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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무개(78) 할머니는 혼자였다. 노령연금과 기초생활지원금 등 월 50여만 원의 정부보조금으로 생계를 유지해왔다. 출가한 딸은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 실직 중이던 사위는 최근 시급 5000~6000원하는 일자리를 얻었다.

할머니는 7월말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지원 자격을 잃었다. 현행법상 '부양의무자'인 사위에게 소득이 생겼기 때문이다. "기초생활수급 대상에서 제외돼 더 이상 살 수가 없다"는 말을 남긴 할머니는 지난 7일 경남 거제시청 화단에서 발견됐다. 옆에 놓인 작은 손가방에는 전날 할머니가 마신 것으로 보이는 농약이 들어 있었다.

남윤인순 민주통합당 의원은 13일 "최근 3년간 이아무개 할머니처럼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 자격을 잃은 기초생활수급자가) 자살한 사례가 알려진 것만 6건"이라며 "현행 수급권자 선정조건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남 의원은 같은 내용의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일부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2009년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민생안정 긴급지원대책'에 따르면, 빈곤층이면서도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약 410만 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100만~103만 명은 '부양의무자' 기준에 따라 수급대상에서 제외됐다. 부양의무자는 기초수급권자를 부양할 책임이 있는 사람이다. 현행법은 기초생활수급권자의 범위를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사람으로 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아무개 할머니처럼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실제 부양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복지 사각지대 빈곤층의 25%가 '부양의무자' 탓에 수급자격 없어

기초법개정공동행동 소속 시민단체 회원들이 2011년 3월 2일 낮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18대 국회 민생법안 1순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 11년째를 맞지만 아직도 빈곤층 400만명이 사각지대에 있으며, 가난한 이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홈리스행동 회원이 주소를 '홈리스시 집없으면 슬프리'로 표기한 신분증 모형을 목에 메고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 내 주소는 '홈리스시 집없으면 슬프리' 기초법개정공동행동 소속 시민단체 회원들이 2011년 3월 2일 낮 서울 세종문화회관앞에서 '18대 국회 민생법안 1순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시행 11년째를 맞지만 아직도 빈곤층 400만명이 사각지대에 있으며, 가난한 이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홈리스행동 회원이 주소를 '홈리스시 집없으면 슬프리'로 표기한 신분증 모형을 목에 메고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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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들은 보건복지부가 실제로 부양이 이뤄지고 있는지, 부양의무자의 실제 소득이 얼마인지, 부양이 이뤄지고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수급 자격을 박탈한 사례가 빈번하다고 비판해왔다. 또 지난 9일 빈곤사회연대 등이 참여하는 기초법(국민생활기초법)개정공동행동은 "실제로 부양하지 않는 부양의무자 때문에 수급자격을 잃는 사람들이 많다"며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개정안은 현재 '수급권자의 1촌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로 되어 있는 부양의무자의 범위를 '1촌 직계 혈족'으로 축소했다. 선정 기준에서도 부양의무자 관련 내용을 삭제했다. 이 법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면,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보다 낮은 사람은 누구나 수급 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을 열린다. 부양의무자 규정은 부정수급자나 부양의무자 있는 자에게서 보장비용을 징수하는 요건으로만 쓰이게 된다.

평균소득 대비 최저생계비의 수준이 계속 낮아지는 것을 막기 위한 내용도 담겨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 도입 당시 최저생계비는 평균 소득의 40%였지만, 현재는 30% 수준이다. 최저생계비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에 못 미쳤기 때문이다. 남 의원은 "상대빈곤선을 도입해야 한다"며 "최저생계비를 전년도 도시근로자 가구 중위소득의 40% 이상이 되도록 명문화했다"고 말했다. 현재 최저생계비를 결정하는 기준은 국민의 소득·지출 수준과 수급권자의 생활실태, 물가상승률 등이다.

남 의원은 "2009년 유엔 사회권위원회도 한국의 빈곤율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최후의 사회안전망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며 "더 이상 안타까운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빨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태그:#기초생활보장제도, #복지, #부양의무자, #남윤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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