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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오길의 괴짜 생물 이야기> 겉표지
ⓒ 을유문화사
김장철이다. 해마다 김장철이면 어린 시절 몇 날 며칠 맡곤 했던 젓갈 달이는 냄새가 생각나곤 한다. 김장에 젓갈을 비교적 많이 넣는 전라도에서 자랐기 때문이다. 김장철이면 이집 저집에서 봄에 담근 젓갈 달이는 냄새로 동네는 젓갈냄새에 묻히곤 했다.

경상도에서 자라 결혼한 후 전라도에서 살아온 친정엄마는 대부분의 전라도 사람들처럼 젓갈을 많이 넣는 편. 무채나 갓과 같은 소는 거의 넣지 않고, 매실액을 넣는다.

반면 충청도에서 자랐지만 서울 경기에서 오래 살아온 시어머니는 친정엄마는 절대 넣지 않는 청각을 반드시 넣는다. 무채나 갓과 같은 소도 비교적 많이 넣는 편이다. 대신 친정 엄마가 봄마다 직접 담가 푹 달여 낸 젓갈 대신 시중에서 파는 멸치액젓 등을 조금만 넣는다.

이처럼 두 분의 김치 맛을 좌우하는 양념이 다르기 때문에 김치를 갓 담갔을 때 맛도 많이 다르다. 그런 이유에서 우리 아이들은 김치냄새로 친할머니표 김치와 외할머니표 김치를 구별해내곤 한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겨울을 지나면서 두 분의 김치는 젓갈 냄새만 빼곤 거의 같아진다.

아니, 누가 담갔건 잘 익은 김장 김치들의 맛은 거기서 거기. 비슷하게 맛있다. 통일된 김장 레시피는커녕 어머니들 대부분 눈대중과 손대중, 경험이나 감각 등으로 담그는 데다 담그는 방식까지 다른데도 어찌 그럴 수 있을까.

 김장(자료사진)
ⓒ 이종득

김장을 담그던 집사람이 김치를 통에 넣고 힘들여 꼭꼭 눌러댄다(김칫독은 큰 돌로 누른다) 왜 그러느냐고 물었더니만, 김장하는데 "풀을 왜 넣는가?"고 물었을 때처럼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라며 힘주어 퉁명스럽게 답한다. 김치에 과학적 원리가 담긴 것을 알고 김장을 하면 더 좋았을 텐데. 김치를 힘들게 눌러 담는 이유는 김치에 사는 유산균들이 산소가 있으면 되레 죽어버리는 혐기성세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기(산소)를 다 빼 없애려고 하는 것이다. 소금에 죽지 않으며 산소를 싫어하고, 낮은 온도를 좋아하는 이 유산균들이 김치의 맛을 낸다. 김칫독을 응달에 묻어두면 겨우내 그 속의 온도가 영하 1도 근방을 유지하는데, 이를 본떠 흉내를 낸 것이 바로 김치냉장고이다.
-(<권오길의 괴짜 생물 이야기>에서)

고추장이나 깍두기, 동치미, 김장 등을 할 때 찹쌀이나 멥쌀, 밀가루로 풀을 쑤어 넣는 것도 이것들이 세균들이 먹고 번식(발효)할 먹잇감(배지)이기 때문이다. 푸성귀나 다른 양념에 들어있는 양분으로는 턱 없이 부족한 먹잇감. 이 때문에 먹을거리를 보충해 주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생물들은 짠 소금에 죽어버리지만 염분에 끄떡 않는 내염성 세균인 유산군은 남아서 김치를 익힌다.

