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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졌을 때 '쨘'하고 나타나 그 위기에서 우리를 구해 줄 수호신으론 누가 있을까? 불교에선 단연 '관세음보살'이 으뜸이다.

명호가 붙은 여러 보살 중에 자식을 거두는 자애로운 어머니 모습처럼 밤낮으로 우리를 걱정하고 보호해 주는 관세음보살. '관세음'이란 뜻도 인간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고통을 살피고 들어 고난에 빠진 일체 중생을 구해주신다는 보살이기 때문에 관세음보살이란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통도사 성보박물관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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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관세음보살이 귀한 발걸음을 하셨다. 600여 년 만의 고국 나들이. 일본 규슈 사가현 '가가미' 신사(경신사)에 모셔져 있던 고려불화 '수월관음도'가 양산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특별 전시된 것이다.

전시회는 2009년 4월 30일부터 6월 7일까지. 장장 두 달에 걸친 전시회지만 양산 통도사는 승용차로 쉬지 않고 가더라도 4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머나먼 길이다. 우물쭈물하다간 놓치기 십상이겠다 싶어 만사를 제치고 길을 떠났다.

관람객이 적은 평일을 이용했더니 역시나 통도사 성보박물관 앞은 한산했다. 2년 전에 왔을 때는 관람료를 받았는데 박물관 중앙에 걸린 '여러분의 자유로운 관람을 환영한다'는 현수막 안내대로 공짜관람이다.

일본 깍쟁이들은 남의 나라 불화를 가져가 몇 년 또는 십년에 한 번씩 거금의 관람료를 받고 깜짝 전시를 한다는데 이렇게 큰돈을 들여 공수해 온 보물을 공짜로 보게 해준다니 우리나라 좋은 나라다.

수월관음보살상 전신, 화려한 오방색 색감이 신비하다.
 수월관음보살상 전신, 화려한 오방색 색감이 신비하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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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까마득한 옛날에 헤어진 연인을 대면하듯 설레는 가슴으로 박물관에 들어섰다. 대형 괘불을 걸기 위해 2층 건물을 통층으로 만든 실내에 우람한 모습으로 펼쳐져 있는 '수월관음상'. 그 크기를 보니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고려불화 정도가 아니라 야단법석을 관장하는 괘불에 버금가는 대작이어서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유리판에 갇힌 수월관음도는 고개를 젖히고 봐도 너무나 아득해 자세하게 살펴볼 수는 없었다. 다만 첫인상은 바닷가 절벽 위에 앉은 채 당신 앞에 두 손을 모두고 간절하게 보살도를 구하는 선재동자를 바라보는 수월관음의 모습이 꼭 웨딩드레스 차림의 신부를 닮았다는 느낌이었다.

후덕한 맏며느리상의 수월관음보살님.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한 모습이 왕실 귀부인 모습?
 후덕한 맏며느리상의 수월관음보살님. 화려한 장신구를 착용한 모습이 왕실 귀부인 모습?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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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에 아미타여래 화불이 그려진 보관을 쓰신 수월관음의 의상은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섹시한 차림이었다. 보석이 주렁주렁 매달린 화려한 목걸이, 팔에는 역시 보석이 박힌 두꺼운 팔찌를 꼈는데 보관에서 시작해 발끝까지 내려오는 투명한 베일은 영락없는 웨딩드레스 차림의 신부였으니 아마도 수월관음보살님이야말로 웨딩드레스 신부의 원조 아닐까?

너무 화려하고 아름다운 관세음보살님이라 이렇게 화려한 분이 구질구질한 중생의 고달픔을 제대로 알기나 할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 지경이었는데 이 수월관음도는 1310년(고려 26대 충선왕 2년) 충선왕의 후궁인 숙비 김씨가 발원해 화원 8명이 동원돼 조성한 작품이란다.

오른쪽 팔. 투명한 베일을 나타내는 하얀 주름선이 눈부시다.
 오른쪽 팔. 투명한 베일을 나타내는 하얀 주름선이 눈부시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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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의 후원으로 조성됐으니 무엇이 부족할까. 고려불화를 그리는 비단은 소폭이 대부분인데 이 수월관음도의 크기는 가로 254cm 세로 430cm에 이르는 거대한 비단 화폭이다. 그런데 원형은 이보다 더 큰 가로 270cm, 세로 500cm의 대작으로 이러한 규모는 중국, 일본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다니 작품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된다.

현존하는 고려불화 160여 점 중에 국내 소장은 겨우 10여 점. 나머지는 대부분 일본에 소장되어 있단다. 일본 기록에 의하면 이번에 모신 수월관음도도 승려 료우켄이 1391년(공양왕 3) 가가미 신사에 진상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제 발등 제가 찍었는데 누굴 탓하랴. 만약 불화를 모신 스님들이 이 가치를 제대로 알아 소중하게 모시기만 했어도 전국 사찰 구석구석 모셔졌던 그 많던 불화, 낡고 오래됐다고 훌쩍 떼어 불구덩이에 내던진 속없는 승려들만 없었어도 최소한 일본보다는 더 많은 작품을 보유할 수 있지 않았을까.

연꽃을 밟고 계신 관세음보살. 통통한 발아래 부들자리가 깔려있다.
 연꽃을 밟고 계신 관세음보살. 통통한 발아래 부들자리가 깔려있다.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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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관음도는 화엄경 입법계품의 내용을 인용해 제작된 불화로 인도 남쪽 바다 가운데 떠있는 보타락가산에 머물고 있던 관세음보살이 구법을 위해 먼 길을 찾아 온 '선재동자'를 맞이해 법문을 설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바닷가 벼랑 위에 한쪽 다리를 포갠 반가좌 형태로 앉아 선재동자를 바라보는 수월관음도는 고려 후기에 유행한 양식으로 160여 점의 고려불화 중 40여 점을 차지할 정도로 선호하됐던 소재란다. 특히 우리나라 수월관음도의 특징으로는 선재동자가 꼭 등장하고 버드나무 가지가 꽂힌 정병이 그려진다는데 꼭 그대로였다.

그림 왼쪽, 버드나무가 꽂힌 정병과 합장을 한 선재동자가 수직으로 그려진 앞부분이 집중적으로 손상됐지만 금색의 피부를 과감히 드러내고 거북 등껍질 문양 바탕에 드문드문 연꽃을 그려놓은 붉은색 치마를 입은 수월관음보살의 모습은 완벽했다.

간절한 눈빛으로 설법을 구하는 선재동자.
 간절한 눈빛으로 설법을 구하는 선재동자.
ⓒ 조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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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아래 빨간 리본으로 머리를 묶은 선재동자가 관음보살을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내며 합장한 모습을 보니 그 절절함이 마치 인간답게 살고 싶어 몸부림치는 지금 우리들을 그린 것 같아 절로 마음이 복잡해졌다.

비록 그림을 보는 안목은 없지만 고려불화의 정수인 '수월관음도'를 친견한 마음은 뿌듯하다. 되돌아 나오며 언제 다시 볼까? 수월관음도의 아름다움을 복기하기 시작했다.

유려한 곡선을 하얀 물감으로 내달려 투명한 베일 주름, 베일바탕에 수놓인 금니로 표현한 구름문양, 수월관음 주변에 너울너울 춤 추는 산호초군락…. 세월의 무게를 못 이겨 탈색은 했겠지만 오방색의 주조는 왜 그렇게 신비할까.


태그:#고려 수월관음도, #고려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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