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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장균 YTN 정치부 차장은 어제(6일) 오후 노조 관계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청와대 반장인 그는 후배 기자가 쓴 '한중일 금융 정상회담' 관련 기사 데스킹 중이었다. 그로부터 1시간여 후 회사로부터 정식 통보를 받았다. '해임'이었다.

 

'보도국 뉴스6팀 차장 우장균 : 2008년 10월 6일 인사위원회 결의에 따라 2008년 10월 7일자로 해임함을 통보합니다.'

 

이번 무더기 징계 희생자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조합원이었고 차장으로는 유일했다. 지난 1994년 입사, 1995년 3월 YTN 개국 방송 앵커를 맡는 등 지난 14년 동안 일해온 'YTN맨'이 하루아침에 '21세기 첫 해직기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우 기자는 담담했다. 우 기자와 인터뷰하는 도중 YTN 생방송에서는 자사의 대량 징계 사실과 정치권의 반응 등이 방송되고 있었다.

 

"해고 통보 순간 부모님 생각이 나더라"

 

"(해고 통보서를 받고) 만감이 교차했다.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늘 강조하는 '법과 원칙'을 생각한다면 해고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21세기 최초로 대량 징계를 받았지만 헌법의 정신에 따라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고 늘 믿고 있었기 때문에 큰 충격은 없었다."

 

하지만 45살의 우 기자 역시 집안에서는 어쩔 수 없는 '아들'이었다.

 

"84세 아버지와 75세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2대 독자 외아들이다. 물론 모든 사람 앞에서는 떳떳하지만, 어제 해고 통보 순간에는 부모님이 머리에 떠올랐다. 회사에서 집에 인사위원회 개최 우편문을 보냈을때 어머님이 큰 충격을 받으셨었다. 당시에도 어머님께 '아들이 하는 일이 옳으니 걱정 마시라'고 안심시켜드리긴 했다. 어제는 솔직히 아내와 아이들 생각보다 부모님 생각이 더 많이 났다."

 

우 기자는 과거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의 경험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5년 전 당시 표철수 사장 저지 투쟁을 성공시킨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노조는 "표철수씨가 이해성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의 고교 선배라는 이유"로 반대하며 이사회 회의장에 들어가 "노사가 뭉쳐도 될까 말까 한데 노조가 반대하는 사장을 들이면 회사가 어떻게 되겠냐"고 주장했다.

 

결국 이사회는 사장 후보 추천 안건을 처리하지 않고 사장 후보 추천위를 꾸렸다. 이 과정에서 표씨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낙하산 사장'을 저지한 것이다. 당시 노조위원장이 바로 우 기자다.

 

"YTN은 공기업이 60% 이상 지분을 갖고 있어 사실상 청와대가 인사권을 행사하는 회사다. 낙하산 사장 아닌 사람이 오기 힘들다. 그런데 단 한 번도 대선 특보 출신이 사장으로 오는 경우는 없었다. 공정방송 뉴스채널인 YTN에 치명적이다. 말이 안 되는 처사다."

 

우 기자는 본인에게 내려진 '해고' 처분에 대해 회사에서 '배후조종' 혐의로 자신을 '표적' 삼아 제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해임 사유에도 이렇게 되어 있다.

 

'상기인은 언론노조 YTN 지부의 전직 지부장으로서 대표이사 출근저지, 인사명령 거부, 항의농성 및 보고·결재 방해, 인사위원회 개최 방해, 생방송 뉴스 피켓시위 등 구본홍 사장을 반대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YTN 노조의 성명과 집회의 집행을 실질적으로 주도함으로써 심대한 해사행위를 조장해 왔다.'

 

우 기자는 사측이 자신을 '배후 조종자'로 지목해 쳐냈다고 설명했다.

