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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당사자 강기훈씨. 사진은 지난해 12월 20일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첫 재심 재판에 출석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당사자 강기훈씨. 사진은 지난해 12월 20일 서초동 서울고법에서 열린 첫 재심 재판에 출석하기 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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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16일, '유서대필사건' 재심 결심공판에서 '피고인' 강기훈씨가 말했다.

"과거의 불행했던 일이라 치부하고 어쩌면 잊고 싶었을지도 모를 1991년의 기억들은 이승을 뜨지 못하는 망령처럼 떠돌면서 제 삶을 압박했습니다."

23년 동안 그를 놔주지 않은 유서대필사건의 시작을 알린 것도, 종지부를 찍은 것도 모두 국립과학수사연구원(2010년 이전까지는 국립과학연구소)이었다. 국과수는 지금껏 이 사건 관련 필적 감정을 크게 세 차례 했다. 그때마다 강씨는 천국과 지옥을 오고갔다. 23년 동안 국과수의 판단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1차 감정] "비교할 수 없다"던 감정 결과는 왜 바뀌었나

시작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5월 10일 국과수에 도착한 첫 번째 감정의뢰 대상은 검찰이 보낸 김기설씨의 유서와 그가 큰누나에게 선물한 '책 표지'였다. 검찰은 5월 13일에 추가로 주민등록증 분실신고서와 전민련 업무일지, <정세연구>책 표지의 감정을 요청했다.

이틀 뒤 1·2차 감정 내용을 종합한 첫 번째 답변이 나왔다. 국과수는 유서와 업무일지는 필적이 같고 '책 표지'와 주민등록증 분실신고서의 필적이 동일하다고 밝혔다. 단 유서는 빠르게 흘겨 쓴 '속필체'이고, '책 표지'·주민등록증 분실신고서의 필적은 '정서체'여서 한 사람의 글씨인지를 두고 논단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유서와 <정세연구> 책 표지는 대조할 문자가 부족해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5월 25일 감정 결과서의 내용은 달랐다. 검찰은 5월 23일 국과수에 김기설씨의 유서와 주민등록증 분실신고서, 이력서, '책표지', 친구에게 준 편지와 카드를 감정해달라고 요청했다. 6번째 감정 의뢰였다. 국과수는 이전과 달리 주민등록증 분실서의 필적이 유서와 다르다고 답했다. 두 자료는 비교 대상이 아니라던 감정 결과가 변한 것이다.

열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새로운 인물, 강기훈이 등장했다. 5월 13일 김씨의 여자친구 홍성은씨를 조사한 검찰은 그에게서 김기설씨의 메모와 "강기훈씨로부터 김씨를 소개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검찰은 곧바로 강씨의 형사사건기록을 입수, 그가 1985년 경찰에서 작성한 자필진술서를 찾아냈고 5월 15일 국과수에 김씨의 메모와 강씨의 진술서, 유서를 비교해달라고 했다.

이후 국과수는 줄곧 '유서의 필적은 강기훈씨의 것'이라는 취지의 감정결과서를 회신했다. 유서대필사건의 유일하면서 결정적인 증거였다. 1심과 항소심 재판부, 대법원 모두 이를 근거로 강씨의 '자살방조죄' 혐의는 유죄라고 선고했다.

[2차 감정] 국과수, 16년 만에 감정 결과 뒤집다

강씨는 계속 진실을 밝히려 했지만 좀처럼 길이 보이지 않았다. 1994년 만기출소하고 10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한줄기 빛이 보였다. 경찰청 '과거사정리위원회'가 2005년 김기설씨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노트' 등 새로운 필적을 발견한 덕분이었다. 그해 말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자료들에 주목, 2006~2007년 진상조사에 들어갔다. 이 과정에서 강기훈씨의 또 다른 필적들도 발굴됐다.

진실화해위는 기존 필적들과 새로운 자료들의 감정을 사설감정원 7곳과 국과수에 의뢰했다. 감정기관들은 모두 "유서는 김씨가 쓴 게 맞다"고 했다.

국과수는 16년 만에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했다. 1991년과 2007년 감정에 모두 참여한 국과수 직원은 진실화해위에 출석해 "(1991년 감정에선) 가장 초보적인 원칙이 무시됐다"며 "김형영 실장이 김기설씨의 필적 변화, 속필체와 정자체의 대조 등을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김기설씨만의 고유한 필기습관이 있다고 상세하게 설명했다.

"'ㅆ'에서 2획을 생략하는 버릇은 그야말로 김기설씨 고유의 필습입니다. 또 하나 'ㅎ'의 기필 순서인데, 김씨는 같은 문장 안에서도 우하방과 좌하방이 혼재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종성의 받침을 작게 쓰는 것도 김기설씨만의 독특한 운필습성이며 유서를 비롯한 김씨의 대조자료들 중 대부분 필적에서 일관되게 관찰됐습니다."

2007년 11월 14일, 진실화해위는 "'강기훈씨의 필적과 유서는 상이하고, 김기설씨의 필적과 유서는 동일하다'는 일치된 판단이 내려졌다"고 공식 발표했다. 또 당시 감정을 김형영 실장이 주도했고 다른 직원들은 서명을 하고 도장만 찍었는데도 공동 감정을 진행한 것처럼 허위 증언을 했다고 밝혔다. 강씨는 이 내용을 바탕으로 재심을 청구했고, 2009년 서울고법은 같은 취지로 재심 개시를 결정했고 검찰은 즉각 항고했다.

[마지막 감정] 2007년 판단 뒷받침..."유서는 김기설이 썼다"

3년 뒤 최종적으로 재심 개시를 결정한 대법원은 진실화해위의 필적 감정 결과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2년 12월, 다시 법정 다툼을 시작한 검찰과 강기훈씨는 전대협노트의 증거능력을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필적 감정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2013년, 국과수는 유서대필사건의 마지막 필적 감정을 시작했다.

그해 12월 12일 법원에 제출된 감정 결과서는 2007년 것과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유서와 전대협노트 등이 김기설씨의 것임을 더욱 뒷받침하는 결과가 담겨 있었다. 2013년 국과수는 김씨만의 특징 7가지를 정리했다. 종성 'ㄱ', 숫자 '8과 9', 초성 'ㅍ과 ㅁ', '는'과 'ㅆ'을 쓰는 고유한 습관이 있다는 것이다. 국과수는 이 필습의 희소성을 입증하기 위해 700명의 필적을 대조했다. 이 가운데 김기설씨 필적의 특징 7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2014년 2월 13일, 법원은 마침내 강기훈씨를 향해 "피고인은 무죄"라고 말했다.

 '유서대필사건' 강기훈-김기설 필적 감정 결과





태그:#강기훈, #김기설, #유서 대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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