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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한 나라의 국민이 쓰는 말'로 풀이되어 있다. 영어로 번역하면 'national language' 정도쯤 되겠다. 우리나라의 국어는 한국어다. 일본어는 일본의 국어다. '국어'라는 단어는 이렇게 어떤 나라의 언어를 가리킬 때 쓰이는 일반명사로 분류된다. 그러니 고유명사로 쓰일 수 없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교육과정의 한 교과목인 '국어'는 '한국어'로 쓰는 게 맞다. 대학교 학과 명칭인 '국어국문학과'나 '국어교육학과'도 '한국어문학과'나 '한국어교육과'로 해야 한다. 실제로 2000년대 이후 '한국어문학'이나 '한국어교육'이라는 표현을 학과 명칭으로 쓰는 대학이 제법 생겨났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일반명사인 국어가 고유명사처럼 쓰이던 때가 있었다. 일제시대다. 문제는 이때의 '국어'가 우리가 익히 아는 그 '국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일제시대의 국어는 한국어나 조선어가 아니라 일본어를 가리키는 이름이었다. 우리 국권을 빼앗은 일제는 우리에게 자신들의 언어인 일본어를 국어로 강제했다. 말에 담긴 우리 정신과 얼을 빼앗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당시 진정한 의미의 우리 국어는 조선어였다. 그래서 '국사편수회'가 아니라 '조선사편수회'라는 이름이 나왔고, '한국어학회 사건'이 아니라 '조선어학회'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 260쪽에는 '제2차 조선 교육령'의 구체적인 내용이 상단 책 날개 부분에 개조식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중 두 번째 내용이 '한국인에게 한국어 필수화'다. 대단원 Ⅴ('일제 강점과 민족 운동의 전개')의 네 번째 중단원인 '국내 민족 운동의 전개'에서 '교육과 과학을 민족 실력 양성 운동'이라는 제목의 소절에 딸려 있는 내용이다. 대단원 Ⅴ는 이명희 공주대 역사교육과 교수와 김남수 대전외고 교사가 맡아 썼다.

9월 10일, 한국역사연구회와 역사문제연구소 등의 4개 역사연구단체가 교학사 교과서를 검토한 결과물을 내놓았다. 검토자들은 이 자료의 29쪽에서 '국어'가 '한국어'로 둔갑한 교학사 교과서의 서술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는 내용을 실어놓았다. 교과서의 관련 본문을 보자.

3·1운동 이후 교육을 통해 실력을 기르려는 운동도 활발하였다. 한규설, 이상재 등 민족 지사들은 조선 교육회를 설립하여(1920), 교육의 기회균등을 위한 학교 증설, 교육 차별 폐지, 한국어 교육 용어 사용, 한국사 교육 등을 주장하였다. 이를 수용하여 일제도 조선 교육령을 개정하였다. (260쪽)

교학사 교과서 저자는 이 대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왼쪽 상단에 문제의 '제2차 조선 교육령' 자료를 실어 놓은 것이다. 그런데 검토자들은 날개 자료가 인터넷 자료(위키백과)를 무분별하게 잘못 인용한 것으로 보고, '중대 오류'의 사례로 분류해 놓았다. 위키 백과에서 실제와 정반대로 잘못 소개한 내용을 교학사 저자들이 그대로 교과서에 게재했다고 본 것이다.

그 근거가 무엇일까. 검토자들은 교학사 교과서 저자가 날개에 소개한 항목의 두 번째 내용, 곧 '한국인에게 한국어 필수화'를 문제삼는다. 검토자들에 따르면, 한국어와 일본어는 제1차 교육령에서도 필수였다. 제2차 교육령에 와서 비로소 한국인에게 한국어를 필수화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검토자들은 제2차 조선 교육령 어디에도 '조선어(한국어)', '필수'라는 말이 들어 있지 않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또한 한국사에 무지한 위키백과가 조선 교육령에서 '국어'라고 표기한 것을 교학사 교과서 저자가 '한국어'로 착각해 소개했다고 비판한다. 검토자들에 따르면, 조선 교육령의 '국어'는 '일본어'이기 때문이다.

검토자들은 제1차 조선 교육령과 제2차 조선 교육령의 언어 관련 정책도 대비하였다. 1911년에 나온 제1차 조선 교육령에서는 "보통교육은 ··· 국어(일본어: 인용자)를 '보급'(따옴표- 필자)함을 목적으로 한다"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제2차 조선 교육령에서는 "보통학교는 ··· 국어(일본어: 인용자)를 '습득'(따옴표-필자)시킬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고쳐졌다. 보통교육(학교)의 목적이 국어(일본어)의 '보급'에서 '습득'으로 바뀌면서 일본어 교육이 강화되었던 것이다.

실제로 검토자들이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제1차 조선 교육령 시기(1911~1921)의 한국어(한문 포함)와 일본어 수업시수는 각각 22시간 대 40시간이었던 것이, 제2차 조선 교육령 시기(1922~1937)에 14시간 대 46시간으로 되어 있다. 한국어 수업이 축소되는 대신 일본어 수업이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검토자들이, 제2차 조선 교육령 시기에 한국인에게 한국어가 필수화했다고 소개한 교학사 교과서의 논리를 중대 오류 사례로 분류한 까닭이다.

