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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리가 연결된 지 4개월이 지난 화태리에는 수산양식장이 활발하다. 뒤에 보이는 다리가 화태대교
 다리가 연결된 지 4개월이 지난 화태리에는 수산양식장이 활발하다. 뒤에 보이는 다리가 화태대교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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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목), 육지와 다리가 연결돼 교통이 편리해진 화태도를 방문했다. 화태도는 임진왜란 당시 왜병들에게 군량미를 적재한 지역으로 위장하였다 하여 벼이삭 수(穗)를 써 수태도라 했지만 나중에 벼 화(禾)자로 개명해 화태도가 됐다.

여수시청에서 27.6㎞ 떨어진 섬은 자동차로 37분 걸리는 가까운 거리다. 지금이야 자동차로 금방 갈 수 있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자동차로 돌산 군내리까지 갔다가 배로 갈아타야 했으니 가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 섬이었다.

2015년 12월 22일, 1천 506억 원을 들여 길이 1345m, 높이 130m의 돌산에서 화태를 잇는 연륙교가 완성된 이후 섬 모습이 달라졌다.

너비 3.8㎢인 섬에는 188세대에 주민 379명이 거주하고 있다. 작은 섬이지만 중학교까지 있다. 교육청에서는 통폐합을 원하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유치원생 2명, 초등학생 6명, 중학생 5명이 섬 학교에 다니고 있다. 예쁜 꽃과 정원수가 가득한 화태초등학교 교문에서 김현수 교사를 만나 불편한 점을 묻자 김 교사가 답했다.

"불편한 점은 없어요. 그냥 애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마을회관에서 화태리 이장인 이성남(63)씨와 어촌계장 박청남(73)씨를 만나 마을에 대한 자세한 내력과 연륙이 된 후 변화된 섬 생활상을 들었다. 

"주민들은 50세부터 78세까지의 노인들이 대부분이지만 고향을 떠났던 자녀들이 부모 사업을 이어받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어요. 시원찮은 도회지 월급쟁이보다 소득이 낫기 때문입니다. 공기도 맑고 자기만 부지런하면 먹고 살기에 지장이 없습니다.

다리가 생긴 후 불편한 점은 낚시꾼들이 들어와 쓰레기를 버리고 낚싯밥을 버려 바다가 오염되고 있습니다. 낚싯밥 때문에 해초가 죽어가요. 관광객들이 아무 데나 쓰레기를 버리고 농작물을 훔쳐갑니다. 화장실 좀 사용하자며 아무 집에나 불쑥 들어오거나, 남의 어장에 들어가 조개를 캐가는 것도 문제입니다. 또 휴일에는 주차난으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다리 연륙 후 외지인 낚시꾼들이 들어와 쓰레기 버리고 바다를 오염시키는 게 큰 문제란다.
 다리 연륙 후 외지인 낚시꾼들이 들어와 쓰레기 버리고 바다를 오염시키는 게 큰 문제란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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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계장은 "옛날에는 방풍, 고추, 콩, 절간고구마 등을 소규모로 재배하고 고대구리 배를 운영해 문어, 김 등의 수산물을 생산했지만 지금은 양식어업으로 전환해 (이곳이)여수시 양식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다"고 자랑했다.
        
이장과 어촌계장에게 "연륙교가 생긴 후 장점과 단점에 대해 비교해 달라"고 요청하자 이성남 이장이 대답했다.

 화태리 모습. 뒤에 초등학교와 증학교가 보인다
 화태리 모습. 뒤에 초등학교와 증학교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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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단점보다 장점이 많지요. 가장 좋은 점은 위급환자 발생시 119차를 타고 신속히 육지 병원으로 이송이 가능한 점이고 농수산물을 차로 수송하는 것이 좋습니다. 단점인 공중 화장실이나 쓰레기 문제는 시와 협조해 대안을 찾도록 할 겁니다"

화태리와 월전을 거쳐 묘두리로 갔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어망 손질하던 소병철(75)씨에게 인사를 하며 "여수에서 왔다"고 하자 그는 "여기가 뭐 볼 것 있다고 왔어요"라며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묘두리 끝까지 구경하고 돌아와 마을에 대한 내력과 연륙교가 생긴 후 변화상을 묻자 말문이 터졌다.

