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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현재, 한국에서는 '위험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안으로 '마을공동체'가 떠오르고 있습니다. '선언하고, 밀고, 짓는 토건국가'가 아닌, '소통하면서 서로를 살리는 마을을 만드는 돌봄사회'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자는 것입니다. <오마이뉴스> '마을의 귀환' 기획은 이러한 생각에 공감하면서 지난해 8월 시작됐습니다. 서울, 부산, 대구 등 한국 도시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마을공동체 만들기를 생생하게 조명하면서, '마을공동체가 희망'이라는 것을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마을의 귀환' 기획팀은 <오마이뉴스> 창간 13주년을 맞아 민관이 협력해 '지속가능한 마을만들기'를 진행하고 있는 영국식 마을공동체 만들기 모델을 찾아갑니다. [편집자말]
[특별 취재팀 : 글 홍현진·강민수 사진 : 유성호]

 20일 오후 영국 헐(Hull) 지역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체인 '굿윈(Goodwin) 개발 신탁' 소속 마을 지킴이가 거리에 버려진 마약 주사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20일 오후 영국 헐(Hull) 지역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체인 '굿윈(Goodwin) 개발 신탁' 소속 마을 지킴이가 거리에 버려진 마약 주사기를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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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후 영국 헐(Hull) 지역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체인 '굿윈 개발 신탁' 소속 마을 지킴이들이 범죄 예방을 위해 길거리에 버려진 콤돔과 마약 주사기를 수거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20일 오후 영국 헐(Hull) 지역에서 마을만들기 사업체인 '굿윈 개발 신탁' 소속 마을 지킴이들이 범죄 예방을 위해 길거리에 버려진 콤돔과 마약 주사기를 수거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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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간 눈을 의심했다. 빨간색 점퍼를 입은 재키(Jackie·42)와 케리(Kerry·52)의 노란색 청소 통에는 주택가 길거리에서 주운 콘돔과 마약 바늘이 가득했다.

"어떻게 이런 게 길에 있을 수가 있냐"고 묻자, JJ Tatten(제이제이 테이튼)은 "예전에는 이런 게 하루에 1000개씩 나왔다"면서 "지금은 많이 나아진 편"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영국 북동부에 있는 도시 Hull(헐)이다.

전쟁, 재개발 실패, 마약, 사창가... 뭐 이런 곳이 다 있나

 20일 오전 영국 런던 킹스크로스(King's Cross) 역에서 여행객과 시민들이 지반침식으로 선로 이상으로 열차가 운행되지 않자, 안내센터 직원에게 문의하고 있다.
 20일 오전 영국 런던 킹스크로스(King's Cross) 역에서 여행객과 시민들이 지반침식으로 선로 이상으로 열차가 운행되지 않자, 안내센터 직원에게 문의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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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전 영국 셰필드(Sheffield) 역 인근 기차 선로 이상으로 기차 운행이 중단된 가운데, 철도 시설 관계자들이 선로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20일 오전 영국 셰필드(Sheffield) 역 인근 기차 선로 이상으로 기차 운행이 중단된 가운데, 철도 시설 관계자들이 선로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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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마을의 귀환' 취재팀 홍현진 기자가 20일 오전 영국 헐(Hull) 지역을 가기 위해 2시간이나 우회해서 갈아타고 온 기차가 선로 이상으로 또 운행이 중단되자, 셰필드(Sheffield) 역에 내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오마이뉴스> '마을의 귀환' 취재팀 홍현진 기자가 20일 오전 영국 헐(Hull) 지역을 가기 위해 2시간이나 우회해서 갈아타고 온 기차가 선로 이상으로 또 운행이 중단되자, 셰필드(Sheffield) 역에 내려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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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Hull)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2월 20일(현지시각) 오전. 우리는 런던 킹스크로스(King's Cross) 역에서 오전 7시 20분 열차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광판에 '7시 20분 열차 취소'라는 문구가 떴다. 깜짝 놀라 안내센터에 가보니 지반침식으로 선로에 이상이 생겨 당분간 운행할 수 없단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묻자, 안내원은 "셰필드(Sheffield) 지역까지 열차를 타고 가서 갈아타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해준다. 문제는 이렇게 가게 될 경우, 2시간이 더 걸린다는 것. 한국으로 말하자면, 서울에서 대전을 가는 데 대구를 거쳐 가는 셈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지'하며 셰필드까지 가서 열차를 갈아탔다. 그런데 맙소사. 도착 시간 15분을 앞두고 열차가 또 멈췄다. 선로에 또 다시 문제가 생겼단다. 결국 셀비(Selby)역에서 1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긴급 투입된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오전 10시부터 우리를 기다린 헐 지역 마을만들기 사업체인 '굿윈(Goodwin) 개발 신탁(Development Trust, DT)'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매니저 JJ를 만난 건 오후 1시 30분이 다 되어서다. JJ는 "영국 철도 시스템 때문에 끔찍한 여행을 하게 만들어서 미안하다"며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부인이 헐 지역 출신이라는 JJ는 아일랜드 사람이다.

