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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고라복스> 메인 페이지.

[해외인터뷰] 프랑스판 <오마이뉴스>, <아고라복스>의 대표 르벨리

프랑스민주연합(UDF)의 프랑수아 바이루(56)는 지난달 22일 실시된 2007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에서 비록 탈락하기는 했으나 18.57%의 놀라운 득표율로 돌풍을 일으켰다. 뿐만 아니라 지난 6일 집권 대중운동연합(UMP)의 니콜라 사르코지(52), 사회당(PS)의 세골렌 루아얄(53)이 겨룬 결선 투표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바이루가 얻어낸 680만 표가 당락을 결정하는 주요 변수였던 것이다.

전통 언론보다 빠른 프랑스의 누리꾼들

바이루는 지난 1월까지만 해도 지지도 7% 안팎의 '작은' 후보였다. 프랑스의 언론이 바이루에 집중하기 시작한 것은 한 달여만에 지지도 14%P를 끌어올린 지난 3월 초. 바이루의 급격한 부상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 했다면 그러나 오산이다. 이미 지난해 6월부터 바이루에 주목한 프랑스의 누리꾼들에게 바이루는 이미 '큰' 후보였던 것이다.

허둥지둥 바이루 열풍에 초점을 맞춘 프랑스 전통 언론의 늑장 행보가 누리꾼들에게 호들갑으로 보였던 이유다. 더욱이 프랑스 누리꾼의 심상찮은 움직임을 간파하고 이것을 수치로 보도한 매체가 있었다. 프랑스의 인터넷 신문 <아고라복스>는 지난해 9월 누리꾼을 대상으로 자체 여론조사를 실시해 이미 바이루의 가능성을 예측했다.

당시 전통 언론이 공개한 여론조사에서 바이루의 지지율은 5~6%에 그쳤다. 그러나 <아고라복스>가 제시한 수치는 25~30%에 육박했다. 바이루가 전통 언론의 '편파성'을 지적하며 불만을 터뜨린 시점과 일치한다. <아고라복스>의 여론조사 결과는 정확히 6개월만에 현실로 드러났다.

"정보 습득에 민감한 누리꾼들이 결국 '경향'을 주도한다."

▲ 카를로 르벨리 <아고라복스> 대표.
ⓒ 박영신
<아고라복스>의 대표 카를로 르벨리(38)는 이것이 민첩한 누리꾼의 정보 습득력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아고라복스>는 프랑스판 <오마이뉴스>다. <오마이뉴스>의 경험을 바탕으로 르벨리가 프랑스에 첫 시도한, 시민기자가 만드는 인터넷 신문이기 때문이다.

로마에서 태어나 경제학을 전공한 이탈리아인 르벨리는 1993년 파리에 도착해 1995년까지 2년 동안 프랑스의 여론조사 기관 '이폽(Ifop)'에서 일한 바 있다. 생물학자이자 미래학자로 파리의 라 빌레트 과학 산업 도시의 자문위원인 조엘 드 로네(60)를 만난 것도 1995년의 일로 인터넷이 매개였다.

이듬해인 1996년 르벨리와 로네는 기업 경제연구 회사인 '시비옹(Cybion)'을 설립했다. 시비옹은 고객의 요청에 따라 인터넷을 이용해 경쟁사의 정보를 수집, 분석, 제공하는 회사로 <아고라복스>의 모태가 됐다.

이때부터 르벨리는 인터넷 대화방을 시작으로 각종 블로그까지 프랑스의 인터넷 인구가 놀라운 속도로 증가하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누리꾼들은 타인의 의견을 소화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극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만나게 된 <오마이뉴스>의 사례는 프랑스에서 인터넷 미디어의 가능성을 열어줬다."

<오마이뉴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으나 결정적으로 <아고라복스>의 출범을 다짐하게 된 것은 지난 2004년 12월 발생한 남아시아 지진해일(쓰나미)이었다. 사건 현지에서 날아온 각종 정보의 출처는 일반 시민이었던 것이다. '모든 시민은 기자'라는 <오마이뉴스>의 슬로건이 확인된 순간이었다.

