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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이 심각해지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
 훼손이 심각해지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
ⓒ 시사울산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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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문화유산으로 평가받는 국보 제285호 울산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이 가속화 되고 있다. 최근 변영섭 고려대 교수(고고미술사), 암각화 전문가인 김호석 화백 등이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있는 암각화 현장을 탐방한 결과, 암각에 새겨진 그림이 훼손된 것은 물론 암각화 바위의 표면이 떨어져나간 곳도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고래·개·늑대·호랑이·사람 등의 형상과 고래잡이 모습, 배와 어부의 모습, 사냥하는 광경 등 반구대 암각화 300여 점 가운데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그림은 20~30점에 불과했다고 한다. 반구대 암각화는 왜 훼손되고 있을까?

1971년 문명대 교수가 이끄는 동국대학교 탐사반은 울산에서 깜짝 놀랄 만한 발굴을 했다. 태화강 상류 대곡천에 있는 가로 8m, 세로 2m가량의 바위에 사람이 고래를 잡는 모습 등 선사시대 생활상이 담긴 그림 수백 개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멧돼지가 교미하는 모습, 사슴이 새끼를 거느리거나 밴 모습, 작살에 맞은 고래, 새끼를 배거나 데리고 다니는 고래의 모습을 비롯해 사람이 사냥하는 장면, 탈을 쓴 무당, 짐승을 사냥하는 사냥꾼, 배를 타고 고래를 잡는 어부 등의 모습이 묘사돼 있었다. 역사학계와 고고학계, 미술사학계는 크게 흥분했다.

반구대 암각화가 제작된 시기를 두고 신석기시대부터 청동기까지 다양한 학설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문화재청 주관 학술조사 발표에서 강봉원 경주대 교수(문화재학)는 "반구대 암각화가 제작된 때를 최소 기원전 2000년 이전, 기원전 3000년을 전후한 신석기시대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965년 사연댐 건설... 48년간 매년 6~7개월씩 물에 잠겨

하지만 안타깝게도 암각화가 발견되기 6년 전인 1965년, 대곡천 하류에 사연댐이 건설되었다. 비가 많이 오는 계절이면 댐 수위가 높아져 반구대 암각화도 함께 물에 잠겼다가, 다시 건조기가 되면 모습을 드러내는 상황이 48년간 지속된 것이다. 이처럼 퇴적암 재질인 암각화가 1년 중 6~7개월을 물에 잠겨 있어야 하니 훼손이 가속화되는 것이다.

일부 우려가 있었지만 본격적인 보전 대책이 논의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2006년 초, 가뭄으로 드러난 반구대 암각화에서 백화현상이 발견되면서 논란이 거세졌다. 암각에 새겨진 그림 일부가 하얗게 변하면서 보전 여론이 본격적으로 높아진 것. 그 해 9월 한국미술사학회와 한국암각화학회는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울산반구대 문화유적 보존 심포지엄'을 열고 "암각화 반경 500m 이내를 사적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보존대책이 추진되지 않았고, 울산시는 2007년 수 차례 문화재청에 차수벽(물막이벽)을 설치해 암각화가 침수되지 않게 하자고 제안했다. 이어 2008년에는 대곡천의 물길을 우회시키기 위해 수로 터널을 설치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문화계 등의 반대가 심했고, 문화재청은 암각화가 물에 잠기지 않도록 댐 수위를 조절하는 안으로 맞섰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 방법을 두고 이어진 공방은 이명박 정부로 이어졌다. 울산시가 사연댐 수위를 조절할 수 없다고 하는 이유는 '식수 부족' 때문. 그래서 2009년 4대강 TF 팀장을 역임한 강길부 국회의원(울산 울주군) 등은 경북 청도 운문댐과 경남 밀양댐의 잔여 물줄기를 울산으로 연결하는 방안과, 정부예산 3400억 원을 투입해 2만 톤급 소규모 댐 2개를 건설하는 방안 등을 추진했지만 타당성 검토에서 모두 불발됐다.