JJ는 취재진을 '옥타곤(Octagon)' 건물로 데려갔다. 지붕이 팔각형 모양으로 되어있어 '옥타곤'이란다. 팔각형 지붕이 있는 3층 중앙 건물을 중심으로 양쪽에 2층 건물이 날개처럼 펼쳐진 모양새다. 한눈에 보기에도 깔끔하고 세련됐다.

주민 중심의 마을만들기 사업체인 굿윈 DT가 소유하고 있는 이 건물에는 헐 구청(Council), 국가 의료서비스 기관인 NHS(National Healthcare Service) 등이 '입주자'다. 3층으로 올라간 JJ는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색 작은 가게를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가 굿윈이 시작된 곳이에요."

우선, 헐 지역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 1900년대, 고래잡이가 성행했던 이곳은 1930년대 경제대공항이 오면서 침체를 맞았다. 거기에 세계 2차 대전을 맞으면서 이 지역은 JJ의 표현에 따르면 "영국에서 가장 많은 폭탄을 맞은 도시"가 되었다.

"1950~60년대 도시재개발이 시작됐어요. 잘못된 재개발은 히틀러가 시작한 것(지역파괴) 을 끝내버렸죠(웃음). 도시재개발로 헐은 더욱더 못 사는 지역이 되어버렸어요. 1970년대에는 이 지역 사람들이 생계수단이었던 어업이 죽기 시작했어요. 게다가 1980년대에는 헤로인이 들어왔어요. 마약문제가 심해지면서 범죄가 심해졌고, 그 다음에는 사창가가 생겼죠. 실업률은 높고, 교육열은 낮고, 의료시설은 열악하고. 이 커뮤니티에 의사가 한 명도 없었어요."

 지난 1994년 영국 헐(Hull) 지역에서 14명의 주민들이 모여 마을만들기 사업을 시작한 가게(파란색 외벽)가 내려다 보이고 있다. 마을만들기 사업을 하고 있는 '굿윈 개발 신탁'은 현재 소유 건물만 22개로 헐 지역에서 3번째로 큰 교용주다.
 지난 1994년 영국 헐(Hull) 지역에서 14명의 주민들이 모여 마을만들기 사업을 시작한 가게(파란색 외벽)가 내려다 보이고 있다. 마을만들기 사업을 하고 있는 '굿윈 개발 신탁'은 현재 소유 건물만 22개로 헐 지역에서 3번째로 큰 교용주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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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 되면 '무슨 이런 곳이 있나'라는 생각이 든다. JJ가 말을 이어갔다.

"1994년, 14명의 평범한 주민이 모였어요. 이들은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이 너무 지겨웠어요. 더 이상 정부나 구청에 의존할 수도 없었고, 그들을 믿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구청한테 이야기해서 저기 앞에 보이는 가게를 주민들을 위해 쓰게 해달라고 했어요. 구청은 좋다고 했죠."

14명의 주민들은 이 공간을 주민들의 고용, 교육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곳으로 사용했다. 주민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구청과 직접 연결시켜주는 것. JJ는 "구청은 커뮤니티 안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을 모르는데, 14명의 주민들은 커뮤니티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기 때문에 구청 입장에서도 좋았다"고 말했다. 무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던 주민들은 구청에서 지원금을 받게 되었고 이렇게 얻은 수익금으로 투자를 시작했다.