다들 그러니까, 예전의 어머니들이 그랬으니까 당연히 그래야 그리 해 온, '풀을 쑤어 넣는다든지, 갓 버무린 김치를 항아리나 통에 담은 후 꾹꾹 누르는 것'이 알고 보니 김치를 맛있게 익게 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친 김장 김치들이 비슷한 깊이의 맛을 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문득 어느 해 김치를 담그며 번거롭단 생각에 풀을 쑤어 넣지 않았을 때가 생각난다. 겉절이처럼 우선 먹기에는 좋았지만, 그다지 맛깔스럽게 익지 않았다. 김치찌개를 끓여도 맛이 나지 않아 억지로 조금 먹다가 결국 버려야만 했던 그때 그 김치 말이다.

이 부분을 읽기 전까진 양념이 배추에 잘 밀착되라고, 고춧가루며 마늘, 생강과 같은 매운 맛의 양념들을 부드럽게 하고자 풀을 쑤어 넣는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그런데 '풀'이 김치를 잘 익게 하는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친정엄마와 언니들에게, 그리고 친구들에게 물어봤더니 다행히(?) 모두 나처럼 지레짐작하고 있다.

<권오길의 괴짜 생물 이야기>(을유문화사 펴냄)는 1999년에 <바다를 건너는 달팽이>(1998년, 지성사 펴냄)란 책을 우연히 접한 후 저자의 신간이 나왔다 하면, 그리고 미처 읽지 못한 책이 있다 싶으면 찾아 읽곤 하는 권오길 교수의 신간이다.

우리 몸 구석구석의 경이롭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시작으로(제1부)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동·식물들의 놀라운 생존전략과 경이로움(2·3·4·5부), 김장을 담글 때 풀을 쑤어 넣어야 하는 이유처럼 누구나 그러니까 나도 무심코 하고 있는 행동 속 과학 이야기(6부) 등을 쉽고 재미있게, 그리고 흥미진진하게 들려주고 있다.

내 몸 살피게 하는 이 책을 당신에게 권한다

"전에 권오길 교수의 <바다를 건너는 달팽이>란 책에서 읽었는데, 화났을 때의 침과 평소의 침에 각각 초파리를 넣는 실험을 한 결과, 화났을 때의 침에 넣은 초파리는 불과 몇 초 만에 죽었고, 그렇지 않은 침에서는 그보다 훨씬 오래 살았대. 화났을 때의 침에 생명까지 죽일 정도의 독이 있어서 초파리들을 빨리 죽게 한 거지. 스트레스가 만병의 시작이라고도 하잖아. 화를 내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침의 독성만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몸속의 건강한 세포들이 자살을 하거나 면역력이 약해진대. 돌연변이를 일으키기도 하고. 돌변변이 세포들로 암도 생기는 거지. 언젠가 자연주의 부부가 TV에 나와 이야기 하는 걸 봤는데, 화났을 때나 스트레스가 심할 때 만든 음식은 사람을 살리는 음식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망치는 독이 된다네. 그러니 부부싸움을 한 후엔 차라리 사먹는 것이 몸에는 낫다고 하더라고."

 <바다를 건너는 달팽이> 1998년 초판본 겉표지. 이후 개정판(2004)이 나왔다.
ⓒ 지성사
<바다를 건너는 달팽이>란 책을 '쬐그만 달팽이가 어떻게 바다를 건너? 이 책 제목 순전 뻥 아냐?'라는 단순한 호기심으로 선택했다. 그 후 애독자가 돼 지난 10여 년간 꽤나 많은 그의 책들을 읽었다. 우선 떠오르는 것만 대략 10권이 넘는다.

여하튼 내가 이토록 권오길 교수의 책들을 애독하는 이유는 그의 책 덕분에 과학(생물학)에 대한 막연한 거리와 어려움을 어느 정도 털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치를 담글 때 풀을 쑤어 넣고, 통에 담은 후 꾹꾹 눌러야 하는 이유'처럼 우리 몸과 우리 주변을 소재로 한 쉽고 재미있는, 흥미로운 글들 말이다.

그리하여 이처럼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생활 속에서 관련 사례를 응용해 종종 다른 사람들이나 내아이들에게 들려주기도 했다. 화가 치미는 순간에도 그의 책이 떠올랐다.

