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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창휴게소.
 평창휴게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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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환씨는 원주시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기적인 수입을 얻고 싶어 휴게소에 투자한 게 화근이었다. 그는 평창휴게소 내 한식당 신축에 2억6000만 원을 투자했다. 하지만 동업자들과 틀어지면서 투자금을 한 푼도 돌려받지도 못했고, 소송까지 벌어야 했다.

그러다 조씨는 자신이 투자한 한식당과 관련된 사건을 수사하던 검찰이 수사 도중 포착한 휴게소 비리 의혹을 중간에 덮어 버렸다는 의심을 갖게 됐다. 휴게소 비리 의혹 사건의 내사기록들을 우연하게 얻게 되면서부터다.   

'문서송부촉탁' 신청하자 휴게소 비리사건 내사기록 편철돼 있어

부동산중개업자였던 조씨는 지난 2007년 6월께 지인의 소개로 평창휴게소 내 한식당 신축에 총 2억6000만 원을 투자했다. 그런데 동업관계가 틀어지면서 한식당이 제3자에게 매각(3억 원)됐지만 2억여 원을 투자한 그에게는 단 한 푼도 돌아오지 않았다.

이에 조씨는 휴게소내 한식당 운영업체의 실질적 운영자인 안아무개(여)씨 등을 형사고소한 데 이어 안씨 등을 상대로 투자금 횡령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그리고 '문서송부촉탁'을 원주지원에 신청했다. '문서송부촉탁신청'이란 원고나 피고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원고나 피고가 관련된 사건의 기록이 보관된 곳에 기록의 열람·복사를 신청하는 것을 말한다.

이 과정에서 '놀라운 자료'가 발견됐다. 춘천지검 원주지청에서 안씨와 평창휴게소장인 안씨의 오빠를 상대로 내사를 벌인 기록이 딸려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범죄첩보 보고서 ▲수사보고서 ▲참고인 진술조서 ▲피의자 신문조서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 내사기록에 따르면, 검찰은 지난 2008년 12월 항고사건을 조사하던 중에 한국도로공사 직원들이 연루된 비리 혐의를 포착하고 내사를 벌였다. 도로공사 직원들이 휴게소 운영업체로부터 향응과 금품을 제공받았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후 평창휴게소장을 체포하고, 그의 자택을 압수수색했다.

특히 검찰은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증거를 확보했다. 한국도로공사 강원지역본부와 관할 군청, 경찰지구대, 소방소 출장소 등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이름, 술집 이름, 금품향응 액수 등이 적힌 '로비 다이어리'를 입수한 것이다.

휴게소장인 안아무개씨도 "다이어리에 기재해놓은 것은 모두 사실이다"라고 진술했다. 이와 함께 계좌추적을 통해 안씨가 지난 2006년 9월부터 2008년 5월까지 수십 차례 원주시 소재 룸살롱과 단란주점, 노래클럽 등을 드나든 사실도 확인했다.

그런데 검찰의 내사기록 목록은 지난 2009년 3월 3일에서 멈췄다. 휴게소 내 한식당 운영업체의 이사이자 휴게소장의 친누나인 안씨를 불러 조사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한국도로공사 직원들은 한 명도 소환하지 않은 채 사건이 수사선상에서 사라진 것이다('로비 수첩'까지 얻어놓고... 사라진 '휴게소 비리 사건'
). '사건 은폐 의혹'이 일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원주지청에서 작성한 평창휴게소 비리 의혹 사건 내사기록 목록.
 원주지청에서 작성한 평창휴게소 비리 의혹 사건 내사기록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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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피의자 체포-압수수색 벌였는데도 내사사건번호 부여 안했나?

검찰은 통상의 수사절차에 따라 '범죄첩보 보고→내사착수→증거수집→체포·압수수색→피의자 신문' 등을 진행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휴게소장은 피내사자에서 피의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피의자는 '죄를 범한 혐의로 수사기관의 수사대상이 되어 있는 자로서 아직 공소가 제기되지 않는 자'를 가리킨다. 검사에 의해 공소가 제기되면 피의자는 '피고인'이 된다.    