문화재청, '암각화 잠기지 않게 댐 수위 낮춰야' 주장 

지난 2010년 2월 5일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상태를 살펴보러 간 정몽준 의원이 반구대 앞 태화강에 얼었던 얼음이 깨지면서 한쪽 다리가 물에 빠져 넘어지고 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반구대암각화 보존방안이 결정되지 않아 훼손이 가속화 되고 있다.
 지난 2010년 2월 5일 반구대 암각화의 훼손상태를 살펴보러 간 정몽준 의원이 반구대 앞 태화강에 얼었던 얼음이 깨지면서 한쪽 다리가 물에 빠져 넘어지고 있다. 3년이 지난 지금도 반구대암각화 보존방안이 결정되지 않아 훼손이 가속화 되고 있다.
ⓒ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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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구대 암각화가 훼손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지리한 공방을 벌이고 있는 것은 결국 '물' 때문이다. 사연댐은 우기 때면 수위가 60m에 이른다. 문화재청과 문화계는 이 수위를 52m로 낮추면 반구대 암각화는 1년 내내 물에 잠기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 갈수기인 3월 사연댐의 수위도 52m 정도다. 하지만 울산시는 수위를 상시적으로 낮출 경우 시민의 식수가 부족해진다는 입장이다.

울산시에 따르면 현재 전체 울산시민에게 필요한 물은 하루 33톤. 울산시에 있는 전용댐은 사연댐(1965년), 대암댐(1969년), 회야댐(1986년)으로, 이 댐에서 나오는 물로도 모자라 하루 6만 톤가량의 물을 낙동강에서 연간 35억 원의 비용을 들여 끌어오고 있다는 것.

울산시 담당자는 "지금도 물이 모자라 돈을 주고 낙동강 물을 끌어오지만, 물의 품질이 나빠 문제"라며 "이런 와중에 사연댐 수위가 낮아지면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생태제방이 환경을 훼손한다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반구대암각화의 보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반구대 암각화 앞에 제방을 쌓아 물을 막는 안은 소중한 문화유산을 훼손한다는 입장이다. 권석주 문화재청 유형문화재 과장은 "세계문화유산 등재 요건은 반구대 암각화와 그 주변의 기본적인 환경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구대 암각화는 2002년 이상목 박사(현 울산암각화박물관 관장)가 프랑스 고고학지 <아케올로지아>에 처음 소개된 후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돼 있다.

권 과장은 이어 "해발 80m 제방을 쌓으려면 주변을 절토하고 15톤 차량 5~6만 대 분량이 왔다갔다 해야 하는데, 그 충격과 주변 훼손이 얼마나 크겠나"라며 "댐 수위를 조절하는 것만이 최상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울산시가 제기하고 있는 식수 부족 문제에 대해서는 "국토해양부가 다각적인 대책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울산시, 식수 부족 이유로 '생태제방 설치' 고집

지난 13일, 울산시는 용역 의뢰한 한국수자원학회(대표 한건연) 수리모형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이 학회는 ▲ 사연댐 수위조절(60m → 52m, 문화재청 안) ▲ 생태제방 설치(울산시 안) ▲ 터널형 물길 변경(울산시 안) 등 3개 방안 중 생태제방이 가장 적합하다고 했다. 여기다 사연댐 수위를 조절할 경우 유속이 10배 정도 빨라지게 되고 물의 흐름 방향도 암각화 쪽으로 쏠리게 된다며 '댐 수위 조절'이 좋지 않은 안이라는 결과도 발표했다.

박맹우 울산시장은 다음 날인 1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120만 울산시민들의 식수원인 댐은 절대 포기할 수 없다"며 생태제방 강행 의지를 밝혔다. 그는 "울산시가 암각화 보존보다는 식수확보 문제에 우선하고 있다는 문화계 등 일부 인사들의 인식은 잘못된 것"이라며 "우리나라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연구진의 용역 결과를 불신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울산시는 수자원학회의 발표대로 반구대 암각화에서 80m 떨어진 대곡천 주변에 높이 10~15m(해발 60~75m), 길이 450m의 둑(생태제방)을 쌓으면 암각화의 침수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한편 야권에서는 박맹우 울산시장이 토목공사에만 집착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민주통합당 심규명 울산시당 위원장은 "이번 최종보고회 발표는 환경요인과 주변경관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과 지역사회의 의견을 무시한 채 수리적 문제해결만을 고집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댐 수위를 낮춰 발생하는 식수부족은 군데군데 경로로 물을 끌어모으는 등 방법을 찾아야 하는데, 중요한 세계적 문화재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토목공사만 밀고 나간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태그:#반구대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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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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