싸구려 슈퍼도 '장사 못한다'고 나간 곳에 주민 교육기관이

 영국 헐 지역에 7~8년 전부터 전세계 사람들이 모여 거주하며 32개의 커뮤니티 그룹이 만들어지자, '굿윈개발 신탁'은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축구 월드컵을 개최해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영국 헐 지역에 7~8년 전부터 전세계 사람들이 모여 거주하며 32개의 커뮤니티 그룹이 만들어지자, '굿윈개발 신탁'은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축구 월드컵을 개최해 인종차별 문제를 해결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 굿윈(Goodwi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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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그램 중 '듈라 프로그램'은 중노년 여성들이 젊은 주부들을 위해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멘토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중 '듈라 프로그램'은 중노년 여성들이 젊은 주부들을 위해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멘토 역할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 굿윈(Goodwin)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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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윈 DT는 '마을의 귀환-영국편'에서 여러 차례 소개한 '에셋 매니지먼트(Asset Management)'를 성공적으로 구현하고 있는 대표 사례다. (에셋 매니지먼트란 마을만들기 사업체가 정부나 지자체, 민간으로부터 땅이나 건물을 이전받아 공동체를 위해 활용하는 것을 뜻한다.)

굿윈 DT가 소유하고 있는 대부분 건물은 이러한 '자산이전'을 통해 탄생했다. 본부(Headquarter) 건물은 요양원, 커뮤니티 칼리지(Community College)는 슈퍼마켓, 청소년 센터는 펍을 개조한 것이다. 굿윈 DT가 공짜로, 혹은 싼 값으로 건물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버려진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네토(Netto)라고, 큰 슈퍼마켓 체인이 있어요. 질 낮고 값싼 물건을 파는 곳인데, 이런 곳에서는 장사를 못하겠다고 떠나버렸어요. 팔 수도 없고, 유지하는 데도 비용이 드는데, 우리가 관리를 해주니까 그 쪽에서도 손해 볼 건 없죠." 

이렇게 마련한 공간은 지역주민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동시에, 수익 창출 모델로 사용된다. 옥타곤 건물에 입주해 있는 구청과 NHS가 그 예다. 구청과 NHS 그리고 헐 대학은굿윈에서 가장 많은 사무실을 임대하고 있는 기관이다. JJ는 "의사 한 명 없던 커뮤니티에 수술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며 기뻐했다.

JJ는 옥타곤 건물 1층에 있는 보육원을 보여주면서 "정부에서 감사했는데, 17개 평가 항목에서 모두 우수한 성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빈곤하고, 가장 사회적 문제가 많은 지역에 영국에서 가장 좋은 어린이집이 있는 것"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보육원은 주민들에게 일정한 비용을 받는 서비스지만, 비용을 내기 어려운 가정은 비용의 70%를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 구직 중인 한부모 가정 자녀를 위한 할인혜택도 있다.  

옥타곤 건물에는 250석 규모 컨퍼런스 룸과 6개의 회의실이 있다. JJ는 "헐 지역 대학이나, 경찰, 법정 의료 담당관 등이 회의실을 대관한다"면서 "케이터링도 우리가 담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옥타곤을 홍보하는 팸플릿에는 이러한 문구가 적혀있다.

'당신의 이벤트 비용이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면?'

굿윈은 케이터링을 통해 수익을 내면서, '페어 쉐어(Fare share)'라는 이름의 음식 나눔을 실천한다.

"'페어 쉐어'는 끼니를 못 잇는 사람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인데 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어요. 공간도 필요하고, 냉장도 해야 하고. 인건비도 들죠. 그 비용은 우리가 진행하고 있는 케이터링 사업에서 나오는 이윤을 가지고 비용을 충당해요. 재투자를 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영국에 있는 다른 페어 쉐어들이 더 이상 지속하지 못해도 우리는 할 수 있어요."