"외지인들 때문에 못 살겠어요"

 다리가 연결된 후 외지인들이 들어와 농작물을 훔쳐가는 걸 막기 위해 걸어놓은 푯말
 다리가 연결된 후 외지인들이 들어와 농작물을 훔쳐가는 걸 막기 위해 걸어놓은 푯말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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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은 고양이를 닮았다 하여 고양이 묘(猫), 머리 두(頭)를 써서 묘두리라고 불러요. 외지인들 때문에 못 살겠어요. 아무 데나 쓰레기 버리고, 장독을 3개나 가지고 가고, 기름칠해서 깨끗하게 해놓은 우체통까지 떼어 갔어요. 산에 올라가 소나무 암꽃을 끊어 가버려요. 오염되지 않고 깨끗해서 술 담근다고 하지만 너무 하지 않아요?"

어망 나르며 다리를 절고 있어 "다리가 불편하신가 봐요?"하고 말하자 "고관절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며 살아온 얘기를 하던 그가 마을 현황을 얘기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요. 바다에 나가 부지런하기만 하면 고기가 지천에 널려 있고 조개도 많아요. 도회지에 사는 시원찮은 월급쟁이보다 나아서 가두리 양식을 하러 들어와요"

"3남 2녀 자식들을 키우느라 이 나이가 되도록 집이 없어 남의 집에 살아요. 팔자 소견이려니 하고 살아요. 자식들이 밥벌이하면서 성 안가시고 사니까 됐지요"

"고기도 잡고 아이들도 제 밥벌이를 하니 살기가 괜찮겠네요"라고 말하자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다 하려면 책을 몇 권 써야할 것"이라며 "괜히 눈물이 나려고 하네!"라고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품팔이하며 어렵게 살던 소병철씨,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부인도 사별해

 평생을 어렵게 살았지만 팔자려니 하고 산다는 소병철씨가 어망을 손질하고 있다
 평생을 어렵게 살았지만 팔자려니 하고 산다는 소병철씨가 어망을 손질하고 있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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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 주천면이 고향인 소병철씨는 초등학교 1학년 때 화태도로 이사와 16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 형편이 어려워 남의 집 품팔이를 하며 근근이 생계를 연명하던 가난한 총각에게 처녀가 시집왔다. 당시 20살이었던 자신한테 부인이 생긴 것.

그러나 결혼 1년 후 아버지가 사망했고 35살에는 부인도 사망했다. 홀로 된 그에게 이웃에 사는 사람이 "사위로 삼고 싶다"고 해 쌍둥이를 낳았다.

병약하고 연로한 그는 요즘 일이 너무 힘들어 39살인 막내에게 양식업을 물려줬다. "묘두리 앞바다는 일본사람들이 수산양식장으로 욕심냈던 곳"이라며 "양식하기에 최적인 이유는 수심이 깊고, 조류소통이 잘 되고, 겨울바람이 많이 안 닿으며, 육지가 가깝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줬다.

"그동안 너무나 어렵게 살아 64년 동안 가보고 싶었던 고향을 4년 전에 방문했다"고 말한 그는 "지금도 아주 어릴 적 같이 놀던 세 명의 친구들 이름을 외운다"라고 말했다.

"아프지 말고 건강하시라"고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떠나려고 하자 "점심도 못 사주고 보내네. 다음에 오시면 맛있는 횟감을 썰어 놓을 테니 꼭 오시라"고 말하는 그분에게서 인생 역정을 느꼈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넷통에도 송고합니다



#화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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