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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 근무 당시 고문사실을 부인하며 법정에서 위증하고, 고문을 폭로한 사람을 '간첩'으로 몰아 처벌해 달라고 했다가 오히려 무고, 명예훼손, 허위사실 유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추재엽 양천구청장이 결국 구청장직을 상실했다.

현직 양천구청장인 추재엽씨는 2010년 6월 실시된 제5회 지방선거에 다시 구청장 후보로 나왔으나 낙선했다. 그런데 당선된 이제학 구청장은 선거과정에서 "추재엽 후보가 보안사 근무시 신영복 교수를 고문하는데 가담했다"는 허위사실공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2010년 12월 서울남부지법에 이 사건 증인으로 출석한 추재엽씨는 "보안사 근무 당시 고문에 가담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검찰은 "증인이 보안사에 근무할 당시 수사5계 수사관들과 함께 Y씨에 대한 '인간 바비큐 물고문' 등 고문을 했고, 고문이 자행되던 현장에 참여했다"며 추재엽씨를 허위 증언 혐의로 기소했다.

그런데 허위사실 공표 혐의(공직선거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던 이제학 양천구청장이 대법원에서 벌금 250만 원이 확정돼 구청장직을 상실해 2011년 10월26일 재선거가 치러지게 되자, 추재엽씨는 후보로 나와 당선됐다.

당시 재선거를 앞두고 재일교포 김병진씨가 Y씨에 대한 고문전력과 고문을 직접 목격했다는 기자회견을 했다. 이에 당시 추재엽 후보 측은 기자회견과 보도자료 등을 통해 "간첩출신 김병진씨의 허위사실 폭로, 명백히 허위사실 유포행위와 후보자 비방행위를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런 내용을 선거구민들에게 문자메시지로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추재엽 구청장이 보안사 근무 당시 수사관들과 함께 Y씨를 고문했고, 김병진씨의 기자회견은 모두 사실로 오히려 추 구청장이 공공연하게 거짓사실을 드러내 김병진씨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기소했다. 추 구청장은 또 김병진씨 등을 허위사실 공표로 처벌해 달라고 고소장을 제출했으나, 오히려 검찰은 무고로 판단해 추 구청장을 기소했다.

검찰이 추 구청장을 기소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추재엽씨는 1985년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에서 대공수사관으로 수사5계에서 근무한 전력이 있다. 그런데 당시 수사5계는 재일교포 Y씨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 후 조사했다.

그러나 검찰은 당시 보안사 수사5계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수사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데다, Y씨를 불법 연행해 38일간 구금했을 뿐만 아니라, 간첩 자백을 받기 위해 수시로 폭행하고 각종 고문(전기고문, 소금밥 먹이기 고문, 인간 바비큐 물고문 등)을 하는 등 가혹행위를 저질렀다고 판단했다.

한편, 당시 재일교포 유학생이던 김병진씨는 보안사 수사과에 군무원(6급)으로 특채돼 일본어 통역 업무를 담당했다. 당시 수사5계가 Y씨를 장지동 수사분실로 연행한 날부터 검찰에 송치할 때까지 한국어를 전혀 못하는 Y씨에 대한 조사시 통역을 맡았다. 김씨는 1988년 자신이 보안사에서 근무하면서 목격한 사실을 토대로 <보안사>라는 책을 발간하기도 했다.

이렇게 추재엽 양천구청장은 허위사실유포에 따른 공직선거법위반과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명예훼손), 위증, 무고 혐의로 기소됐다.

1심인 서울남부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2012년 10월 위증과 무고에 대해 징역 1년을, 공직선거법 위반과 명예훼손에 대해서는 징역 3월 등 징역 1년3월을 선고하며 법정 구속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해 Y씨에 대한 고문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위증한 후, 2011년 10월 실시된 재선거에 출마해 당선될 목적으로 김병진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있다고 홈페이지나 블로그에 글을 게재하거나 선거구민들에게 문자를 전송하고, 당선된 이후에는 김병진 등을 허위사실 유포로 무고한 사안으로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밝혔다.

또 "위증죄는 법원의 실체적 진실 발견을 위한 심리를 방해해 국가의 사법기능을 침해하는 범죄이고, 무고죄는 국가의 적정한 사법기능 및 개인의 법적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범죄이므로 엄하게 벌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추재엽 구청장이 항소했으나, 서울고법 제6형사부(재판장 정형식 부장판사)도 지난 1월 항소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여러 차례에 걸쳐 자신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함으로써 유권자들의 공정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방해해 구청장 선거의 공정을 훼손했으며, 그 과정에서 김병진의 명예도 훼손한 점, 피고인의 범행이 충분히 인정됨에도 범행을 부인하면서 잘못을 전혀 반성하지 않는 점 등을 고려하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사건은 추재엽 구청장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26일 위증과 무고에 대해 징역 1년을, 공직선거법위반과 정보통신망법(명예훼손)에 대해 징역 3년 등 총 징역 1년3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징역형을 선고받은 추 구청장은 공직선거법에 따라 당선이 무효가 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보안사에서 Y씨에 대한 고문이 이루어질 당시 주전자를 들고 고문에 가담했음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며 추 구청장의 상고에 대해 모두 기각했다. 

또 고문 가담을 하지 않았다고 유권자들에게 밝힌 것을 허위사실 공표로 처벌하는 것은 헌법상 '자기부죄금지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공직선거법의 입법 취지에 비춰 후보자의 전과기록 외 범죄사실 및 이에 준하는 사실도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항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하면 처벌해야 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추재엽, #양천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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