헐 지역에서 3번째로 큰 고용주, 대부분이 지역주민들

 20일 오후 영국 헐(Hull) 지역 마을만들기 사업체인 '굿윈 개발 신탁'에서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매니저 일을 하고 있는 JJ Tatten(제이제이 테이튼)이 굿윈에서 진행 중인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과 생활이 취약한 주민들을 돕는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0일 오후 영국 헐(Hull) 지역 마을만들기 사업체인 '굿윈 개발 신탁'에서 마케팅&커뮤니케이션 매니저 일을 하고 있는 JJ Tatten(제이제이 테이튼)이 굿윈에서 진행 중인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과 생활이 취약한 주민들을 돕는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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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후 영국 헐(Hull) 지역 마을만들기 사업체인 '굿윈 개발 신탁'에서 법률 상담 일을 하고 있는 스티브(Steve)이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예방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마을의 범죄 예방을 위해 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주민들은 언제든지 찾아오라"며 자신을 알리는 전단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20일 오후 영국 헐(Hull) 지역 마을만들기 사업체인 '굿윈 개발 신탁'에서 법률 상담 일을 하고 있는 스티브(Steve)이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예방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마을의 범죄 예방을 위해 이 일을 하기 시작했다며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주민들은 언제든지 찾아오라"며 자신을 알리는 전단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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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 건물 22개. 연매출 850만 파운드(외환은행 3월 4일 공시기준, 약 140억 원). 20여 년 전, "더 이상 나빠질 게 없기 때문에 도전할 수 있었다"는 굿윈 DT의 현재다. 굿윈 DT는 ' '보증책임 자선단체'(Charity limited by guarantee)'의 형태를 띤다.

보증책임 유한회사(Company limited by guarantee)는 주식을 발행하지 않고 투자자의 보증 한도 내에서 책임을 지는 회사인데, 보증책임 자선단체는 이를 자선단체에 대입시킨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들은 공동체 이익회사와 마찬가지로 공동체를 위한 수익활동을 할 수 있다. 

아, 기사 초반에 언급했던 빨간 점퍼를 입은 이들의 정체를 말해야겠다. 이들의 이름은 '커뮤니티 워든(Community Warden)'. 헐 지역의 '마을지킴이'다. 길거리에 있는 위험한 것들을 줍는 것부터 시작해서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있으면 도와주고,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기면 경찰을 부르기도 한다. 현재 헐 지역에는 40명의 워든이 있다. 굿윈 DT에 고용되어 있고, 구청에서 일정 부분의 서비스 비용을 받는다.

7년 전부터 워든으로 일하고 있다는 재키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지역을 위해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워든을 시작했다"면서 "워든이 생기면서 이 지역이 안전해졌다, 콘돔과 바늘도 줄었다"고 말했다. "워든은 지역 커뮤니티의 눈과 귀"라고 말하는 재키의 표정에서 자부심이 묻어났다.

굿윈 DT에서는 무슨 일이?
굿윈이 펼치고 있는 사업은 매우 다양하다. 그리스어에서 '마을의 나이 많은 여성'을 뜻하는 말인 '듈라(Doula)'에서 따온 '듈라 프로그램'은 헐 지역의 중노년 여성들이 젊은 주부들을 위해 아이 키우는 것을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영국 다른 도시에서도 '듈라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혼자 사는 노인들에게 약 먹는 시간을 알려주고, 의사와 화상채팅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이-헬스(E-Health)' 프로그램 역시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헐(Hull) 지역 212명을 대상으로 한 재범 예방 프로그램은 재범률을 17%로 낮추기도 했다(영국 평균 60%). 초범들을 위한 법률 상담가인 법정 코디네이터(Court Coordinator)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2010년부터는 헐 지역 내 이주민들과 함께 월드컵을 열고 있다. 참가국은 32개. 5000명이 참여했다. 헐 지역은 7~8년 전부터 해외 이민자 숫자가 급증했다. 굿윈은 이들 이민자들을 위해 영어 교육을 제공한다. 대부분의 프로그램은 무료다.

'파트너십'은 굿윈이 지속가능한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주요한 요소다.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 NHS와 함께 금연프로그램을 진행하는가 하면, 전쟁 참여 군인들의 모임인 'Royal British legion'과 협력을 맺어 전후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군인들의 재활을 돕는다. 장애인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 그룹과 함께 장애아들이 자신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하는 '대니스 드림(Danny's Dream)'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혼잡한 도심지가 아닌 도시 외곽에 주차를 하고, 도심까지 버스로 데려다주는 '파크 앤 라이드(Park & Ride)' 서비스도 눈에 띈다.

