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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3일 연임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사진은 지난 7월 16일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이 자리에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논문표절과 부동산투기, 업무추진비 과다지출, 장남 병역 등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하다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지난 13일 연임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사진은 지난 7월 16일 국회 인사청문회 당시. 이 자리에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논문표절과 부동산투기, 업무추진비 과다지출, 장남 병역 등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하다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 남소연

지난 13일 밤, 일터에서 회의가 끝난 뒤, 동료들과 술자리에서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 연임'이라는 화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청와대가 참 대단하다'는 이야기부터 '인간의 뻔뻔함은 어디까지인가'라는 이야기까지... 참 많은 이야기가 쏟아졌습니다. 현병철 위원장 연임 소식을 들은 '상식 있는' 많은 이들의 지난밤은 아마도 같았을 것입니다.

술자리에서 한 친구가 이렇게 묻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할 거면 국회 청문회는 왜 했지?"

그래서 대답했습니다. 불행하게도 국가인권위원회법상 위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고.

"청문회에서 그렇게 까발려지면 임명 못하는 거 아니야?"

또 질문이 이어졌지요. 그래서 "국회의 인사 청문 절차가 있지만 '불통 정부'에게는 국민의 의견이나 국회의 청문절차 따위가 중요하지 않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오죽하면 MBC 김재철 사장이 아직도 그 자리에 있겠냐"고 씁쓸하게 답했습니다.

현병철 연임이라는 소식... 인권위에 위로를 보냅니다

 다산인권센터가 현병철인권위원장에게 보냈던 선물중에 있었던 호박씨입니다.
다산인권센터가 현병철인권위원장에게 보냈던 선물중에 있었던 호박씨입니다. ⓒ 안은정 제공

인권활동가들은 기간 현병철에게 두 번, 종합선물세트를 보냈습니다. 처음 보냈던 것은 찢어진 '짝퉁'(가짜) 명품 신발, 그리고 다음에 보냈던 것은 호박씨였습니다. 찢어진 짝퉁 명품 신발은 현시대 우리 인권의 현주소를 보여주기 위함과 동시에 교수 재직 동안 일곱 건의 논문 표절 논란이 있었던, 그렇게도 명품이 되고 싶었던 현병철 위원장을 '위로'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각종 의혹이 드러나면서 그는 '찢어진 짝퉁'이 됐지만 말이죠. 한편, 선물로 보낸 호박씨는 거짓말로 가득한 그의 평소 언행을 상징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많이 쓰죠, '호박씨를 잘 깐다'고.

인권활동가들은 그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서 보냈습니다. 사실 그가 인권활동가들의 선물을 받지 않을 것임을, 전달조차 받지 못할 것임을 예상하면서도 보냈습니다.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임이 이미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현병철이 받아야 할 선물이 무엇인지 알리는 것이 목적이 컸습니다.

그리고 마음 한편으로 '그대'에게 위로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인권위 내의 좌편향적 인사' '문제 있는 직원' '축출돼야 할 진보인사'라는 비아냥을 감내하며 인권위를 떠난 '그대'에게 말입니다. 그리고 여전히 인내하고 있는 '그대'에게 '당신의 편이 돼 주겠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얼마 전 어떤 후배가 제게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 맞습니까? 그런데,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자꾸 좌절하게 됩니다."

그래요. 우리는 이 질문을 얼마나 자주 스스로에게 던지고 살고 있습니까. 비단 이명박 대통령과 현병철 위원장이 뿌리는 '똥물'이 아니더라도, 자본과 권력에 의해 시들어 죽고 있는 수많은 생명들을 바라보며, 수시로 참담해지는 우리는 역사의 진보와 인권의 정의에 대해 묻고 또 묻습니다.

