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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생 연작' 캔버스에 유화 1990년대 195×130cm(120호)
ⓒ 김형순
김훈(83)화백은 박수근, 김환기, 장욱진, 김흥수 등과 함께 한국근현대미술을 연 원로작가로 1950년대 해외로 진출한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다.

'미술관 가는 길'에서는 개관 1주년을 맞아 김훈 회고전을 7월 30일까지 연다. 미술관측은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그를 만났으나 그 명성에 걸맞지 않게 구차한 살림에 놀랐다고 한다. 주로 1970년대와 1990년대 추상 및 구상작품을 구입했고 그 중 40여점을 선보인다.

그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역사의 난관을 딛고 한국 근현대미술의 발전을 위해 누구 못지않게 기여했지만 국내에서는 덜 알려져 있고 오히려 국외에서 더 유명하다. 이번 전을 계기로 그가 제대로 알려지고 평가되었으면 좋겠다.

▲ '탄생 연작' 캔버스에 유화 1990년대 162×130cm(100호) 김훈화백은 사물을 내면적 감정으로 재구성하여 '서정적 추상'이라는 화풍을 한국에 도입했다
ⓒ 김형순
그는 우주만물의 여러 형상을 기하학적으로 재구성하여 한국화단에서 처음으로 '서정적 추상'이라고 불리는 시적이고 환상적 화풍으로 일구어내었다. 사실 서정적 추상(뜨거운 추상)은 1947년경 칸딘스키에서 기원하며 색채와 형태의 구성을 작가의 내면적인 감정의 표출에 전적으로 맡기는 일종의 표현적, 정감적 방법을 일컫는 말이다.

잠시 작가의 이력을 보면, 그는 1924년 중국 무순에서 출생, 40년대 동경일본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1949년 국권을 되찾자 어수선한 시기에도 제1회 대한민국 미술전람회를 열어 한국 모더니즘미술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월남이후 1950년대 '후반기전'과 '현대화백초대전'에서 활동했고, 1958년 한국인 최초 미국뉴욕월드하우스갤러리에 초청을 받기도 했다. 1990년대는 몬테카를로 국제 현대미술대상 등으로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 '영광 연작' 캔버스에 유화 1990년대 146×112cm(80호). 90년대 파리시절의 연작들. 그림 속에 천체의 빛이 찬연하게 빛나는 것 같다
ⓒ 김형순
그는 이렇게 1960년대(1961-1967)는 뉴욕에서, 1970~1980년대(1967-1989)는 서울에서, 1990년대(1989-2000)는 다시 파리에서 활동했다. 2002년에는 예술원에서 우수작가로 선정되었다.

그는 2000년 프랑스에서 귀국, 서울 정릉에서 조용한 여생을 보내려 했으나, 뜻밖에 국내실정에 어둔 그에게 A업체의 계략적 제의에 휘말려 노예문서나 다름없는 계약서에 서명을 했고 많은 작품을 헐값에 넘겨줄 위기에 놓였다. 그 후유증과 최근 알츠하이머형 치매가 겹쳐 말년을 고통스럽게 보내고 있다.

이를 고발한 KBS <추적60분>(지난 6월 13일 방영)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많은 시청자들이 그 A업체를 질타하는 댓글을 온라인에 계속 올리고 있다.

파울 클레에서 보는 것 같은 우주적인 서정성 공존

▲ '목마 탄 소녀' 캔버스에 유화 1970년대 65×54cm(15호)
ⓒ 김형순
그의 작품은 대부분이 추상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말, 여인, 인물, 누드 등에서는 구상에 가까운 그만의 반추상을 그리기도 했다. 그의 대표적 구상인 '목마 탄 소녀'를 보면 그가 얼마나 빼어난 감각과 색채에서 탁월한 재능을 가진 작가인가를 한눈에 읽을 수 있다.

이번 전에 주류를 이루는 '영광과 탄생' 연작에서 사람의 입, 귀, 눈이나, 하늘의 해, 달, 별, 구름, 은하수 등을 연상시키는 기호나 형상이 눈에 뜨인다. 그 모습이 하늘을 향하고 있고 또한 자연 혹은 우주, 이를 창조한 자의 영광을 노래하는 것 같다. 결국 그 빛은 다시 모든 사람들에게 골고루 돌아간다는 이야기인지 모른다.

▲ '탄생 연작' 캔버스에 유화 1990년대 92×73cm(30호). 우주의 탄생과 이를 창조한 자에 대한 찬미자의 모습이 연상된다
ⓒ 김훈
그의 추상은 이렇게 우주의 탄생과 하늘의 영광을 암시하는 초월적인 종교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파울 클레에서 보는 것 같은 신비하고 우주적인 서정성도 공존하기에 그림이 전체적으로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또한 바탕에 입체감을 주는 오톨도톨하게 혹은 얼룩덜룩하게 유화를 깔고 그 위에 여러 색채의 점과 비교적 굵고 간결하고 단순한 모양의 선, 다채로운 원형과 삼각형, 사각형 등을 사용하여 추상만의 독특한 조형미를 만들어왔다.

