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해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되지 않았다면, 비록 미신고 옥외집회라도 경찰이 무조건 해산명령을 내릴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이강실 진보연대 상임대표, 조희주 '이명박정권 용산철거민 살인진압 범국민대책위원회'(이하 용산범대위) 순회투쟁단장 등은 2009년 10월 26일 오전 11시50분부터 낮 12시30분까지 서울 중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 노상에서 용산범대위 회원 50여 명과 함께 <용산참사 해결촉구 범대위 대표자 단식농성 돌입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당시 '정부는 용산참사 즉각 해결하라'고 적힌 대형 플래카드와 '용산참사 해결촉구 단식농성'이라고 적힌 몸자보(몸에 착용한 피켓) 및 피켓을 소지하고 "살인개발 중단하라", "용산참사 해결하라"는 구호를 제창하며 연좌 농성을 벌였다.

검찰은 "이들이 미신고 옥외집회를 열고, 경찰의 자진해산요청에 이은 3차례 해산명령에 불응했다"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1심인 서울중앙지법 형사17단독 진광철 판사는 2010년 12월 미신고 옥외집회를 주최한 점, 경찰의 해산명령에 불응한 점 등 공소사실을 모두 유죄로 인정해 이수호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등 4명에게 각각 벌금 50만 원씩을 선고했다.

그러자 이수호 최고위원 등은 "집회가 아닌 신고 의무가 없는 기자회견인데도 이를 집회로 판단한 위법이 있고, 설령 신고의무가 인정되는 집회에 해당하더라도 집회의 목적달성에 필요한 합리적인 범위 내에서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범위에 해당해 사회상규에 반하지 않는 행위로 위법성이 조각돼야 함에도 유죄로 판단한 위법이 있다"며 항소했다.

이에 대해 항소심인 서울중앙지법 제1형사부(재판장 이원형 부장판사)는 2011년 4월 항소를 기각하고 1심 형량을 유지했다.

재판부는 먼저 집회가 아니라는 주장에 대해 먼저 "집시법에 의해 보장 및 규제의 대상이 되는 집회란 '특정 또는 불특정 다수인이 공동의 의견을 형성해 이를 대외적으로 표명할 목적 아래 일시적으로 일정한 장소에 모이는 것'을 말한다"며 대법원 판결(2009년 7월 9일 선고 2007도1649)을 전제했다.

이어 "집회의 개념에 비춰 볼 때 피고인들이 참가한 기자회견은 용산 철거를 둘러싸고 철거민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이에 대한 이명박 정권의 태도를 비판하는 공동의 의견을 형성해 이를 대외적으로 표명할 목적 아래 일시적으로 일정한 장소에 모인 것으로서 집시법에 따라 신고를 해야 하는 집회에 해당한다"며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산명령불응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이 사건 집회가 공공의 안전과 질서에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산명령이 부적법하다는 피고인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아울러 "피고인들에게 1심이 선고한 형량은 너무 가벼워서 부당하다"는 검사의 항소도 기각했다.

대법 "공공의 안녕질서에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돼야 해산명령 내릴 수 있다"

사건은 대법원으로 올라갔고, 대법원 제3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미신고 옥외집회를 개최하고, 해산명령에 불응한 두 가지 혐의로 기소된 이수호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등 4명에게 각각 벌금 50만원씩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서울중앙지법에 돌려보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주최한 모임은 외형상 기자회견이라는 형식을 띠었지만 용산 철거를 둘러싸고 철거민의 입장을 옹호하면서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내용의 공동 의견을 형성해 이를 대외적으로 표명할 목적 아래 일시적으로 일정한 장소에 모인 것으로서 집시법에 따라 사전 신고해야 하는 옥외집회에 해당한다고 판단, 사전 신고를 하지 않고 옥외집회를 주최함으로써 집시법을 위반했다고 인정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해산명령불응에 대해서는 원심 판단을 뒤집었다. 미신고 옥외집회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경찰이 해산명령을 내릴 수 있다고 기계적으로 판단하지 말고, 공공의 안녕질서 등에 위험이 초래됐는지를 따져 봐 해산명령불응에 해당하는지를 판단하라는 이유에서다.

재판부는 "집회의 자유가 가지는 헌법적 가치와 기능, 집회에 대한 허가 금지를 선언한 헌법정신, 옥외집회와 시위에 관한 사전신고제의 취지 등을 종합하면, 신고는 행정관청에 집회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공공질서의 유지에 협력하는데 의의가 있는 것으로 집회의 허가를 구하는 신청으로 변질돼서는 안 되므로,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헌법의 보호 범위를 벗어나 개최가 허용되지 않는 집회 내지 시위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따라서 옥외집회 또는 시위로 인해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한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된 경우에 한하여 집시법 조항에 의해 해산을 명할 수 있고, 이러한 요건을 갖춘 해산명령에 불응하는 경우에만 집시법으로 처벌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그런데도 원심은, 이 사건 모임으로 인해 타인의 법익이나 공공의 안녕질서에 대해 직접적인 위험이 명백하게 초래됐는지 여부에 관해 아무런 심리·판단을 하지 않은 채, 미신고 옥외집회라는 이유만으로 피고인들의 행위가 집시법상 해산명령불응에 해당한다고 섣불리 단정하고 말았으니, 이러한 원심판결에는 집시법의 해산명령 불응에 관한 법리를 오해함으로써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위법이 있어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케 하기 위해 원심법원으로 환송한다"고 판시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집시법#이수호#해산명령#용산참사범대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