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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정보사령부(정보사)가 국방부에 투서를 넣은 당사자로 지목되어 감찰을 받았던 소속 부사관에게 해임 중징계를 내려 논란이 되고 있다.

21일 군인권센터(소장 임태훈)에 따르면 정보사는 지난 20일 징계위원회를 열어 정보사령부 예하 부대 소속 A 원사에게 명예훼손, 상관 모욕, 언어폭력, 법령준수의무 위반, 근무태만 등의 사유로 해임 처분을 결정했다.

A 원사는 '사령부 내 불륜 관계인 군인이 있는데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내용의 투서를 국방부에 보낸 인물로 지목돼 지난 5월 23일 사령부 감찰 조사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내부고발자 몰려 사령관에게 협박당해"

A 원사는 조사 과정에서 투서를 보낸 혐의를 부인하자 정보사령관(소장)으로부터 "지금 투서 문건을 국과수(국방부 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서 지문을 채취해서 끝까지 범인을 잡을 것이다", "국방부 조사본부를 통해 거짓말 탐지기 등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범인을 찾아 형사 입건을 시키고 군복을 벗겨버릴 것이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A 원사는 감찰실장(대령)도 "너는 내가 끝까지 파헤쳐서 죽인다"는 등의 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실제 정보사는 음성 분석기를 동원해 A 원사 등을 조사하는 한편 A 원사의 컴퓨터를 압수해 조사하고 CCTV 확인과 지문 감식 등을 벌였지만, 투서를 한 사람을 찾아내는 데 실패했다. 정보사는 또 투서의 내용이 사실과 다른 음해성 투서라고 판단했다.

A 원사는 같은 혐의로 조사를 받았던 또 다른 B 원사와 함께 지난 5월 정보사령관과 감찰실장을 협박 및 명예훼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국방부 검찰단에 고소했다. 또 두 원사는 협박과 폭언 등 인권 침해를 당했다며 군인권센터를 통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정보사가 두 원사를 표적 수사하면서 심리분석기로 허위 자백을 강요해 헌법에 보장된 양심과 신체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군 검찰 "사령관 발언은 인정되지만 죄는 되지 않아"

이 사건을 조사한 국방부 보통검찰부는 지난 2일 정보사령관이 문제의 발언을 한 것은 녹음 파일 등으로 인정되지만 '부대를 지휘하는 지휘관의 업무범위 내에 속하여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감찰실장에 대해서는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B 원사는 원래 소속인 공군으로 원대 복귀했고, A 원사는 지난 20일 정보사령부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정보사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B 원사는 비위사실이 드러나 공군에 징계를 요청했으며, A 원사의 경우 음해성 투서로 감찰을 받는 과정에서 다른 혐의점들이 추가로 발견돼 징계위에 회부된 것"이라며 "A 원사가 주장하는 대로 보복성 조치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또 "두 원사뿐만 아니라 다른 혐의자도 조사했기 때문에 표적 수사라는 말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보사가 징계사유로 적시한 A 원사의 혐의 중에는 사령관으로부터 "전역 등 무조건적인 불이익을 주겠다는 취지의 말 및 '죽인다'는 말로 협박을 받았다는 허위의 피해 사실로 고소했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국방부 검찰단도 사령관의 발언 자체는 있었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실제 녹취록에는 정보사령관이 A 원사에게 "내가 한 번 물면 끝까지 파헤쳐서 죽인다"는 말을 한 기록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A 원사가 조기퇴근 43회, 영외외출 79회, 무단결근 4회 등을 저질러 성실의무를 위반했다는 징계사유도 있지만, A 원사는 소속부대 주임원사 보직을 수행하기 위해 부대장의 사전 승낙을 받은 후 영외를 상시 출입했으며, 무단결근 사실도 없다며 입증자료를 제출했다.

또 A 원사는 명예훼손과 상관 모욕, 언어폭력 등 혐의에 대해서도 모두 부인하면서 증인신문 등 객관적인 조사를 진행해 줄 것을 징계위원회에 요구했지만, 증인신문을 미리 신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거부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먼지떨이식' 보복수사, '별건 수사' 지적도

A 원사의 변론을 맡은 강석민 변호사(법무법인 다임)는 "군에서 감찰은 지휘관의 지시가 있으면 움직이는 것이어서 감찰활동 자체가 위법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음성 분석기 등을 통한 조사는 감찰의 권한을 넘어선 명백한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강 변호사는 또 "군인에 대한 징계는 군인사법에 따라 그 사유를 명확히 정하고 군인징계령에 따라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그 절차를 상세히 규정하고 있다"면서 "정당한 소명기회를 잃고 억울한 징계처분을 받지 않도록 증인신문, 검정 내지 감정, 기록 열람과 복사 등을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서 유감"이라고 말했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김광진 의원실의 고상만 보좌관은 "정보사는 음해성 투서자를 찾아내기 위해 감찰을 벌였다고 주장하지만, 투서의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결론을 내린 것은 5월 27일인데 두 원사 등에 대한 강압적 조사는 그보다 나흘이나 앞선 5월 23일에 있었다"면서 "정보사가 처음부터 내부 제보자를 색출하려는 목적으로 무리한 감찰을 벌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이 과정에서 아무런 증거없이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식으로 자백을 강요하고 이를 부인하는 두 원사에게 먼지떨이 식의 사실상 '별건(別件)수사'(특정한 범죄 혐의를 밝혀내는 과정에서 이와 무관한 사안을 조사하며 수집한 증거를 이용해 본래 목표했던 혐의를 확인하는 수사 방식)를 해 심각한 인권유린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고 보좌관은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으며 정보사 감찰과정 전반과 징계 처분의 적정성에 대해 확인한 후 그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반드시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정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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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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