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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합의내용 공개로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아 '백수'가 된 창원지법 이정렬 부장판사가 20년 전인 1992년 사법연수원 시절에 인권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찍은 추억이 담긴 사진 한 장을 공개해 시선을 끌고 있다.

 

이정렬 부장판사(사법연수원 23기)는 20일 오후 8시50분께 자신의 트위터에 "짐 정리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십대 초반일 때 사진이 보이네요. 왜 이리 촌스러운지 원..."이라며 당시 인권변호사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해 민주당에서 활동하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찍은 추억의 사진을 공개했다.

 

또 자신의 페이스북에도 같은 사진을 올리며 "1992년에 사법연수원 편집위원회에서 대통령님 초청 인터뷰 때 사진"이라며 공개했다.

 

사진 속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은 당시 40대 후반이라서 그런지 대통령 재임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아 누구인지 쉽게 알 수 있는데, 그 오른쪽에 있는 당시 이정렬 사법연수생은 20대 초반의 나이라서 그런지 마른 모습의 앳된 얼굴이어서 풍채가 좋아진 현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당시엔 그야말로 깐깐한 공부벌레 이미지가 물씬 풍겨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산상고를 나와 독학으로 1975년 제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1977년 대전지법 판사로 임관했다가 변호사로 활동하며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다. 노 전 대통령과 대표적인 사법시험 동기는 대선 비자금 수사로 '국민검사'로 명성을 날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출신 안대희 대법관이다.

 

이 사진을 본 팔로워가 "판사님 옆에 계신 분은! 언제 적 사진인가요? 또 무슨 일로 같은 자리에? 궁금합니다"라고 묻자, 이 부장판사는 "1992년 사법연수생 시절에 당시 사법연수생 설문조사결과 존경하는 법조인으로 선정되신 대통령님을 초청해서 인터뷰를 했었습니다. 제일 오른쪽이 저구요..."라고 설명했다.

 

이정렬 판사, 노 대통령에 각별한 애정 보여

 

사법연수생들이 존경하는 법조인으로 선정된 이유를 말해주듯 판사 법복을 벗고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었던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최루탄이 터지는 상황에서도 '퇴진 노태우'가 적힌 띠를 메고 혼자 도로 중앙에 앉아 경찰들과 맞서는 낡은 사진이 아직도 포털사이트에 회자되고 있다.

 

이런 인터뷰 인연이 있어서일까. 이정렬 부장판사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찍은 사진을 갖고 다녔나보다. 이 사진은 창원지법으로 발령 나 서울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정직 6개월 중징계를 받아 직무가 정지돼 서울로 올라가기 위해 짐을 챙기다 추억의 사진을 발견하고 트위터에 올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진 한 장으로 그동안 이 부장판사가 자신의 트위터에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표시한 각별한 애정이 헤아려진다.

 

지금은 자신을 백수라는 한 단어로만 표현하는 이정렬 부장판사는 한때 자신의 트위터 프로필 사진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진으로 올린 적도 있다. 이 부장판사는 1월26일 트친(트위터 친구)님이 보내 준 사진으로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면서 고마움을 표시한 적이 있다.

 

당시 이 부장판사는 "저를 살려주신 소중한 트친님들 감사드립니다. 맘 다잡고 플릭 사진도 바꿨습니다. 트친님께서 보내주신 건데요. 벽에 붙여 놓고 보고 있습니다. 저보고 '넌 최고야'하고 하시는 것 같아요^^ 그 분께서 최고신데..."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말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사실 이 날 이 부장판사는 본인이 향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알면서도 작정하고 정직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게 된 단초가 된 날이다. 그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지난 1월26일 이 부장판사는 사법부 권위주의를 정면으로 비판하는 영화 <부러진 화살>로 다시 화제를 낳고 있는 이른바 김명호 전 성균관대 교수의 '판사 석궁 테러' 사건이 징역 4년을 선고한 영화 내용과는 달리 자신에게 화살이 돌려지자 고심 끝에 당시 김 전 교수의 복직소송 항소심 재판부 주심으로서 어렵게 합의부 내용을 법원내부통신망에 공개했다.

 

한인섭 서울대 법대교수 "이정렬 징계, 주의조치면 충분"

 

사실 이 부장판사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는 "합의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돼 있는 법원조직법을 어기지 않으려 했으나, 이제 실정법을 어기려 한다. 그로 인해 제게 불이익이 가해진다면, 이는 달게 받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 부장판사는 당시 글에서 "누구의 지시를 받아 짜맞추기식 엉터리 판결을 했냐, 지시한 사람이 청와대라는 둥, 대법원장님이라는 둥, (당시 재판장인) 박홍우 원장님한테 한 마디도 못하고 시키는 대로 했다는 둥...엉터리 이야기를 하고, 심지어는 민사사건에만 관여한 제게 왜 (석궁사건) 혈흔감정도 안 하고, 부러진 화살도 증거물로 안 나왔는데 중형을 선고했냐는 둥 도대체 제가 민사사건에 관여를 했는지, 형사사건에 관여를 했는지조차도 모르는 분까지 있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지금에서야 짐작할 수 있는건대, 합의내용을 공개하기 전날인 1월25일 이정렬 부장판사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말을 남겼다.

 

"담배 한 보루가 연휴기간 동안 다 없어졌네... 어디다 흘리고 다녔나?"

 

그동안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했는지 이제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실 이 부장판사의 복잡한 심경은 이전에도 표출됐다. 그는 1월21일 자신의 트위터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를 링크하며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그 분의 심정 이제야 알겠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올리기도 했으나, 아무도 그의 답답한 마음을 알지는 못했다.

 

자신의 트위터 친구들에게 '즐거운 만찬'이라며 자신이 직접 준비한 조촐한 저녁 식탁을 사진으로 찍어 공개하던 소박한 이정렬 부장판사, 그가 왜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지 추억의 사진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한인섭 서울대 법대교수는 지난 16일 자신의 트위터에 "(재판장인) 부장판사가 석궁까지 맞고, 영화까지 나와 법원이 불신 받는 상황에서 주심판사로서 가만히 있기도 괴롭다. 부장이 당하는 공격에 대한 최소한의 대리방어로서 설명한 것이라면 참작사유 있지 않나"라며 다른 법조비리사건에 대한 징계 등을 비교하면서 "주의조치면 충분할 것을 중징계했다"며 저의를 의심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이정렬, #노무현, #사법연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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