'검찰사건사무규칙' 제142조(내사․진정사건의 수리절차)에는 "별지 제203호 서식에 의한 내사사건부에 소정의 사항을 기재"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특히 "내사 및 진정사건의 번호는 제4조 제3항에 준하여 ' 년 내사(진정) 제 호'로 기재"해야 한다. '내사사건부'에는 진행번호와 주임검사, 피해사자 인적사항, 내사사건 지휘 등을 기재하도록 되어 있다. 제143조(내사·진정사건의 처리 등)에 따르면, 내사사건은 입건, 입건유예, 혐의없음, 내사중지, 이송 등으로 처리된다.

하지만 평창휴게소 비리 의혹 사건은 이러한 절차에 따라 처리되지 않았다. 내사사건번호도 부여하지 않았고, 내사기록들을 다른 사건들에 편철해놓은 것이다. 검찰 일각에서는 "기록편철도 내사종결의 하나로 볼 수 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대검의 한 수사관은 "첩보보고서야 내부자료니까 찢어버려도 그만이지만 피의자를 체포하고 압수수색까지 하면 내사사건은 일반피의사건으로 전환된다"며 "휴게소 비리 의혹 사건에서처럼 피의자를 체포하고 압수수색했는데 그런 식으로 내사종결하는 것은 검찰사건사무규칙에도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검사출신 한 변호사도 "수사검사가 내사사건을 잘못 처리한 것으로 보인다"며 "(지침에 따라) 내사종결해야 하는데 자기 선에서 사건을 뭉개면 사건이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방송에 보도까지 됐는데 사건을 이런 식으로 처리하는 것은 흔치 않다"며 "체포와 압수수색 등을 벌이고도 사건을 유야무야한 것은 검찰내부에서는 징계사안이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은 지난 2010년부터 도입된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에 따라 KICS에 사건번호를 입력하지 않으면 체포영장 등을 청구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다만 이 변호사는 "그나마 다른 사건에 내사기록을 편철한 것을 보면 사건을 없애려고 한 것은 아닌 것 같다"며 "더 이상 수사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고 그동안 작성한 기록을 다른 사건에 편철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BS 원주방송국은 지난 2008년 12월 평창휴게소 비리 의혹 사건을 단독으로 보도한 바 있다.
 KBS 원주방송국은 지난 2008년 12월 평창휴게소 비리 의혹 사건을 단독으로 보도한 바 있다.
ⓒ KBS 원주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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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검사 "별도 내사기록으로 보관했다면 기자가 볼 수 있었겠나?"

당시 수사를 맡았던 허아무개(현재 대검 근무중) 검사는 "내사사건번호가 있는 것은 그 사건을 묻히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인데 그것을 부여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며 "앞서 고소사건이 있어서 거기에 참고자료로 내사수사기록을 넣어두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관련 형사사건이 없었다면 별도 내사사건기록으로 보관해야 한다"면서도 "다만 (이 사건처럼) 내사수사기록을 다른 사건에 편철한 것이 좀 어색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이어 허 검사는 "하지만 별도의 내사기록으로 보관했다면 기자가 볼 수 없었을 텐데 이렇게 편철해 놓으니까 볼 수 있는 것 아니냐?"라며 "별도의 내사기록으로 보관해 놓았다면 득 될 게 뭐가 있겠느냐?"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도로공사 직원들을 소환하지 않는 것은 형사적으로 입건할 만한 액수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며 "룸살롱에 간 사람과 1인당 접대액수를 특정하려고 애를 썼는데 1인당 몇 십 만 원 정도밖에 안 나오더라"라고 해명했다.

당시 원주지청장으로 근무했던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은 "그 사건 자체뿐만 아니라 (수사내용 등을) 보고받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라며 "수사를 맡았던 검사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평창휴게소#원주지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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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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