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오후 2시, 충남 태안군청 대강당에서는 뜻깊은 추도 행사가 있었습니다. '한국전쟁 태안군 민간인 희생자 63주기 제5회 합동위령제'라는 이름의 행사였습니다. 저는 지난 2009년의 제1회 때부터 매년 이 행사에 참석해왔는데, 올해 행사에는 제가 추도시를 낭송하여, 더욱 뜻깊은 행사가 되었습니다.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태안유족회'에서 만든 책자에 이름이 올라 있는 태안군 민간인 희생자 영위는 무려 1041명에 이릅니다. 물론 전체는 아닐 것으로 추정합니다. 예전에 고향을 떠나 왕래나 소식 없이 살고 있는 유족들도 있을 터이기에, 아직 파악되지 않은 영위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태안유족회가 발족을 하고 2009년 10월 24일 태안군청 강당에서 제1회 합동위령제를 올린 이후 여러분의 영위가 속속 추가되었는데, 앞으로도 추가되는 영위는 더 늘어날 것으로 생각됩니다.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전국유족회'와 각 지역의 유족회가 속속 발족을 하고 해마다 합동위령제 행사를 갖는 것 역시 역사 발전의 한 가지 예표이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12월 1일 출범했다가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12월 말로 활동이 종료된 '진실화해위원회' 덕분에 이 정도나마 역사 진전이 있게 되었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얘기에도 발끈하고 고깝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지 몰라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진실이 규명되고 그 진실의 바탕 위에서 화해의 역사를 만들어가며 평화로운 세상을 추구한다는 것은 우리 민족은 물론이고 모든 인류의 최고 미덕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올해도 이 행사는 태안군청 대강당에서 거행되었습니다. 태안유족회가 주최했고, 충남도와 태안군, 전국유족회, 태안 참여자치 시민연대, 동학농민혁명 내포유족회가 후원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또 안희정 충남지사가 추도사를 보내왔고, 성완종 국회의원, 김진권 태안군의회의장, 양용해 전국유족회장이 직접 추도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추도시를 낭송한 다음 진실화해위원장이었던 안병욱 가톨릭대 명예교수가 강연을 했습니다. 안병욱 교수는 2009년의 제1회 합동위령제 때도 먼 길을 오시어 좋은 말씀을 들려주셨는데, 4년 만에 다시 올해 행사에도 참석해 주시어 고마운 마음 컸습니다.
저는 처음 뵙는 안병욱 교수께 지난해 출간한 제 목적시집 <불씨>와 올해 출간한 목적시집 <그리운 천수만>을 사인하여 선물했고, 최근(10월 4일) <오마이뉴스>에서 읽었던 안병욱 교수 인터뷰 기사 <마피아 보스랑 비슷…박근혜의 봄날은 갔다>와 관련하여 잠시 얘기를 나눴습니다.
올해의 행사에서는 마음 아픈 두 가지 '사건'도 있었습니다. 행사 시작 전 대강당 로비에서 작은 소란이 한 번 있었고, 행사 후 지하식당의 음식을 나누는 자리에서도 작은 소란이 있었습니다. 각기 다른 두 사람이 술에 취한 상태로 고성을 지르고 시비를 걸어서 발생한 소란이었습니다.
그 소란의 성격, 소란을 피운 사람들의 흉금과 관련하여 다음에 글을 하나 쓸 생각입니다. 그리고 제가 낭송한 추도시의 내용, 추도시 안에 등장하는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중의 한 분인 제 둘째 큰아버지와 한국전쟁 참전용사인 제 숙부에 관한 얘기도 간추려서 별도로 소개해 볼 생각입니다.
그 두 가지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우선 오늘은 지난 9일 오후 태안군청 대강당의 합동위령제 행사에서 직접 낭송했던 제 추도시를 소개합니다.
60여 년 전의 피울음을 뜨겁게 위로하자-한국전쟁 태안군 민간인 희생자 63주기 제5회 합동위령제에 부쳐 내 어렸을 적동네 아저씨 한 분이 우리 집엘 자주 오셨다라디오도 없던 시절 등잔불 옆에서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그 아저씨의 갖가지 옛날이야기가 내 눈망울을 빛나게 했다훗날 그 아저씨가 이사 가고 여러 해가 지났을 때나는 아버지에게서 그 아저씨 말을 들었다6·25전쟁 때 아버지와 형을 잃고어머니와 단둘이 쓸쓸하게 살던 이라고 했다그 이야기를 들은 후로나는 한티고개를 지날 때마다 몸이 으스스 하곤 했다화동초등학교에 근무하는 누이를 보러한티고개 근처 샛길을 지나던 어느 날은바위 위에 앉아 그 아저씨를 오래 추억하며눈물을 머금기도 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둘째 큰아버지가 늘 궁금했다6·25때 돌아가셨다는 말에 처음에는 군에 입대하기 위해 군용트럭에 올라 주먹을 휘두르며 큰소리로 함성을 지르던 삼촌을 떠올리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서야 내 둘째 큰아버지는 보도연맹에 이름을 올린 처남 때문에태안지서 앞 2층 집으로 끌려가서 치안대의 몽둥이찜질로 초죽음이 된 후근흥면 두야리 산속에서 사살된 사실을 알게 됐다그 후 나는 경이정 근처 낡은 목조이층집 앞을 지날 때마다몸을 곱송그리곤 했다그때부터 나는 이상한 의문에 시달렸다내가 만일 6·25전쟁 때 청년이나 장년으로 살았다면나는 과연 무사했을까? 보도연맹사건 자체도 이승만 정권의 기만으로 빚어진 일인데 보도연맹 명부에 처남의 이름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목숨을 잃은 둘째 큰아버지와 같은 일을 나는 당하지 않을까?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나는 민주주의와 인권을 더 많이 생각했고역사발전에 대한 신념과 희망을 더욱 크게 품었다 역사는 수레이며, 수레에는 바퀴가 있다수레바퀴는 앞으로 나아가는 항진력을 지니고 있다지구의 항진력으로부터 오는 원리다그리하여 역사의 수레바퀴는 오늘도지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때로는 너덜겅 위에서 멈칫거리거나 뒤뚱거리고된비알 위에서 잠시 뒤로 밀리기도 하지만역사의 수레바퀴는 항진력을 결코 잃지 않는다역사라는 이름의 수레에는 불빛이 있다어둠을 비추고 몰아내는 불빛이다바퀴의 회전과 함께 하는 불빛이다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그 불빛으로 우리는 오늘 60여 년 전의 억울하고 슬픈 죽음들을 비추어내고 위로한다야만적이고 잔인했던 미망의 세월을 뜨겁게 반성한다지난날을 돌아보는 기억의 눈이 없다면지난날의 무지와 어리석음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역사의 수레바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진정한 역사수레바퀴의 참다운 항진을 위하여우리는 오늘 또다시 60여 년 전의 억울한 죽음들 앞에 촛불을 밝히고뜨거운 마음으로 다짐한다60여 년 전의 저 억울한 죽음들을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의 밑거름으로 승화시켜야 할막중하고도 숭고한 책무가 우리에게 있음을 오늘 뜨겁게 상기한다기억하고 반성하고 다짐하며화해와 평화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비장한 마음으로저 60여 년 전의 피울음들을 뜨겁게 위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