아래 '영광'에서 보면 그림 한가운데 원형을 뺑 돌면서 번쩍이고 하는 방사선형 같은 선과 점은 서양성화에서 보는 후광효과를 연상시킨다. 그 모양이 삐죽빼죽 생기발랄하게 광채가 번뜩여 유쾌하고 재미있다. 들쑥날쑥한 이런 모양은 김훈 화백의 추상화에 자주 등장하는 코드로 그만의 익살스러움이라고 해도 좋은 것이다.

▲ '영광 연작' 캔버스에 유화 1990년대 92×73cm(30호)
ⓒ 김훈
추상에서 색채는 그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이기에 더 관심이 간다. 그의 색채는 대부분이 파스텔 톤 같이 밝고 안정감 있고 품위 있고 신비하다. 게다가 신령한 분위기까지 유발한다. 그림 속 색채가 마치 사람들 마음에 살며시 들어와 귀엣말로 속삭이는 것 같다.

그의 그림 속에 십자가 등을 연상시키는 기독교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음에서 서양성화에서 흔히 보게 되는 타락이나 죄의식, 종교적 공포나 금기사항 등과 같은 것은 전혀 없어 보인다. 오직 평화, 축복, 행복, 기쁨, 환희, 삶의 열락이 있을 뿐이다. 아마도 그런 어두운 것들은 작가의 내면에 들어갈 틈이 없었던 모양이다.

김훈 화백은 세상의 물정엔 눈이 어두운 건지 아니면 오직 그림에만 순수한 열정을 바친 건지 그것은 잘 몰라도 이번 A업체의 계략과 함정에 빠진 일은 바로 이 작가의 일면을 보여주는 한 예이기도 하다.

누드에 관심을 돌린 그의 작품 세계

▲ '마을' 캔버스에 유화 1990년대 92×73cm(30호)
ⓒ 김훈
'마을'은 김훈 작품 중에서도 가장 한국적 정감이 넘치는 작품이다. 한국인의 영원한 고향인 마을공동체, 그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곳에 가면 사람들의 정이 개울처럼 철철 넘치고, 해와 달과 별과 산과 시냇물이 바로 눈앞에 아롱거리는 곳, 바로 그런 정취를 구상이 아닌 추상으로 그려놓으니 더 깊고 정겨운 맛이 난다.

추상의 묘미는 점과 선, 색채와 형태를 어떻게 유기적으로 조합시키느냐 하는 것인데 '마을'에서 보면 색채는 경쾌하고 화려하고 세련되었는데 형태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간결하고 단순하고 소박하다. 그런데 너무나 멋진 하모니를 이룬다. 이런 두 요소가 자연스럽게 합쳐져 우리 마음에 마치 개울물이 흘러넘치는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프랑스 미술평론가 로제 부이요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 한국인의 다양하고 풍부한 종교적 스펙트럼을 엿볼 수 있다고 놀라워하면서 "최소의 형태와 제한된 색채 등 간결한 화법을 구사한 그의 작품은 오랜 시각적 명상을 통하여 영혼의 신비로운 영역을 접할 수 있게 해 준다"라고 평했다.

▲ '누드' 캔버스에 유화 73×60cm(20호). 아래 '여인과 새' 41×33cm(6호)
ⓒ 김형순
그는 다시 최근 누드로 눈을 돌리는 것 같다. 작가의 여인이나 누드를 보면 여성을 지나치게 이상화한 면도 없지 않지만 그 표정, 그 얼굴 하나하나 그렇게 밝고 차분하고 여성적일 수 없다. 그만큼 작가의 내면은 더 힘들고 외롭고 괴로운지 모른다.

하여간 김훈 화백이 다른 그림은 몰라도 누드화를 가족들에게 물려주겠다는 뜻을 밝힌 걸 보면 이에 애착이 많은 듯 하다. 그에게 여성적인 것이야말로 가장 예술적이면서 종교적인지 모른다. 아니 여인은 그를 구원하는 대상인 것 같다. 하여간 그는 말년에 추상보다 누드에서 작가의 원숙미를 더 빛낸다.

덧붙이는 글 | 전시장: 미술관가는길 http://www.gomuseum.co.kr 02)738-9199  
주   소: 종로구 경운동 63-7 이양원빌딩1층. 3호선 안국역 5번 출구, 5호선 6번 출구

작가소개: 1924년 중국무순출생 1941년 동경 일본미술학교 서양화 전공
수상경력: 1965 매리워싱턴(Marry Washington) 현대미술전 대상수상 
              1992 모나코 국제전 출품  몬테카를로 국제 현대미술대상전
              1993 살롱 도톤(Salon d'Automne)수상


태그:#김훈, #서정적 추상, #한국추상미술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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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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