스타 블로거에서 대선 후보까지

<아고라복스>가 프랑스에 첫 선을 보인 것은 프랑스에서 유럽연합(EU) 헌법 찬반투표가 한창이던 지난 2005년 5월의 일이다. 프랑스의 모든 정당을 찬성과 반대로 나눈 유럽헌법에 대해 시민들도 자신의 논리를 알리는데 분주했으며 그 공간적 배경은 물론 인터넷이었다.

그리고 누리꾼들은 열린 대화 공간인 <아고라복스>로 몰려들었다. "매우 프랑스적 현상이라 할 수 있는 블로그의 폭발을 기반으로 전통 언론에 반기를 든 누리꾼들이 인터넷에 집결한 것"이라고 르벨리는 말했다. <아고라복스>가 짧은 시간 안에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다. 누리꾼들은 자연스럽게 시민기자로 둔갑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블로그 문화가 폭발한 드문 나라 중에 하나다. 수다스러운 프랑스인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망이 강하다. 수다 하면 이탈리아인도 이에 못지않지만 프랑스인과 비교해 자신의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는데 표현력이 떨어진다. 프랑스인들은 불평불만주의자인 동시에 자기중심적이다. 자기가 중심이 되기를 바라는 프랑스인의 성향이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과 맞아떨어진 것이다."

시민기자들의 기사는 6~7명의 <아고라복스> 내부 위원을 비롯해 30여 명으로 구성된 편집위원회의 검토를 거쳐 기사로 태어난다. 자원봉사자인 외부 위원들이 기사에 찬반 여부를 밝히고 찬성 의견이 많은 기사는 내부위원 즉 상근기자들이 명예훼손을 비롯한 법적 문제가 없는 지 확인한 다음 정식 기사로 채택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지금까지 법적으로 문제가 된 기사는 단 한 건이었다. 그러나 이 또한 환경단체에서 활동하는 시민기자가 환경법을 위반한 기업을 고발한 사건이었고 '당연히' 불쾌했던 해당 기업은 <아고라복스>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으나 <아고라복스>가 승소했다.

지난 2월까지도 시민기자들은 매달 600여건의 기사를 송고했으며 이 중 70%가 정식 기사로 채택된 반면 30%는 버려졌다. 그러나 지난 6일 끝난 대선 바람을 타고 하루 100여 건의 기사들이 속속 도착했다. 민감한 시기임을 감안해 기사를 채택하는 기준도 엄격해졌다. 정치 성향이 분명한 기사 즉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기사나 선동적인 기사들을 지양하는 것. 그 결과 50%의 기사만이 정식 기사로 독자들을 만나게 됐다.

<아고라복스>는 특별한 정치적 경향이 없다고 한다. 좌, 우파뿐만 아니라 극좌, 극우파까지 포용한다. 이를테면 바이루를 옹호하는 기사와 반대 입장의 기사를 동시에 게재하는 방법으로 균형을 유지한다. 특정 후보의 편에 선 기사 중에도 근거가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으면 기사로 채택됐다. 해당 후보 진영의 인물이 쓴 기사라 해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모두에게 표현의 권리를 주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현재 1만여 명의 시민기자가 활동하고 있는 <아고라복스>가 처음 문을 연 2005년에는 30~40여 블로거가 집중적으로 기사를 썼다. 재능 있고 필력이 우수한 블로거들을 개인적으로 접촉한 것이 유효했다. 블로그를 통해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유럽헌법 반대 운동을 펼쳐 일약 스타가 된 마르세유 마르셀 파뇰 고등학교 교사 에티엔 슈아르가 대표적이다. 슈아르는 프랑스로 하여금 1인 미디어 블로그의 영향력을 일깨운 인물로 지금까지 규칙적으로 <아고라복스>에 기사를 쓰고 있다.

대선 물결을 타고 최근까지 2주 간격으로 1500여 시민기자가 등록된 가운데 대선에 출마한 인물이 <아고라복스>를 전진기지로 활용한 예도 흥미롭다. 이를테면 특정 정당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대선에 도전장을 던진 바 있는 라시드 네카즈는 <아고라복스>의 시민기자로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밝혀왔다. 그러나 대선 출마에 필수조건인 선출직 공무원 500인의 지지서명을 모으지 못한 네카즈는 대권의 꿈을 접어야 했다.

