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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좋아, 까짓것 하던 대로 하지(Eh-bien, continuons.)"

장 폴 사르트르의 희곡 <닫힌 방>(Huis Clos)의 주인공이 수많은 좌절을 겪은 후, 마지막 장면에서 체념한 듯 던지는 말이라고 한다. 아마, 우리가 일상의 많은 갈등에 대처하는 마지막 말도, 저게 아닐까? 결과적으로, 세상은 전혀 새로운 길을 찾아낼 수 없고, 점점 더 안정적인 방법만 찾아가게 된다. 언제부터인가 새로운 생각을 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나>를 집어 들었다. 굳이 읽어야 하는가, 일상이 증거인데? 하는 생각이 언뜻 스쳤지만, IBM의 전직 최고 기술책임자인 독일인 군터 뒤크의 분석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를까 하는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기대는 무슨! 독일도 별 수 없군, 하는 생각으로 책장을 덮었다.

모험을 하지 않는 조직, 독일도 마찬가지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나>, 군터 뒤크 지음/ 김희상 옮김(비즈페이퍼)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나>, 군터 뒤크 지음/ 김희상 옮김(비즈페이퍼)
ⓒ 비즈페이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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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니는 곳은 두 번째 직장이다. 첫 직장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나가는 회사의 가장 잘 안 나가는 사업부에 소속된 연구소였다. 회사 전체에서 우리 사업부의 역사가 가장 길었기에 구성원들은 그나마 근무 년수가 오래된 편이었다.

사업의 성과가 끝없이 이웃의 다른 사업부와 비교되었고, 조직은 끝없이 성과 창출을 위한 '혁신'을 이야기 했다. 그 당시,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가 분석한 회사의 최대 강점은 '운영 효율의 극대화에 의한 경쟁 우위'였는데, 쉽게 풀자면 '남들보다 신속하고 정확히 한다'는 뜻이었다.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혁신과 효율은 양립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하는데, 조직은 당연한 듯 '효율적으로 혁신하라!'는 주문을 되풀이 했다. 조직의 구성원들은 다그치듯 몰아치는 성과 요구에 지쳐 있었다.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새로운 업무를 맡게 되었는데, 신제품 아이디어를 도출하여 개발 과제로 연결하는 일이었다. 업무의 목적과 방법론이 신선했고, 구성원들이 모두 젊은 친구들이라 한참을 신나게 빠져들었었다. 업무의 주 목적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하는 건이었고, 조직의 다양한 구성원들과의 지속적인 협의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우리팀이 가장 많이 진행했던 '행사' 중 하나도 '아이디어 발상회의'였다. 해당 주제에 관심있는 사람들을 불러모아서, 새로운 의견들을 제안하고 선정하는 작업이었는데, '브레인스토밍'을 비롯한 다양한 아이디어 발상법을 사용했다.

회의 분위기는 각양각색이었다. 때로는 아무 의견이 없어 숨막히는 정적을 깨기 위해 애를 써야 할 때도 있었고, 매우 예외적이긴 했지만 원래의 목적대로 즐겁게 생각들을 나눌 때도 있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회의는 고성이 오가는 논쟁이거나 서로의 의견에 대해 '그것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정해진 시간을 훌쩍 넘기곤 했다.

'내가 다 해봤는데, 안돼! 그런 생각을 안 해 본게 아니라고.'
'경쟁사 동향은 어때? XX사가 그런 생각을 안 했던 이유가 있을 거 아냐.'


회의를 통해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었다. 결국, 회의를 지속할수록 의견을 발제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참여율을 강제하지 않는다면 참석하는 사람의 수도 줄어들었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는 행위는 실패한 사례로 보고 되었으며, 조직은 새로움에 대한 리스크를 품는 대신 예전에 해 왔던 방식을 따라가는 것을 당연한 선택으로 받아들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시도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효용을 알아보았던 리더들 덕분이었다. 지금은 그마저도 찾아보기 어렵지만).

'왜 우리가 그런 일을 시도하는 첫 주자가 되어야 하죠? 우리 실력을 과대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 여러차례 그런 시도를 한 탓에 얼마나 많은 비용을 치렀습니까! 지금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는 우리가 모험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확한 계획도 없이 무작정 불길로 뛰어드는 건 성숙한 기업이 갖춰야 할 성격과 맞지 않습니다. 그런 건 우리 유전자에서 찾아볼 수 없죠. 절대 모험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 우리는 그것에 집중해야만 합니다. 그게 뭐냐고요? 에, 그거야...... 다 아는 이야기 아닌가요." (p.215)

결국, 혁신에 대한 시도는 '안정'에 대한 추구로 묻히게 되고,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적인 문구는 새로운 의견이 논의될 기회를 사전에 차단한다.

