 '먹고 살려면' 전문직을 가져야 한다는 충고를 한다고도 했다.

이 대화는 오늘날 한국 교육이 다음 세대에게 어떤 비전을 던져주는지 고스란히 보여준다. 당연히 나는 참담한 기분을 떨칠 수 없었다. 청소년의 꿈이 '이민'이 되는 나라, '전문직'이 아니면 '먹고 살' 수 없어서, 그 '전문직'을 얻기 위해 혹독한 경쟁을 치러내고도 결국 대다수는 좌절하는 나라, 그래서 절대 다수의 국민을 낙오자로 만드는 나라,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최저 출산율의 나라에서 교사로 살아온 20년 참회록을 얼마나 더 써야 나는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특히 고등학교는 교육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대학 입시를 위해 '변별(줄 세우기)'을 하는 공간으로 변질되었다. 중학교도 지난 몇 년간 우리 정부가 잔뜩 만들어 놓은 특목고 자율고 덕분에 그렇게 변질되고 있는 중이다.

교육문제의 해법을 찾으려면, 평가에 종속된 수업이 아닌, '공화국의 시민 교육'을 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 대학 서열화, 학벌과 출신학교에 의한 취업 차별, 열악한 노동 환경 같은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학교 안에서의 변화도 시급하다. 무한 경쟁에 시들고 있는 수많은 청소년들의 하루하루의 소중한 삶을 살려내고 그들의 성장을 돕는 것은 한시도 뒤로 미룰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학교 안의 변화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수업과 학생 지도에서 쌍방향 소통 가능하도록 학급당 학생 수를 줄이고, 교사의 잡무를 없애야 한다. 교육은 교사-학생의 만남이기에 그렇다.  학생 개개인의 학업 성취를 교사가 일일이 점검할 수 있는 교실에서만 비로소 진정한 수업이 가능하다.

학생들을 경쟁시켜 승자와 낙오자를 분류하고 변별하는 것은 학교의 일이 아니다.  점점 '입시자료 작성 기관' 정도으로 전락해가는 학교를 살려내기 위해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는 것은 필수불가결하다. 학생들을 변별하는 것은 다인수 학급에서도 가능하지만,  국가가 정한 교육과정을 낙오자 없이 이수하도록 돕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마도 현직 교사 대다수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한 첫번째 조건이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는 것이라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국민 총 생산 대비 공교육비 비율은 국제적으로 최고임에도 학급당 학생 수는 OECD국가 중 가장 많다. 교육부는 지난 4월 25일 '고교 맞춤형 교육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그 속에는 2022년까지 학급당 학생수를 OECD 평균 수준인 24명으로 줄이겠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발표는 신뢰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우리 정부의 이런 발표는 올해가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당시에는 2017년까지 학급당 학생수를 24명으로 줄이겠다고 공약했다가, 2013년 교육부 업무보고에서는 2020년으로 늦춰졌다. 그리고 올해 또다시 2022년으로 더 늦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겠다고 약속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교육부는 당장 내년에 꽤 많은 고등학교의 학급을 한 학급씩 줄이라고 명했다. 출산율 감소로 학생수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는 국민총생산 대비 공교육비 비율도 높지만, 공교육비의 민간부담률도 높다. 또2016년 정부 예산안을 보면, 교육 예산이 방위비의 두 배 정도로 전체의 약 20%를 차지하며, 보건 복지, 행정 다음으로 세 번째로 많다.

교등학교에는 문이과를 나누어 편성하는 2,3학년에 아직도 40명 넘는 학급이 꽤 있다. 문이과 제도를 없앤다 해도 선택과목 중심으로 학급을 편성하면, 여전히 40명 넘는 학급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도 굳이 학급을 줄여가면서 학급당 평균 학생수를 30명 남짓으로 유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우리 학생들은 6년을 더 기다려야 겨우 6년 전의 국제 평균 규모 학급에서 공부할 수 있는걸까? 간접세인 교육세가 존재하는 나라에서, 왜 우리 국민은 교사의 개별지도가 불가능한 학급에서 자녀를 공부시키고, 결국 사교육의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걸까?

좀더 눈을 부릅뜨고 귀중한 교육 예산이 가장 중요한 곳이 아닌 다른 곳에 낭비되고 있지 않은지 살펴봐야 한다. 이를테면 교육부, 교육청의 비대한 관료조직을 유지하고, 수많은 교육정책과 교육 사업을 쏟아내는 데 소모되고 있지 않은지, 그러한 정책과 사업들이 단위 학교에 오면 교육에 보탬이 되기나 하는 것인지, 오히려 수많은 잡무를 양산해서 교육을 방해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

절망적 학교 현실 속에서 맹목적 경쟁의 걸음을 멈추지 못하는 우리 아이들이 소설 속 '좀머 씨'처럼 호수에 가라앉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교육부 교육청의 과도한 간섭과 소모적인 잡무가 사라진 학교에서, 자율권을 가진 진정한 '교사'가 '경쟁'을 시키는 것이 아닌 '교육'을 할 그날을 기대해 본다.


#공교육#맞춤형 교육 활성화 #학급당 학생수#학교#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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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여 년의 교직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구체적 절망과 섬세한 고민, 대안을 담은<경쟁의 늪에서 학교를 인양하라(지식과감성)>를 썼으며, 노동 인권, 공교육, 미혼부모, 입양 등의 관심사에 대한 기사를 주로 쓰고자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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