 

"구본홍씨가 사장으로 오면 안 된다는 뜻이야 후배들과 같지만 내가 전면에 나선 적은 없었다. 마치 '배후조종자'인양 나를 쳐낸 것이다. 경찰 조사를 받으러 갔는데도 '우 기자님은 증거가 없는데 회사가 왜 고소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사측이 채증한 수십장 사진 중에 내 얼굴이 나온 것은 먼 거리에서 찍힌, 그것도 얼굴이 살짝 나온 사진 한 장 뿐이었다. 해임 사유를 봐도 난 인사위 개최 방해한 적도, 피켓시위를 한 적도 없다. 청와대 출입 등으로 현장 투쟁에 참여하지 못해 오히려 후배들에게 미안할 지경이었는데…."

 

그럼에도, 우 기자는 "낙관한다"고 했다.

 

"해고는 '5공 방식'으로 했지만 법리적으로 따지면 상식적인 판결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양심 팔면서 낙하산 사장 인정하긴 싫다"

 

우 기자의 바로 윗 선배, 바로 아래 후배들 중에 이른바 '저쪽'에 선 사원들이 꽤 된다. 우 기자가 '이쪽'에 있는 이유는 바로 "기자로서 양심 때문"이다.

 

"기자로서 양심을 팔기 싫다. YTN 산증인, 산역사 중에 한 사람으로서 내 양심 팔면서 낙하산 사장을 받아야 한다고 할 수는 없다. YTN이 어려웠던 시절, 그리고 소위 '잃어버린 10년' 동안에도 회사 문제에 별 책임 안 졌던 사람들이 지금에 와서도 후배 팔아서 구본홍씨에게 충성하고 있다. 구본홍도 문제지만 그 사람에게 줄 선 회사간부들이 더 문제다."

 

우 기자는 해결해야 하는 일이 또 하나 있다. 박선규 청와대 비서관과의 '진실게임'이다.  

 

우장균 기자는 지난달 24일 <기자협회보> "박선규 청와대 비서관이 지난 8월 20일 자신을 찾아와 YTN 주식 2만주 매각 사실을 밝히며 '청와대는 구본홍씨를 사퇴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이에 대해 박 비서관은 같은 매체에 글을 보내 "청와대는 현재 진행 중인 YTN 문제에 전혀 관여하고 있지 않다"고 반박했다.

 

우 기자는 8일 박 비서관을 반박하는 글을 다시 한 번 게재할 예정이라고 했다.

 

"박 비서관이 당일 나에게 두 차례 전화해 만난 사실도 있고 '계란으로 바위치기 하지 말라' 등의 멘트도 전부 사실이다. 물론 악의적으로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박 비서관 얘기대로 모든 게 되지 않았나. 당시 나와 박 비서관의 통화 기록도 요청할 것이며 내가 관련 내용을 이메일에 담아둔 것도 있으니 확인해 보면 될 것 아닌가. '해직 기자'가 뭐가 무섭겠는가?"

 

우 기자는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후배들 마음이 많이 무거울 것이다. 나보다 경미한 징계를 받은 후배들은 더 그럴 것이다. 미국에서 연수중인 후배가 어제와 오늘 두 차례나 전화해 '연수 포기하고 귀국하고 싶다' 하더라. 나는 투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해고된 것이 빌미가 되어서 구본홍 사장 반대 투쟁이 약해지면 안 된다. 절대 물러서면 안 된다. 사측은 그것을 약점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비록 순식간에 '해직기자'가 됐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어떤 위치에 있건 간에 반드시 정의가 승리하고 진실이 밝혀진다는 믿음이 있다."

 

우 기자는 오늘도 청와대에 갈 것이라고 했다.

 

'인사 불복종'이라는 노조 지침을 따르는 것이다. 장차관들과 잡은 취재 약속에도 더 부지런히 다니겠다고 했다. 그 사람들에게 "이 정부 관계자들에게 21세기 첫 해직기자와 자리를 함께할 수 있는 영광을 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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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YTN, #구본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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