'결국 예전에 해 왔던 대로 할 거면서, 왜 그렇게 좋은 인력을 데려오려고 애를 쓰지? 똘똘한 놈들 뽑아놓고, 금세 바보로 만들 거 아냐!'

조직이 변화에 대해 강하게 저항을 표현할 때마다, 자연스럽게 떠오른 생각이다. 신입사원들이 조직의 분위기에 익숙해지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처음엔 무엇을 해야 하는지, 하지 말아야 하는지 몰라서 이리저리 부딪히지만, 조금이라도 현실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금세 알아챈다.

조직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 주거나 그냥 '가만히 있거나'의 양자택일 말이다. 그렇게 쉽게 변해버린 신입들을 바라보며, 선배들은 '똑똑한 줄 알고 뽑아놨더니, 금방 쓸모없어졌다'며 투덜거린다. 이런 조직이 과연 어떻게 활기를 띨 수 있겠으며, 혁신할 수 있겠는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직원은 처벌받는다. 일을 빠르게 하지 않는 직원은 스트레스를 받는다. 규정을 지키지 않으면 감찰과 감사가 이어진다. 잔혹할 정도로 모두가 일상적인 업무만 강요받는다.' (p.328)

내 삶만 이런가? 활기를 잃은 조직은 가끔 내가 사람인 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만 같아서 서운하다. 조직은 내가 '생각을 하지 않기'를, '의견을 갖지 않기'를 요구하는 듯하다. 그저, 시키는 일을 실수 없이 처리하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것 같다.

처음엔 '나는 사람이야, 생각할 줄 안다고. 내 생각도 들어줘' 하며 저항을 하다가도, 결국엔 조직이 요구하는 방식에 맞출 것을 다짐한다. 결과적으로, 생기를 잃은 나는 즐겁지 못한 일상의 스트레스로 매일의 삶이 주는 행복감마저 잊는다. 악순환이다. 아마, 많은 직장인들이 느끼는 '불행감'의 기원도 이와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라면, 정말 다행이고!

처방전은 미지에 대한 도전

자, 그럼 우리는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우리의 사회는 각각의 우주를 지니고 태어난 아이들을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을 통해 사회로 내보내면서도 결국은 '멍청한' 조직 안에서 활기를 잃은 불행한 바보로 살아가는 현실을 당연한 듯 받아들이고 있다. 게다가, 최근 우리의 고용 상황을 보면, 이런 불행한 고용 상태가 유지될 수 있는 기간도 평균 10년을 넘지 않는다(거의 30년을 공부하여 세상에 나온 후, 10년을 채 일하지 못하다니, 이런 낭비가 있는가!)

"국가, 단체, 기업, 집단은 미지의 세계를 향해 새롭게 도전할 때 어리석음을 깨끗이 잊는다. 그런 어리석음에 사로잡힐 시간에 없기 때문이다." (p.460)

저자는 우리 사회에게 미지에 대한 도전을 처방전으로 제시한다. 항상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으로 조직의 관심을 돌려야만,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며 바보로 살아가도록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이다.

항상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세상에선 '안정적'인 방법론을 선택할 수가 없다. 결국, 우리는 일상의 어리석음으로 지루해 하는 대신, 각자의 능력을 극대화 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미래가 살아있는 사회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가 아닐까?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들은 70년대의 산업화 이후로 등장했다. 그들은 폭발적인 성장기를 넘어서서, IMF의 대전환 이후로는 지속적인 정체기를 맞이했다(이러한 성장 정체가 가져온 것이 '안정'의 추구이며, 현실에 안주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능'이다. 게다가 최근 몇 년의 경제지표는 '무능한' 기업의 쇠퇴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70, 80년대의 성장주의 경제 정책에 기대어 아이들을 가르쳐서는 곤란하다. 아이들이 금세 바보가 되어 허우적거리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지금까지, 똑똑했던 어른들이 거대 조직 안에서 얼마나 바보가 되어 살고 있는지 '실토'했다. 부디, 우리의 잘못된 선택이 초래한 사회적인 손실을 제대로 한 번 살펴보자. 우리 세대의 현명한 선택으로 '최대 다수의 지속 가능한 최대 행복'이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에 대해 고민하자. 그래야만, '훌륭한 어른이 되려면 공부해야 한다'면서 아이들을 잠도 안 재우고 하루 종일 학원 뺑뺑이 돌리는 것이 덜 미안하지 않겠는가?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나: 조직의 모든 어리석음에 대한 고찰> 군터 뒤크 지음/ 김희상 옮김 (비즈페이퍼)


왜 우리는 집단에서 바보가 되었는가 - 조직의 모든 어리석음에 대한 고찰

군터 뒤크 지음, 김희상 옮김, 비즈페이퍼(2016)


태그:#오늘날의 책읽기, #집단지성은 존재하는가, #혁신과 창의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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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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