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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꿈이 뭐니?" 우리가 흔히 아이들에게 묻는 말이다. '꿈'의 사전적 정의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이다. 예문에는 '어릴 때는 과학자가 되고 싶은 꿈을 가졌었다'와 함께 '그는 공부를 계속하고 싶은 꿈을 버릴 수가 없어서(하략)'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러니까 꿈은 '되는 것'이기도 하고 '하는 것'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무언가가 되기 위해서는 그 과정에 필요한 일들을 열심히 해야 하고 또 원하는 것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뭔가가 되어야 하기도 하니 '꿈'이라는 말에 이 두 가지 뜻이 함께 있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우리가 '꿈'을 이야기할 때 자주 함께 쓰는 표현이 있다. 바로 '이루다', '실현하다', '완성하다', '달성하다' 따위의 말이다. 그 중 '꿈'과 함께 가장 흔히 쓰이는 '이루다'의 사전적 의미 가운데 '꿈'과 관련된 것은 '뜻한 대로 되게 하다'이다. 다시 말해 적어도 사전에서 규정지은 '꿈을 이룬다'는 말은 '무언가가 되거나 또는 어떤 상태가 되겠다고 마음 먹고 그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서 결국은 그 무엇이나 그 상태로 되는 것'을 뜻한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이루다'라는 말의 뜻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꿈'과 관련한 이미지를 '무엇을 하고 있는 나'로 떠올리기 보다는 '무엇이 되어있는 나'로 그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흔히 던지는 그 질문 "넌 꿈이 뭐니?"는 종종 "넌 뭐가 되고 싶니?"로 이해된다. 왜냐하면 '꿈'은 '이루는 것'이니까. 적어도 우리 사회 구성원 다수는 그렇게 생각하고 언론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교실에서도 그렇게 가르치니까. 때문에 "넌 꿈이 뭐니?"라는 질문에 돌아오는 대답은 주로 "저는 뭐가 되고 싶어요"다. 가끔 "저는 우주선을 만들고 싶어요"라고 대답하는 아이에게 "아 너는 우주 과학자가 되고 싶은 게로구나"라며 바꾸어 말해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꿈'은 되는 거니까. 적어도 그 질문을 던진 어른의 생각에는 그러니까. 뭐 우주선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주 과학자가 되어야 하지 않냐고 누가 묻는다면 할 말 없다. 맞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보자. 어른이 되어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싶은 아이는 있어도 단순히 '유부녀'나 '유부남'이 되고 싶어하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해서는 일단 결혼을 해야 하고 결혼을 하면 유부녀나 유부남이 되는 것이긴 하지만 그걸 꿈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국가대표 축구선수로서 경기에서 멋진 활약을 하고 메달이나 트로피를 받고 싶은 아이는 있을지 몰라도 대표팀 유니폼만 입고 벤치에 내내 앉아 있기를 원하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그 아이의 꿈은 국가대표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대표로서 경기에 참여하는 것이다. 꼭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지만 무엇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무엇이 되어야 하는 일이 많다. 부정하지 않겠다. 하지만 무엇이 되는 것은 그 무엇이 되고 난 다음에 쭉 그를 통한 무엇을 하기 위한 관문이어야 하지 되는 것 자체가 꿈이어서는 곤란하다.

대통령이 되는 것이 꿈인 사람은 대통령이 되는 순간 이미 꿈을 실현하게 되는 셈이다. 이미 꿈을 이룬 대통령에게 국민을 위해 어떤 꿈을 더 가지라고 요구할 수 있을까? 하지만 대통령이 되어서 국민들을 위한 훌륭한 정치를 하겠다고 꿈을 꾸는 사람은 대통령이 되는 순간 이제 겨우 꿈을 펼칠 수 있는 출발점에 서있게 된다. 전문경영인이 되겠다고 꿈꾸는 사람은 그렇게 된 자신의 모습만을 그려봤기 때문에 혹여 그렇게 되더라도 그 이후에 할 일은 그제야 계획하게 될 것이다. 반면에 전문경영인으로서 사내 임직원과 고객, 그리고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기여할 수 있는 훌륭한 경영활동을 하겠다는 꿈을 가진 사람에겐 오래 전부터 구상해 온 구체적인 계획들이 머리 속에 가득할 것이다.

그건 나중의 일이고 일단 되고 봐야 할 것 아니냐고 말하는 이가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단 되는 것만 생각한 채 된 다음에 대한 계획이나 목표가 서 있지 않으면 운이 좋아 뭔가가 되더라도 곧 그 끝을 만나게 될 것이다. 즉, 되기가 아니라 하기를 꿈꿔야 비로소 그 됨을 오래도록 지켜낼 수 있다. 영화 한 편을 연출한 후 10년 이상 후속 작품이 없는 이를 영화감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많이 양보해도 영화감독이었던 사람이라고 인정해주는 것으로 족하다. 그저 작은 식당의 주인이 되는 것만 꿈꾼 사람이 매일매일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정성과 사랑을 다해 음식을 만들어 봉사하는 인근의 식당들과 경쟁하며 손님을 꾸준히 확보할 수 있을까? 적어도 내 식당에서 팔리는 음식에 나만의 철학을 부여할 수 없으면 아예 시작조차 하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선생님이 되길 꿈꾸지 말고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잘 가르치길 꿈꿔야 한다. 의사가 되길 꿈꾸지 말고 몸이나 마음이 아픈 이들을 위해 즐겁게 일하겠다는 꿈을 꿔야 한다. 변호사가 되길 꿈꾸지 말고 더 많은 사람들이 법의 울타리 안에서 마땅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며 보호받을 수 있도록 애쓰겠다고 꿈꿔야 한다. 성실히 연구하며 지식과 지혜의 바다를 마음껏 누비겠다는 욕심 없이 그저 명문대학생이 되겠다는 꿈만으로는 겨우 졸업장이나 받고 사회로 나와 미래가 불투명한 젊은이가 될 뿐이다. 나라와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의지와 비전 없이 그저 공무원이 되겠다는 꿈만으로는 아까운 세금이나 축내는 탁상행정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다.

이제부터 이렇게 해보면 어떨까? "넌 꿈이 뭐니?"라는 질문과 함께 "넌 뭐가 되고 싶니?"라고 묻지 말고 "넌 무얼 하고 싶니?"라고 말이다. "저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하는 아이에게 "넌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며 팬들에게 사랑 받고 싶은 게로구나"라며 이야기해주고, "저는 부자가 되고 싶어요"라고 대답하는 아이에게 "넌 열심히 일하고 돈도 많이 벌어서 풍요롭고 넉넉한 삶을 살고 싶은 게로구나"라고 말해주면 어떨까? 아이들이 무엇이 된 나의 모습 속에 나를 가두게 하지 말고 무엇을 할 수 있는 나, 무엇을 하고 있는 나를 마음껏 상상하게 하면 어떨까? 우리 이제 그러면 어떨까?


태그:#꿈, #장래희망,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것, #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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