 커뮤니티 칼리지는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일자리를 얻기 힘든 청년들과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해 희망을 잃은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커뮤니티 칼리지는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일자리를 얻기 힘든 청년들과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해 희망을 잃은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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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J는 취재진을 커뮤니티 칼리지 건물로 안내했다. 영국에서 '칼리지'란, 16세까지 고등학교 의무교육을 마친 후 대학 입시 준비나 전문적인 훈련을 받는 2년제 교육기관을 뜻한다. 슈퍼마켓이 있던 이곳은 옥타곤 건물과 마찬가지로 번듯한 건물이 되어 있었다. JJ는 "이곳 위층은 민간 기업에게 임대를 주고 있다, 임대료로 커뮤니티 칼리지를 운영하는 것"이라면서 "우리가 하는 모든 활동들이 지속가능하게 하려면 펀딩에 의존하기 보다는 임대료를 받으면서 비즈니스 모델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컴퓨터실이 보인다. JJ는 "오전에 왔으면 사람이 많았을텐데"라고 아쉬워했다. '열차의 저주'가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어니(Earnie·47)는 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교육을 받지도, 일하지도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 무직자)족을 위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헐 지역 주민인 어니는 이곳에서 3년여를 일했다.

어니는 "펀딩이 줄어들면서 대부분의 자선단체, 사회적 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굿윈은 잘하고 있다"면서 "굿윈은 이 지역에서 가장 많은 주민들을 고용하고 있는 곳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어니의 말처럼, 굿윈은 헐 지역에서 'Smith&Nephew'라는 민간기업, 구청 다음으로 가장 큰 고용주다. 2010년만 하더라도 3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던 굿윈은 영국 경기침체로 펀딩이 줄면서 현재는 230명의 직원이 있다. 이 가운데 170~180명이 헐 지역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다. JJ처럼 헐에 사는 사람을 합하면 그 수는 더 많다. JJ는 "우리의 목적 가운데 하나가 고용 창출이기 때문에 인원을 감축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라면서 "이후에 사정이 좋아지거나, 빈자리가 나면 바로 그 사람을 고용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말했다. 

JJ는 "굿윈은 '빈곤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은 일자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이 지역에서 일하면서 일에 대한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지역에 대한 자긍심도 쌓인다"고 강조했다.

"굿윈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갈 곳이 생겼다"

 청소년 센터에 놀러온 아이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청소년 센터는 아이들에게 공부와 연극 수업도 진행하고 있지만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관계망 형성을 중요시 하고 있다.
 청소년 센터에 놀러온 아이들이 서로 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청소년 센터는 아이들에게 공부와 연극 수업도 진행하고 있지만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관계망 형성을 중요시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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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굿윈 개발 신탁'이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 센터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제이스(Jaise)이 아이들에게 당구를 가르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굿윈 개발 신탁'이 운영하고 있는 청소년 센터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는 제이스(Jaise)이 아이들에게 당구를 가르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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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년 센터에 놀러온 아이들이 기타를 배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청소년 센터에 놀러온 아이들이 기타를 배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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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청소년 센터. 오래된 펍이 있던 이곳은 실습 경험이 필요한 헐 지역 대학 건축 학도들이 무보수로 공사를 해주었다. 방과 후인 오후 3시 30분부터 운영되는 이곳은 30여명의 아이들로 북적북적했다. 청소년 센터에서 '삶의 질 발전 코디네이터(Quality of life development Coordinator)'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쉐론(Sharon·46)은 "(센터가) 3시 30분에 문을 열지만 3시 20분부터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와서 문을 발로 차고 두드리고, 우리는 (손바닥을 펼치며) '5분만'이라고 말한다"고 웃어보였다.

여러 대의 컴퓨터, 탁구대, 비디오 게임기. 이곳은 아이들의 놀이터다. 유성호 기자가 카메라를 들자, 아이들은 너도나도 "저요, 저요"를 외치며 포즈를 취했다. 한국에서 취재했던 송파구 '즐거운가'의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떠올랐다. 역시 아이들은 어디를 가나 똑같구나.(관련기사 : 증권가 '신의 손'이었던 그, 아이들의 '복실이' 된 이유)