어떻게 해서 이런 '중대 오류'가 생겼을까. 사실 조선 교육령과 같은 전문자료(?)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일제시대의 '국어'가 '한국어', 곧 '조선어'가 아니라 '일본어'를 뜻한다는 사실은 역사에 조금만 관심이 있는 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을 만한 '상식'이다. 하물며 역사를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 교사임에랴.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 저자들 사이에서는 이 '상식'이 통하지 않았다. 이는 교학사 교과서를 최종 심사하기 위해 꼼꼼히 들여다본 7명의 검정위원(검정심의위원장 포함)과 기초 내용조사를 담당한 8명의 연구위원들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나름대로 쟁쟁한 경력과 실력을 소유하고 있었으니 교과서 저자로 참여하고 검정·연구위원에 위촉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그 '상식적인' 역사 지식이 통하지 않았을까. 21명(저자 및 검정심의위원 전체를 포함한 숫자)이나 되는 자칭·타칭 역사 전문가 모두가 일제시대의 '국어'를 '일본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알고 있었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그들 모두가 실수한 것일까.

검정심의위원들은 그랬을 수도 있다. 짧은 기간에 평균적으로 400여쪽에 이르는 심사본 8종을 살펴야 했으니 내용조사가 부실해질 개연성이 얼마든지 있다. 그러니 중대오류를 실수로 누락해 잡아내지 못했다면, 그리하여 그런 사실을 바깥에서 지적하고 알려주면 출판사나 저자측에서 서둘러 잘못을 인정하고 고치면 된다. 부실해질 수 있는 교과서를 알차게 해주는 것이니 오히려 고개 숙여 감사해야 한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 저자들은 오히려 큰소리다. 지난 10일, <채널 A>의 종합뉴스에 '정치권,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 이념 논쟁'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보도되었다. 이 보도에 교학사 교과서 근현대사 부분의 집필자로 알려진 이명희 공주대가 출현해 출현했다. 그는 제2차 조선 교육령의 '한국인에게 한국어 필수화'가 중대 오류라는 비판에 대해 '허위 주장'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민족운동의 공간을 확대하면서...그중에 하나가 한국어 교육을 각급 교에 필수화 해달라고 하는 요청해요...특정세력에서 조직적으로 하는 건지 전혀 근거가 없어요. 그쪽 얘기는 (<채널 A> 정동연 기자의 기사 중에서)

명백한 사실과 근거에 입각한 비판을 '허위 주장'이라고 일축하는 그 과도한 자신감은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그의 뒤에는 여권의 최고 실세 중 하나인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이 있다. 그는 어제(11일) 김 의원이 주도한 '새누리당 역사교실' 두 번째 모임의 강사로 초청되어 강연을 했다.

'좌파와의 역사전쟁 승리'를 외친 김 의원의 의중을 따랐는지, 그가 내뱉은 말들은 '격문'에 가까웠다. 현 국면이 유지되면 10년 내 한국 사회의 구조적 전복이 가능하다면서 대통령 직속 이념·문화 담당 특보 신설과 대한민국사편찬법 제정 등을 촉구했다. 보수·우파 진영의 역사학계 진지 구축도 역설했다. 그의 말에 강연에 참석한 새누리당 의원 50여 명이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고 한다.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서남수 교육부 장관이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 합격을 취소할 것 같지는 않다. 서 장관과 교육부는 교학사 교과서를 포함하여 나머지 한국사 전체를 검토해 문제점이 발견되면 수정·보완하는 식으로 논란을 끝막음할 태세다. 우리 학교의 어느 선생님 말씀마따나, 한 반에서 불량 학생 하나가 노골적으로 부정 행위를 저지르자 그 반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재시험을 치르겠다는 심보와 다름 없는 행태다. 하지만 이 심보를 버릴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적극적인 채택 거부밖에 다른 길이 없다. 2001년, 일본에서도 역사 교과서 파동이 있었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후쇼사와 함께 극우 성향의 교과서를 만들어 보급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에 양심 있는 일본 국민들과 시민사회단체에서 대대적으로 교과서 채택 반대 운동을 벌였다. 그 결과 후쇼사 교과서의 첫 해 채택률은 0.039%에 그치게 되었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가 후쇼사의 새역모 교과서보다 더 친일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판국이다. 그러니 우리는 새역모 교과서의 첫 해 채택률 0.039%보다는 훨씬 낮게 나와야 하지 않겠는가. 0%가 나온다면 더욱 좋겠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게 있다. 이번 역사 교과서 파동을 이념 전쟁으로 몰고가려는 새누리당·보수언론 진영의 프레임 전술에 말려들면 안 된다는 점이다.

이명희 교수가 예의 초청 강연에서 교육·언론계는 물론이고 연예계마저 좌파가 70%를 '점령'하고 있다는 말을 왜 했겠는가. '독립운동도 좌파'라는 새누리당 김을동 의원의 말도 예사롭게만 들리지 않는다. 위에 소개한 <채널 A>의 기사 제목에도 '역사 교과서 이념 논쟁'이라는 표현이 들러붙어 있다.

교학사 교과서가 0%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보수·우파·뉴라이트 교과서이기 때문이 아니다. 교학사 교과서가 채택률 0%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명백하고도 중대한 오류에 따른 교과서 부실, 그리고 그런 교과서를 썼으면서도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저자들의 비양심적이고 비상식적인 태도 때문이다. 교학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파문이 좌파와 우파의 '이념전쟁'이 아니라 역사적 진실과 거짓 사이의 싸움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이명희 공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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