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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지난 10일 국무회의 모습.
사진은 지난 10일 국무회의 모습. ⓒ 청와대 제공

어제(20일) 우리는 약간 생뚱맞은 뉴스를 접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우리 사회 일각의 지나친 호화·사치 결혼 풍조의 문제점에 대해 논의하고 결혼문화 개선을 위한 지도층의 솔선수범을 촉구했다"고 밝힌 것이다.  

 

이 대변인은 "우리 사회도 성숙한 선진국이 되려면 겉만 요란한 허례허식과 낭비를 없애고, 결혼의 실질적 의미를 살리는 새로운 결혼 문화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제도 개선도 개선이지만 그보다 먼저 문화가 바뀌어야 하고,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한 언론의 적극적 관심과 선도적 역할 역시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청와대는 사치 결혼식 풍조의 확산이 국민들의 부담을 증가시키고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적 단합 분위기를 해친다고 판단, 건전한 결혼 문화 정착을 위한 노력해 나가기로 했다고 한다.

 

이 뉴스를 보며 먼저 떠오른 것은 박정희 시대에 만들어진 '가정의례준칙'이라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부는 1969년 가정의례준칙을 제정하고 이를 대통령령으로 확정했다.(1973년) 당시 박정희 정부는 문화영화를 제작, "허례허식과 낭비는 국가경제를 좀먹는 암적 존재"라고 규정하고 국민의 관혼상제 전반에 대해 간섭· 규제하면서 공권력을 동원하여 단속을 실시했다.

 

당시 만들어진 가정의례준칙이라는 것을 읽어 보자.

 

혼례는 약혼에 있어서 당사자는 호적등본과 건강진단서를 첨부하여 약혼서(約婚書)를 교환하고 약혼식은 따로 하지 않는다. 혼인은 당사자 간의 합의로 결정하며 혼례식에는 친척과 가까운 친지에 한하여 초청하고 청첩장은 내지 않도록 한다.

 

혼례식 장소는 양가의 가정이나 공회당으로 하고 주례는 당사자가 잘 알고 존경하는 가까운 어른으로 한다. 신랑 ·신부의 혼례복장은 단정하고 정결한 옷차림으로 하며, 신랑이 한복을 입은 경우에는 두루마기를 입어야 한다. 또한 혼인신고서는 혼인 당일에 제출하고 신행은 혼인 당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며 폐백과 예물은 간소하게 한다.(가정의례준칙 '혼례' 항목에서)

 

이와 같이 박정희 정권은 국민의 삶을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간섭· 규제했다. 두 말할 필요도 없이 가정의례준칙은 독재정치의 산물로서 국민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었다.

 

갑자기 박정희 시절 '가정의례준칙'이 떠오르는 이유

 

 이동관 대변인.
이동관 대변인. ⓒ 권우성

어느 나라든 관혼상제(冠婚喪祭)의 관습이 있으며 그것은 한국처럼 역사가 유구한 나라일수록 뿌리 깊게 자리 잡혀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관·혼·상·제 중에서 관(冠, 성인식)과 제(祭, 제사)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다. 문제가 있다면 상(喪, 초상)과 혼(婚, 결혼)에 있다고 본다. 작년 가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부친 김홍조옹의 거창한 장례식이나 지난달에 있었던 인천 교육감의 청첩장 파문 등은 이런 문제를 잘 드러내 준다.

 

하지만 이를 공권력으로 규제하려 하면 국민의 자유가 억압받는다. 관습에 대한 공권력 개입은 실효성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부작용만 크게 남긴다. 조선시대에도 세종이나 성종 그리고 영조 같은 임금이 오례의(五禮儀)를 중시했지만 그것을 책으로 펴내는 등의 계몽에 치중했지 박정희 식의 방법을 쓰지는 않았다. 

 

국정운영에서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이 읽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박정희 정권의 가정의례준칙이 실패하고 웃음거리로 전락한 이유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읽지 못했기 때문인데 이명박 정부도 그 전철을 밟고 있는 것 같아 걱정된다. 

 

규제혁파 내세우더니 왜 만사를 다 규제하려고 하나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이명박 정부는 규제혁파를 마치 정권의 슬로건처럼 내세웠다. 그런데 막상 이명박 정부 들어 국민이 받는 규제와 억압은 갈수록 강화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대기업과 거대언론을 위한 규제만 완화할 뿐이지 그 밖의 규제는 국민생활 전반에 걸쳐 강화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이미 국민의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독재국가 수준으로 규제하고 있다. 호화 결혼식 문제를 대통령이 주재한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논의한 것은 얼핏 보아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바로 이런 규제만능주의의 발상이 작용되었다는 점에서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무엇보다 이런 일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역주행임을 알아야 한다.

 

게다가 이런 발상이 즉흥적으로 또는 전시적(展示的)으로 남발되고 있다는 데에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최근 있었던 학원심야교습 단속 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학원 교습시간은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조례로 규정되어 있다. 이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교습시간을 단속하려면 법적인 절차와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미래기획위원장이라는 특정인이 불쑥 발표한다고 해서 될 성질의 일이 아닌 것이다.

 

이번 결혼식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호화 결혼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국민이 알고 있다. 또한 이것은 어제오늘 있어 온 문제가 아닌 것이다. 청와대는 이를 개선할 수 있는 연구와 대책을 강구하도록 조용히 주무부처에 의뢰했으면 되는 것이다.

 

이를 대통령이 주재한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논의했다고 먼저 발표부터 하고 보는 것은 즉흥적이고 전시적이다. 이렇게 하면 관료조직의 속성상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생각해야 한다.

 

문득 청와대가 다소 생뚱맞아 보이는 결혼식 논의를 갑자기 한 배경이 궁금해진다. <조선일보>는 지난 5월 6일부터 5월 20일까지 특별취재반을 구성하여 17회에 걸쳐 호화 결혼식 문제를 기사화했다. 이동관 대변인은 발표를 하면서 "언론의 적극적 관심과 선도적 역할"을 주문했다. 

 

 고비용 결혼식 문제를 보도한 <조선일보> 5월 6일자 1면 기사.
고비용 결혼식 문제를 보도한 <조선일보> 5월 6일자 1면 기사. ⓒ 조선일보


#호화결혼식#가정의레준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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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과 평론을 주로 쓰며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글쓰기를 추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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