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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저녁 7시 30분. 전북 익산시 영등동 영등시민공원에 시민 약 1500여 명이 모여 21년 전의 6·10항쟁을 기념하고 100만인 촛불문화제 참여로 성숙된 축제의 한마당으로 만들었다.

 

이날 촛불 문화제는 아이들 손을 잡고 온 가족 단위와 친구, 연인 등이 함께 자리했다. 사람들은 조촐하게 마련된 무대에서 공연을 즐기고 노래를 따라부르며 초여름 밤을 즐겼다.

 

▲ 6,10 항쟁 21주년 기념행사에 익산시민들도 동참했다
ⓒ 오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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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 어린이가 무대에 나와 "현재 내 나이가 12살인데 광우병은 10년 또는 20년 후에 발병한다는 말을 들었다. 32살에 죽게 되면 얼마나 억울하냐"고 호소하자 시민들은 큰 박수를 쳐주었다.

 

익산 참여자치연대 기타반 동호회원들이 열창을 할 때면 시민들은 같이 따라 부르며 이들과 함께 호흡했다. 콘서트장에 시민들이 모여앉아 즐기며 시위하는 모습은 21년 전의 절박했던 그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21년 전에는 최루가스를 마셔야 했고 대학생들은 화염병을 던졌고 온 도시가 뿌연 연기와 화염에 쌓였다. 그런 분위기와는 대조적이었다. 또 87년에는 대학생을 비롯 어른들의 시위였다면 오늘날은 어린 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3세대가 어울리는 축제의 시위였다.

 

 

그러나 함께한 시민들 표정은 밝았지만 그들의 목소리에는 현 정부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었다.

 

자발적으로 나왔다고 말하는 김순덕씨는 "6·10 항쟁을 기념하는 촛불문화제에 참여한 100만인 중의 한 사람이 되고자 참여했다"고 말했다. 기자가 "혹시 배후세력에 의해 나오게 되었냐"고 질문하자, 박장대소하며 "배후세력이 누군지 모르겠고 배후세력이라는 단어조차 모른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가족과 함께 참여한 김정미씨는 "초등학교 사회 교과서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치고 있는데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이런 자리에 나오는 게 더 효과적이다"며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것을 가르칠 수 있는 생생한 자리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만삭의 몸으로 참여한 김혜정씨는 "우리 딸아이가 학교 급식에서 미역국에 나오는 소고기를 먹지 않는다"며 "그럴 순 없잖아요"라고 말했다.

 

자는 아이를 안고 있던 김남미씨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다"며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나오지 못했는데 오늘은 (6·10 항쟁을 기념하는) 나와야겠다고 생각해서 나왔다"고 말했다.

 

 

집에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한다는 문구를 직접 만들어 온 송혜인양은 "엄마가 시킨 것이 아니라 제가 그렸다"며 "처음으로 이 자리에 나왔는데 깃발을 안 줄까 봐 그렸다"고 설명했다. 

 

익산 구평교회 진광섭 목사는 "예전에는 어른 중심의 투쟁이었다면 지금은 어린 아이부터 온 국민에 이르는, 평화적으로 이뤄지는 문화제라는 점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모습에서 더 이상 투쟁적이고 강제 진압적인 옛 공안시절로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날 촛불 문화제는 밤 10시를 넘겨 사람들이 자진해산하면서 끝났다. 이날 모금한 51만 1830원은 지속적인 촛불문화제를 위해 쓰여질 것이며 앞으로도 촛불 문화제는 계속될 것이라고 황인철 익산참여자치연대 국장은 밝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익산시민뉴스, 서울방송 유포터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익산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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