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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희가 일으킨 쿠데타를 미화했다는 지적을 받는 교학사 교과서 324쪽.
 박정희가 일으킨 쿠데타를 미화했다는 지적을 받는 교학사 교과서 324쪽.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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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쿠데타를 미화하고,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를 비하한 내용은 손도 대지 않았다."

교육부가 내놓은 교학사의 <고교 한국사> 교과서에 대한 수정 권고 내용을 본 역사교사들과 학자들은 22일 이 같이 입을 모았다. 앞서 21일 오후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 8종에 대해 모두 829건의 수정·보완 사항을 마련했다고 발표했다. '친일·독재 미화' 논란에 휘말렸던 교학사 교과서의 수정 권고 건수는 251건으로 다른 교과서에 견줘 2∼4배나 많았다.

왜 교육부 권고는 박정희 앞에서 숨 죽였나?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에 대한 교육부 권고내용을 분석해본 결과, 교육부는 '친일 미화' 내용은 일부 손을 봤지만, '독재 미화' 지적을 받은 내용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일으킨 쿠데타를 미화하고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의 정책을 비하한 것 아니냐"는 역사학계의 지적을 묵살한 셈이다.

이번 교학사 교과서 관련 수정 권고에서 박정희 대통령 미화 내용은 빠져 있었다. 교학사 교과서 324쪽은 5·16 군사쿠데타에 대해 다음처럼 설명하고 있다.

"김일성이 1960년 8월에 남북 연방제를 제안하는 등 은밀한 적화를 기도하였다. …장면 정부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 …경찰의 치안 능력을 약화시켜 혼란을 자초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정희를 중심으로 일부 군인들이 쿠데타를 단행하였다."

이 내용은 역사학자들로부터 "장면 정부의 무능과 쿠데타의 정당성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데도 쿠데타의 책임을 장면 정부에게 떠넘기는 부적절한 서술"이란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이 내용은 그대로 살아남았다.

물론 '쿠데타 미화 표현'이란 지적을 받은 후 다음과 같은 내용도 놔뒀다.

"5·16 군사 정변은 헌정을 중단시킨 쿠데타였다. 하지만 반공과 함께 자유 우방과의 유대를 강조하였다. 대통령 윤보선은 쿠데타를 인정하였다. 육사 생도도 지지 시위를 하였다. 미국은 곧바로 정권을 인정하였다."

한국역사연구회 등 4개 역사단체는 위 내용에 대해 과장이며 오류가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쿠데타 진압까지 검토한 미국이 곧바로 승인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며, 육사 생도 지지 시위 또한 관제 시위였다"는 지적이었다.

교학사 교과서의 다음과 같은 내용은 '박정희 대변인' 교과서란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 그 내용 또한 살아남았다.

"박정희 정부는 빈곤과 정체에서 잠자고 있는 농촌을 깨워 일으키지 않으면 한국의 근대화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확신하였다. …새마을운동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농촌 생활 모든 면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온 매우 성공적인 농촌 발전 운동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334∼335쪽)

위 '새마을운동'이 나오는 한 문장에서만 '모든', '매우', '높이',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등 꾸며주는 말이 4개나 나오는 것은 여느 교과서에서 찾기 어려운 서술방식이다.

 교육부가 금성출판사에게 박정희 관련 내용을 고치라고 권고한 문서.
 교육부가 금성출판사에게 박정희 관련 내용을 고치라고 권고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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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교육부는 다른 출판사 교과서에 대해서는 박정희 관련 비판 내용의 수정을 권고했다.

금성출판사가 "박정희 정부 시기 외자 도입이 부작용도 많았다. …1997년 말에 외환 위기가 일어나는 한 원인이 되었다"고 서술한 내용을 고치도록 권고한 것이다.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다"는 게 권고 이유였다.

천재교육 교과서에 대해서도 교육부는 "북한은 박정희가 일본 도쿄에서 김대중을 납치하여 죽이려 한 사건을 빌미로…"란 내용을 고치도록 권고했다.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단정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러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을 담은 교학사 교과서 내용은 그대로 실리게 됐다. "박정희,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미화와 달리 민주정부에 대해서만 편파 해석한 것은 공정하지 않다"는 학계의 지적을 교육부가 무시한 것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327쪽에서 김대중 정부에 대해서는 "지나친 대북 유화 정책을 추진하여 북한으로 하여금 미사일과 핵을 개발하도록 하는 기회를 주었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적었고,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법치의 규범을 약화시켰다는 비판도 받고, … 대북 유화책이 두드러져서 안보에는 소홀하다는 비판도 받았다"고 서술했다.

한국교총이 노동단체? 오류 지적도 제대로 안해

22일 유기홍 민주당 간사를 비롯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 소속 14명의 야당 의원들은 성명에서 "교육부의 이번 수정 지시는 새누리당이 주장해 온 편향적 역사관을 반영한 박근혜 정권·새누리당 맞춤형 수정 지시에 불과하다"면서 "우리는 교육부의 뒤에 유신독재를 미화하고자 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역사 쿠데타 음모가 작동하고 있음을 의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교총을 노동단체로 기술한 교학사 교과서 336쪽.
 한국교총을 노동단체로 기술한 교학사 교과서 336쪽.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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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교육부가 교학사 교과서에 대해 권고 건수 축소에 매달리다보니 오류를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를 노동 단체로 서술한 내용이다. 교학사 교과서는 336쪽에서 "노동 단체가 복수화 되어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외에도 전국민주노동조합연맹이 조직되었다"면서 곧바로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외에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조직되었다"고 적었다. 한국교총을 한국교총조차 부인하는 노동 단체라고 규정한 것은 명백한 오류다.

덧붙이는 글 | 인터넷<교육희망>(news.eduhope.net)에도 보냈습니다.



태그:#교학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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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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