열아홉 살 제이스(Jaise)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청소년 센터에서 자원봉사자로 일하고 있다. 굿윈에는 100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헐 지역에서 나고 자란 제이스는 7~8년 전부터 굿윈에서 활동하고 있다. 굿윈의 서비스를 제공받는 입장에서 동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 것. 쉐론의 표현에 따르면 제이스는 굿윈의 "가구(Furniture)"같은 존재다. 제이스에게 "청소년 센터의 어떤 점이 좋냐?"고 물어보자, 그는 주저 없이 "스태프들"이라고 답한다. 우리가 "와우~"라고 반응하자, 제이스는 굿윈 청소년팀 매니저 스콧(Scott·36)을 가리키며 "저 사람은 아니고요(Not him)"라며 스콧을 놀린다. 그러자 스콧은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돈을 주는 시늉을 했다.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노는 게 아니라 이런 안전한 곳에 들어와서 놀 수 있다는 게 좋아요. 저도 여기에서 아이들, 스태프들과 함께 있는 게 좋아요. 청소년센터에서 자원봉사자로서 경험을 쌓고, 일자리를 구하고 싶어요(제이스)."  

제이스와 마찬가지로 헐 출신인 스콧은 굿윈에서 8년 정도 일했다. 처음 3년은 커뮤니티 워든으로 일하다 청소년팀을 맡게 됐다. 스콧은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취업을 위한 자격증 공부를 한다면, 청소년 센터에서는 재미와 정보제공 위주의 청소년 활동을 한다"고 전했다. 헐 지역 대학생들이 이곳에서 견습생 프로그램으로 자원봉사를 하기도 한다.

로이드(Lloyd·30)는 커뮤니티 칼리지와 청소년 센터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다. 역시 헐에서 나고 자란 로이드는 밴드를 하면서 전세계를 돌아다니다 고향인 헐로 돌아왔다. 로이드는 "이곳에는 자격증이 필요해서 오는 아이들도 있지만, 자신감이 부족한 아이들, 집에 문제가 있는 아이들, 모든 경우는 아니지만 빈곤한 지역에서 많이 오는 것 같다"면서 "굿윈이 생기면서 사람들이 갈 곳이 생겼다, 그것이 90년대와 가장 다른 점"이라고 말했다.

청소년 센터 2층에는 지역 청년들로 구성된 극단 연습실이 있다. 극단 이름은 'Middle Aged Child'. 세계적인 문화예술축제인 '에딘버러 페스티벌'에서도 공연한 실력파다. 굿윈은 이들에게 무료로 연습실을 임대해주고 있다. 전기세는 물론이고 난방비도 안 낸다. 대신 이들은 청소년 센터에 있는 아이들에게 연극 수업과, 공연을 해준다.

'즐거운 가'의 꿈, 이곳에선 현실이었다

열차시간 때문에 종종걸음을 해야 했지만, 헐 지역을 돌아보면 볼수록 놀라웠다. 그리고 "마을공동체 청년들이 할 수 있는  먹을거리 사업을 고민하고 있다"는 '즐거운가'의 '복실이(이윤복)'의 말이 계속 떠올랐다. 마을에서 자라난 청소년들이 마을의 일꾼으로 성장해 마을 안에서 생계를 해결하며 살아가는 것. 꿈만 같았던 이야기가 굿윈에서는 현실이었다. 영국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기는 하지만, 굿윈은 새로운 비즈니즈 모델을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해요. 어려운 커뮤니티임에도 좋은 성과를 냈구나. 그런데 사실 그 반대예요. 우리가 성공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 커뮤니티였기 때문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그들 때문이었어요. 그들의 아이들이었고,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 지역 주민이었으니까요."

JJ에게 '한국에도 주민중심의 마을공동체가 많이 생기고 있다'며 조언을 부탁했다.

"기다려주는 것, 그리고 자신감이 중요해요. 문제는 장기적인데 모든 사람들이 빠른 해결책을 원해요. 하지만 빠른 해결책이란 없어요. 문제가 복잡하면 해결책도 복잡할 수밖에 없죠. 그 때까지 기다려 줘야해요. 이해심이 필요하죠. 또 한 가지는 자신감. 지역주민들이 자괴감에 빠져서 '우리 할아버지 때도, 아버지 때도 우리는 못살았는데'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감을 갖게 되면 변화할 수 있어요." 

다행히 런던으로 돌아오는 열차는 제 시간에 출발했다. 이동시간만 10시간이 걸린 취재. 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태그:#마을의 귀환, #굿윈 개발신탁, #에셋 매니지먼트, #마을공동체,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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