"역사는 한 방향으로 일순간에 진보하지 않아요. 주춤주춤 뒤로 가기도 하고, 때로는 그 뒤로 갔던 반동으로 한 발짝 더 크게 진보하기도 해요. 그래서 뒤로 가는 순간에 서 있는 우리는 역사가 멈춰져 있거나 후퇴하는 듯이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역사는 진보하는 것이 맞습니다. 인권은 억압받고 착취 받은 그 인간에 의해 발견되고 발전하는 것이 맞습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에게, 우리에게, 그리고 '그대'에게 필요한 대답일 테지요.

인권위는 이제 두물머리입니다, 강정입니다

 인권활동가들의 현병철퇴진 시위 손팻말
인권활동가들의 현병철퇴진 시위 손팻말 ⓒ 안은정 제공

저는 '그대'를 수많은 인권 현장에서 만났습니다. 우리는 자주 갈등했습니다. 인권위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주로 질타했습니다. '그대'는 현장조사에서, 서면 작성에서, 공청회와 토론회에서 협조보다 날 선 비판이 먼저였던 인권활동가들의 불편함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비판에도 주저앉지 않았던 '그대'들을, 우리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현병철'이라는 이름의 암흑 같은 3년과 남은 6개월, 그 세월의 고단함을 누구보다 힘겨워함을 보았습니다. 목이 터져라 외치며 싸우는 우리들보다 묵묵하게 버티고 있는 '그대'가 더 아프다는 것 역시 알고 있습니다.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그대'가 있는 인권위가 바로, 우리 시대의 인권이 첨예하게 부딪히는 현장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 그곳은 85호 크레인이고, 행정대집행을 앞둔 두물머리이며, 성체가 깨지고 무너지는 강정마을입니다.

또한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대한문이고, 용역폭력에 두들겨 맞아도 다시 돌아가야 할 SJM·만도·3M·유성·재능교육·콜트콜택 노동자들의 공장입니다. 기무사에 사찰당해 결국 운명을 달리한 한 사람의 장례식장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다시금 가슴이 아파, 눈물을 머금는 인권활동가의 바로 그 현장입니다.

우리, 다시 얼굴 붉히며 싸웁시다. 그 현장에서. '인권현장에 없는 인권위는 필요없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인권활동가들을 향해 "우리 지금 간다, 먼저 갈 테니까 너무 들이대지 말라"고 대거리하며 싸웁시다.

현병철 위원장 때문에 발이 묶여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진 그 인권위 말고, 보다 더 잘하지 못해 채근 당하고 면전에서 모욕도 당하는 인권위를 원합니다. 이 대통령이나 현병철에게 당하는 모멸감이 아니라, 인권위가 필요해서 악다구니치는 인권의 피해자들에게 당하는 봉변을 다시 당합시다. 우리 만나는 날은 여전히 거친 목소리와 갈등이 있겠지만, 그대를 그곳에서 다시 만나야겠습니다.

그대에게 정말 주고 싶은 게 있습니다. 현병철에게 보낸 찢어진 명품 짝퉁 신발 따위의 선물이 아닙니다. 멈추고 후퇴하는 인권으로 인해 좌절했던 어느 순간, 위로가 됐던 바로 그것을 보냅니다. 어느 시인의 선물입니다.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그대 그러니 사라지지 말아라>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산
가장 높고 깊은 곳에 사는
께로족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희박한 공기는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고
발길에 떨어지는 돌들이 아찔한 벼랑을 구르며
태초의 정적을 깨뜨리는 칠흑 같은 밤의 고원

어둠이 이토록 무겁고 두텁고 무서운 것이었던가
추위와 탈진으로 주저앉아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신기루인가
멀리 만년설 봉우리 사이로
희미한 불빛 하나

산 것이다

어둠 속에 길을 잃은 우리를 부르는
께로족 청년의 호롱불 하나

이렇게 어둠이 크고 깊은 설산의 밤일지라도
빛은 저 작고 희미한 등불 하나로 충분했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세계 속에는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정신이
패배와 절망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 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여지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박노해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박진님은 다산인권센터 활동가입니다.



#현병철#인권위#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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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 www.right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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