이밖에 <오마이뉴스 인터내셔널>에 기사를 쓰는 프랑스 누리꾼들이 동시에 <아고라복스>에서 역동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현상도 눈여겨 볼 일이다. 실업자로부터 학생, 의사, 기업 대표, 정년 퇴직자까지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아고라복스>의 시민기자는 현재 여성보다 남성이 월등하며 연령대로 보면 18~35세 사이의 청년층이 활발하게 기사를 쓰고 있다.

▲ <아고라복스> 사무실.
ⓒ 박영신

영문판에 이어 이탈리아어판까지

그러나 <오마이뉴스>와 달리 <아고라복스>는 시민기자들의 '정체'에 관심이 없다. 시민기자가 사는 곳, 직업 따위에 관심이 없다. <오마이뉴스>의 경우 예명 기사를 쓰려면 '복잡한'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아고라복스>는 시민기자가 생산해내는 기사에 무게를 두기 때문이다. 시민기자들의 필명 사용을 용납하는 이유다. 자칫 특정단체의 이익을 도모하는 시민기자가 관련 기사를 쓴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민감한 주제를 다루거나 법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보이는 기사를 쓴 시민기자의 경우 신분 확인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있다.

구체적인 예로 지난 3월 초, <아고라복스>는 9·11 테러 음모론을 옹호하는 기사를 내보낸 일이 있다. 이것은 <아고라복스>가 음모론에 동조한다는 혐의와 함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르벨리는 그러나 기사로 채택하기 전 이례적으로 런던에 살고 있는 '문제의' 시민기자에게 연락해 기자의 신분과 기사 작성의 배경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검토한 뒤 기사를 낸 것이라 했다.

"<아고라복스>는 전면적인 표현의 자유를 표방한다. 어떤 소재도 토론에서 제외될 수 없고 금기시 될 수 없다. 9·11 테러의 예처럼 쉬쉬하면서 언급을 회피하는 것이 음모론을 부채질 한다. 숨겨진 부분을 터놓고 말하지 않기 때문에 음모론이 발생하는 것이다. 토론거리가 있으면 마땅히 토론해야 한다. 극우당 국민전선(FN)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당수 장-마리 르펜(77)이 이번 대선에서 10%를 넘는 지지도를 얻게된 것도 무시하고 금기시 했기 때문이다."

수입의 80%를 광고에 의존하는 <아고라복스>는 지난해 여름 프랑스의 스포츠 일간지 <레키프>와 함께 <스포르복스>를 세상에 선 보였고 현재 환경 문제에 집중할 <나튀라복스>는 베타버전으로 운영되고 있다. 시비옹의 몇몇 고객은 자체 인터넷 신문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어 <아고라복스>의 노하우를 전수하거나 도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수익을 창출한다.

이 같은 수익에 힘입어 현재 순수 자원봉사 형태로 활동하는 시민기자들에게 원고료 지급 여부를 고민하기도 했다.
"원고료가 붙게 되면 페이지뷰에 민감한 나머지 선정적인 기사들을 중점 배치하는 역효과가 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생겼다. <아고라복스>가 흑자를 기록하는 순간부터 시민기자들에게 분배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지만 몇 유로 수준의 적은 원고료를 지급하는 것보다는 각종 시민단체에 기부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2년 동안 <아고라복스>를 운영하는 동안 느낀 한계가 있다면 언어의 장벽이었다.
"프랑스인들은 영어로 생각을 표현하는데 익숙치 않다. 애초에 우리는 국제시장을 겨냥하고 사이트를 개통했으나 프랑스 국경을 넘어 몇몇 불어권 국가를 제외하면 반향을 일으키지 못 하는 게 현실이다."

유럽 전체로 나가려면 영국을 공략할 수밖에 없다는 말. 영문판이 베타 버전으로 운영되고 있는 지금 <아고라복스>는 이탈리아어판을 준비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험을 살려 천천히 진행할 계획이나 올해 안에 문을 열 거란다. 그러나 중심은 영국이 될 거라며.

물어봤다. 만약 <오마이뉴스>가 세계로 나간다면 <아고라복스>와 경쟁할 수 있을까?
"<아고라복스>는 아시아가 아닌 유럽을 대변한다. <오마이뉴스>가 세계로 뻗어나갈 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듣기는 했다. 언젠가 어디서든 만나지 않을까. 경쟁자가 있다는 건 자극이 되므로 서로에게 이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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