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대통령 선거 때 고 박정희 대통령의 여자 문제를 다룬 언론 칼럼을 인터넷에 올린 시민이 공직선거법 위반(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고 있는 속에, 법원이 칼럼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라고 검찰에 요구했다.

24일 오전 창원지방법원 제4형사부(재판장 이완희 부장판사)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정규(51·창원)씨에 대한 공판에서 이같이 밝혔다.

박씨는 대통령선거를 앞둔 지난해 9월 26일 인터넷 포털사이트(다음) '아고라 즐보드 직찍·제보'란에 '박정희 대통령의 성노예가 된 슬픈 사연'이란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는 미국에서 발행되는 <한겨레저널>에 재미언론인 김현철(78)씨가 썼던 '박정희의 승은 입은 200여 여인들'이란 제목의 칼럼을 옮겨온 것이었다. 지난해 선거관리위원회가 박씨를 고발했고, 창원지방검찰청이 지난 3월 기소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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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박정희 대통령의 여자 문제를 다룬 '김현철칼럼'을 인터넷에 올렸다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박정규(왼쪽)씨가 24일 오전 창원지방법원에서 공판을 마친 뒤 김형일 변호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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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박씨에 대해 "후보자에게 불리하도록 후보자와 후보자의 직계존속에 관한 허위사실을 공포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검찰은 박씨를 기소하면서 <한겨레저널>과 김현철씨를 상대로 한 칼럼 내용의 사실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8월 27일 열린 공판 때 박씨 측 김형일 변호사는 '변호인 의견서'를 통해 김현철씨의 '미국 시민권 증명서 사본', '여권사본', '재직증명서'와 함께, 김씨의 연락처를 알 수 있는 '포털사이트 다음 회원정보관리 페이지 출력본' 등을 제출했다.

이날 열린 공판에서 김형일 변호사는 "박정규씨는 박정희 대통령의 여인들과 관련한 칼럼을 게시해 기소됐는데, 김씨는 칼럼 내용과 사실이 일치한다고 확인서를 보내와 제출한다"면서 "칼럼 내용이 허위라면 검찰에서 조사를 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았고, 변호인이 낸 의견서에 대해서도 반박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김 변호사는 김현철씨와 주고 받은 이메일 내용과 함께, 김씨의 취재기록 사본도 함께 제출했다. 김씨는 김 변호사한테 보낸 '사실확인서'를 통해 "한국 수사 기관에서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법정에 나온 창원지검 공판검사는 "김현철씨의 인적사항 관련 자료를 엊그제 받아 칼럼내용의 근거가 무엇인지에 대한 사실 조회를 위해 우편으로 보냈다"고 말했다.

이에 이완희 부장판사는 "검찰에서 사실관계 확인을 하지 못한 것인데, 우편으로 가고 오고 하면 시간이 걸리기에 이메일이나 전화로 해서 수사 보고 자료를 내주면 될 것 같다"면서 "검찰에서 직접 사실 확인을 해달라"고 주문했다.

김현철씨는 미국으로 이민 갔던 전 영화배우의 진술을 바탕으로 "결혼해 아이가 있던 영화배우가 청와대 채홍사(여성을 뽑아 왕에게 바치는 벼슬아치)를 통해 궁정동 안가로 불려가 고 박정희 대통령의 성노예가 됐고, 어느날 고 박정희 대통령이 자신을 미국으로 보내 한 노인과 결혼하게 했다"는 내용의 칼럼을 썼다.

박씨는 김현철 칼럼을 옮겨 실으면서 "박근혜 후보는 국민 앞에서 '대한민국의 성범죄자에 강력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악랄한 성폭행 범죄에 대해서 왜 사죄하지 않는가?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갓난애의 엄마를 악랄하게 성폭행하여 가정을 파괴시키고 한국판 위안부(성노예)로 만든 행위에 대해 사죄하라"는 취지의 글을 덧붙였다.

한편 같은 김현철칼럼을 트위터의 트윗픽(twitpic)에 올렸던 고창규(53)씨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는데, 수원지방법원 안양지원은 최근 벌금(500만 원)을 선고했고, 고씨는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박정규씨에 대한 다음 공판은 11월 19일 창원지법 315호 법정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