여하간 <바다를 건너는 달팽이>를 읽었던 그해 봄 이후 저자 덕분에 눈앞의 모든 생명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세포 분열은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가장 왕성하게 일어난다. 이 시기에 푹 숙면을 취해야 유전자 수선 등이 원활히 이루어진다. ▲손톱은 겨울보다는 여름에 더 잘 자란다. 또한 노인보다 젊은이가, 여자보다는 남자가,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보다는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서 더 잘 자란다. ▲귀지는 외이도의 피부를 보호하고 먼지를 닦아 내는 등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무리하게 청소를 하거나 해서는 안 된다.▲한국의 여러 고추 품종 중에서는 '청양고추'가 가장 유명하다. 참고로 청양고추의 청양은 충청도 청양이 아니고, 유명한 고추산지인 경북의 '청송과 영양'의  글자를 딴 것이라 한다. ▲나무를 옮겨 심고 막걸리를 듬뿍 부어주는 것은 나무 주변의 토양 미생물들이 막걸리를 먹고 무럭무럭 자라 살찌라고 그러는 것이다. 이런 유익한 미생물의 번식이 식물의 뿌리 건강에는 말할 수 없이 중요하다. 옮기느라 마구잡이로 잘려 생채기 나고 곪은 뿌리를 낫게 해주는 일도 이들 토양 미생물들의 몫이다.-(<권오길의 괴짜 생물 이야기>)에서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 책

글쓴이 '권오길'은...
쉽고 재미있는 과학을 알리는 데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과학문화상, 한국간행물윤리상 저작상, 강원도문학상 학술상 등을 수상한 '달팽이 박사'다. 경상남도 산청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생물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이후 수도여중고, 경기고교, 서울사대부고 교사를 역임했다. 현재 강원대학교 생물학과 명예교수이다. 쓴 책으로는<꿈꾸는 달팽이>,<인체 기행>,<생물의 죽살이><생물의 다살이>,<바다를 건너는 달팽이>,<원색한국패류도감>,<하늘을 나는 달팽이>,<자연계는 생명의 어울림으로 가득하다>,<생물의 애옥살이>,<흙에도 뭇 생명이...>외 다수가 있다. 과학관련 여러 책에 공동 저자로 참여하거나 많은 책에 감수를 했다.(책표지 프로필을 참고로 일부 더해 정리/김현자) 
권오길 교수는 일반인들에게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흥미진진하게 알려주는 저자로 유명하다. 그의 글들은 무엇보다 우리 몸과 우리 주변이 소재다.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골치아픈 이야기를 살갑게 풀어쓰고 있다.  

남녀노소 연령층이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도 이 저자 책들의 장점이라면 장점이 될 것 같다. 이런지라 그동안 평소 책을 잘 읽지 않아 책읽는 것이 어색하고 쉽지 않은 이들에게도 권한다.

저자의 책들을 읽으며 많은 것들을 얻은 지난날을 훑자니 저자를 처음 알게 된 1999년 그 때가 생각난다. 청소년기와 20대에 정신적으로 많이 기대었던 어떤 분의 죽음으로 몹시 슬펐던 그해 겨울과 봄이. 늘 책을 읽어왔음에도 선뜻 책을 펼칠 수 없는 날도 있었고, 와중에 읽는 책들은 여차하면 내게서 겉돌곤 했던 그때 말이다.

여하간 바라건대, 그때 그렇게 나에게 다가와 내 삶에 스며들어 내 삶의 한부분이 된 것처럼 달팽이 박사 권오길 교수(그는 '달팽이 박사'로 불린다)의 책들이 누군가에게도 스며들었으면 좋겠다. 그도 나처럼 책을 놓지 말았으면 좋겠다.


권오길의 괴짜 생물 이야기

권오길 지음, 을유문화사(2012)


태그:#책읽기, #독서, #책의 해, #달팽이 박사,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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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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