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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출간된 <예수는 신화다> 책 표지(2009. 9. 3)
 재출간된 <예수는 신화다> 책 표지(2009. 9. 3)
ⓒ 미지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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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한국 보수기독교계의 거센 반발로 절판됐던 <예수는 신화다>가 최근 출판사를 달리하여 다시 나왔다. 이번에 재출간된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전에 삭제된 채 출판되었던 후주가 새롭게 완역되어 나왔다는 사실이다. 세세한 설명을 곁들인 이 후주의 분량만 해도 무려 120쪽에 달한다. 워낙 도발적인 주장들을 곳곳에서 펼치는 책이라, 보다 분명한 근거를 살펴보고자 했던 이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이 책의 저자들은 복음서의 예수 이야기가 고대의 여러 이교신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신화'라고 전제한다. 그리하여 이를 입증하고자 다양한 근거 자료를 들이대고 있다. '생각할 수 없는 생각'이라는 소제목이 잘 말해주듯, 예수가 고대 이교신화로 합성된 인물이라는 주장은 역사적 예수 연구에 문외한 사람들에게는 큰 충격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의 역사적 실존을 부정하고 신화적 인물로 보려는 시도는 이미 오래전부터 제기되었다.

가령 스트라우스(D.F. Strauss)는 대부분의 복음서 기록을 역사적 사실의 기록물이 아니라 예수 신앙에 따른 신화적 표현이라고 보았다. 브루노 바우어(Bruno Bauer)의 경우에는 최초의 복음서로 꼽히는 마가복음을 사실이 아닌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보기도 했다. 그밖에도 로버트슨(J.M. Robertson), 스미스(W.B. Simth), 아써 드루스(Arthur Drews), 그리고 근래의 웰스(G.A. Wells)에 이르기까지 여러 그리스도 신화 이론가들이 존재한다.

그러니 저자들이 전례 없이 기상천외한 가설을 처음으로 제기하고 나선 것은 아니다. 그들도 예수 신화가설이 해묵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자신들은 학계의 금기를 깨뜨리고, 명백한 결론을 과감히 이끌어내어 대중서적으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이전 연구자들에 비해 공헌했다고 자부한다.

이 책은 1999년에 영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상위 10권 안에 드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유명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는 '놀라운 베스트셀러(surprise best-seller)'에 뽑혔고, 영국의 데일리 텔레그라프의 '올해의 책'에 선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이 책이 큰 화제를 모으면서 CNN에서까지 소개되자, 국내 일부 언론사가 이런 해외 화제 소식을 가십거리로 보도하면서 국내에도 그 존재가 처음으로 알려졌다. 그 뒤 2002년 동아일보사가 이 책을 번역 출간하였고, 여러 언론에 소개되면서 10만 부 이상 팔려나가는 등 한창 베스트셀러를 달리고 있을 무렵이었다.

이 책의 파괴력을 실감한 보수 개신교계는 그냥 놔둬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기독교계의 한 신문사는 대형교회 목회자들을 비롯한 교계 인사들을 내세워 이 책을 비판하는 기사를 연재하였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기총(한국기독교총연맹)까지 가세하여 동아일보사를 상대로 책을 당장 절판하지 않으면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압력을 가하였다. 그러자 동아일보사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출간한 지 석 달여 만에 이 책을 절판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책이 몰고 온 파장은 결코 여기서 수그러들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교계의 온갖 그릇된 행태로 인해 기독교의 사회적 불신감이 팽배해 가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한기총 압력으로 이 책이 절판되자, 적지 않은 시민들은 개신교에 대해 한층 더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들 중에 어떤 사람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이 책의 절판에 대한 항의 차원에서 전체 내용을 타이핑하여 인터넷에 공개하기까지 했다. 각종 안티기독교 모임에서는 이 책의 내용을 자신들의 유용한 공격 무기로 활용하는 실정이다.

한편 공중파 방송인 SBS에서는 2008년 4부작 <신의 길 인간의 길>을 방영하면서 또 한 차례 큰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이 다큐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종교간 충돌을 피하고 화해를 유도할 목적으로 제작되었다고 그 기획의도를 밝혔다. 그러나 프로그램 1부에서, 역사적 예수의 실존이 학계의 논란거리임을 일부 예수 연구자들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내면서 보수 개신교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 무엇보다 예수신화 이론가인 프리크(T. Freke)와 프라이스(R.M. Price)가 출연하여 예수의 역사적 실존을 부정하는 발언을 쏟아내자 이에 가장 큰 자극을 받았던 것 같다. 오늘날 학계에는 수많은 역사적 예수 연구자들이 있다. 그럼에도 왜 하필 소수에 불과한 예수 신화이론가들이 두 사람이나 출연하였을까? 담당 PD의 발언을 살펴보면, <예수는 신화다>가 이 다큐를 제작하게 만든 주요 배경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큐의 기획 동기는 무엇인가.
"기독교가 모태신앙이다. 어려서부터 시골에서 기독교와 교회를 접하며 자랐다. 사춘기 시절부터 의문이 생겼다. 교회 안팎의 삶이 구분되지 않는 사람들, 시골 작은 교회에서 내분이 일어나는 것 등을 보며 잘은 모르지만 뭔가 왜곡돼있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PD가 된 후 언젠가는 이런 프로그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2002년 티모시 프리크의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을 읽은 후 그 생각이 더 구체화됐다." (<인터뷰> SBS '신의 길…' 김종일 PD / 연합뉴스-2008-07-16)

<신의 길 인간의 길> 방영을 둘러싼 소동은, <예수는 신화다>가 비록 강압적으로 절판되었으나 그 영향력이 훨씬 더 증폭되어 나타났음을 보여준 사례다. 작년에도 국방부가 지정한 금서 목록의 책들이 속속 베스트셀러가 되는 희극이 벌어진 바 있다. 이로 인해 국방부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던 양서들을 널리 홍보해준 꼴이 되어 큰 망신을 샀다. 이런 일련의 사태를 통해 우리 사회의 권좌에 앉아 있는 분들이 이제는 어느 정도 상식적인 교훈을 얻을 때도 되었지 않나 싶다. 아무리 강제로 보지도, 듣지도, 읽지도 말라고 해봐야 오히려 역효과만 부른다는 교훈을 말이다.

"세상에 나온 책치고 쓸모없는 책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 있다. 물론 과장이겠지만 크게 틀린 말도 아닐 것이다. 독자가 책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좋은 책도 나쁜 책도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니 이 번 만큼은 제발 현명한 독자의 판단에 맡겨주기 바란다.


예수는 신화다 - 기독교의 신은 이교도의 신인가

티모시 프리크 & 피터 갠디 지음, 승영조 옮김, 미지북스(2009)


태그:#예수는 신화다, #예수 신화, #역사적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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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solsam.zio.to)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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