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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야등대
ⓒ 이재언
바다를 보며 우리는 여러 가지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 중에서도 등대는 많은 의미로 우리의 기억에 자리잡고 있다. 노래 ‘등대지기’는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어두운 밤바다에 우두커니 서서 빛을 내뿜고 있는 등대를 바라보며 우리는 인생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등대지기의 외로움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기도 한다.

나는 지난 12년 동안 전국 섬을 순회하면서 등대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다. 최근에는 4.7톤 ‘등대호’를 타고 여러 섬을 순회하면서 디지털 시대 문명의 혜택을 톡톡히 봤는데, 그 중 하나가 내비게이션이다.

육지에서 내비게이션의 유용성은 이미 많은 사람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바다에서도 마찬가지로 내비게이션은 수심, 암초, 목적지 등 많은 정보를 알려주며 특히 야간 항해와 안개가 끼어 있을 때에는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이제 항해를 하면서 등대를 보게 되면, 예전에 느끼던 감사함보다는 추억의 산물로서 느껴질 때가 더욱 많다.

지난 12월 20일 밤. 대한민국의 오지라고 할 수 있는 섬들을 돌아보며 그 실정을 기사화 한 내 글을 보고 한 방송사에서 섬에 대한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답사를 요청하였다. 섬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들은 많이 있지만 섬 주민들의 생활상에 대한 정보들은 부족한 터라 그 실정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하여 프로그램 제작팀의 사전 답사를 허락했다. 그리고 그들을 섬으로 인도하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섬들을 먼저 볼아 보기로 하였다. 짧은 시간에 많은 섬을 돌아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에 10개의 섬을 먼저 돌아보기로 하고 항해에 나섰다. 서두르긴 했지만 돌아오는 길엔 어느덧 해가 저물었고 바다는 어두움에 휩싸이게 되었다.

작은 배로 밤 항해를 한다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내비게이션 장치를 한 등대호로 밤 항해를 적잖이 해 왔던 터라 그렇게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저녁 6시경 전남 고흥에 있는 나로도를 출발해 나의 거처인 백야도로 향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갑자기 내비게이션이 고장이 난 것이다. 그리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밤바다를 비추어 줄 서치라이트까지 들어오지 않는 게 아닌가. 졸지에 방향과 빛을 잃게 된 것이다. 처음 항해를 하는 방송사 직원들과 동승을 하고 있던 터라 걱정과 함께 두려움까지 밀려오기 시작하였다.

방향과 길을 안내해 주는 내비게이션의 고장은 그간의 항해를 통해 익혀온 바다에 대한 지식과 나침반 그리고 등대를 의지하게 만들었다. 바다에 유무인 등대가 곳곳에 세워져 있다 할지라도 어디에서나 등대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바다의 곳곳에는 양식장과 어장 그물들이 자리하고 있어 배가 길을 잘못 들어서면 큰일이다. 그물과 밧줄 따위가 배의 프로펠러에 감기면 배가 잘 움직이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침몰할 수도 있다. 내비게이션이 있어도 밤 항해에서는 서치라이트를 통해 양식장을 분별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제 기능을 못하니 입에서는 저절로 “하나님, 도와주세요!”하는 기도가 나왔다.

▲ 섬을 향해 달리는 등대호
ⓒ 이재언
하지만 선장이 당황해 해서는 안 되기에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천천히 배를 몰기 시작하였다. 천천히 백야도로 향해 가는데, 고기잡이 선원으로 잔뼈가 굵은 보조선원이 다른 방향을 가리키는 게 아닌가. 그 사람도 바다사람이기에 바다의 길은 잘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내가 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리켰다는 것이다.

우리는 길의 선택을 두고 옥신각신 하였지만 결국 결정은 선장인 내가 해야 하는 것이었다. “하나님 길을 열어 주실 줄 믿습니다!” 마음속으로 가슴이 터져라 외치며 내가 가던 길을 선택하고 배를 계속 몰았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불안과 걱정의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고 어두움과 함께 배를 감싸고 있었다.

그리고 기자의 머릿속에는 11월 15일의 악몽 같은 기억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날은 임자도에서 저녁 5시경에 출발해 위도로 향하였는데 그 거리는 약 2시간 소요될 예정이었다. 처음 출발 할 때에도 파도는 조금 높은 편이었으나 항해를 그만 둘만한 파도는 아니었다고 판단하여 항해를 시도했다.

하지만 어둠이 찾아오고 파도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높아지자, 섬 취재를 위해 함께 동행하던 김태우(섬방송국장, http://www.islandtv.co.kr)국장은 육지로 돌아가기를 권하였다. 나도 그 요구를 받아들이고 근처에 있는 영광 법성포로 키의 방향을 바꾸었다.

육지와 가까워질수록 파도는 높아갔지만 육지의 불빛이 가까이 보일수록 희망이 더 빛나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 불빛이 로렐라이의 전설에 나오는 유혹의 세레나데임을 깨달았을 때는 배가 얕은 모래에 걸린 이후였다.

파도가 높은 가운데 배가 모래 위에 걸렸다는 것은 밀림에서 사람이 늪에 빠졌다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여기서 빠져 나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오늘 같은 날은 밤에 항해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인데….’ 죽음의 그림자가 눈앞에 다가온 것을 느끼면서 후회가 밀려왔지만 체념보다는 이 길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존의 본능이 더 앞서는 것을 느꼈다.

동승하고 있는 김태우 국장은 배가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맴돌고 있는 모습을 보고 프로펠러에 밧줄이 걸렸냐고 물어왔지만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배의 키를 돌리고 있었다. 잠시 후 배는 가까스로 모래 위를 벗어나게 되었고 난 배를 돌려 다시 먼 바다에 위치하고 있는 위도로 향하였다.

그리고 위도에서 만나는 등대의 불빛. 그것은 관속에 갇혀있다 관문을 열고 나오면서 보는 태양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런 경험을 한지 한달 남짓 되었는데, 이번엔 파도보다 더 두려운 어둠의 위험에서 건져줄 빛까지 모두 잃었으니 악몽과 같은 법성포의 기억이 되살아 난 것이다.

▲ 백야도등대
ⓒ 이재언
거북이 항해로 50분 거리를 1시간 반에 걸쳐서 오는데 멀리서 백야도의 등대가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는 게 아닌가. 나는 자신도 모르게 “앗, 등대다!”라고 외쳤다. 이내 불안에 휩싸여 있던 선상의 어두운 그림자는 기쁨으로 바뀌었다. 어두움을 가르면서 묵묵히 반짝이는 등대를 보며 나의 두 눈은 뜨거워지고 있었다.

이번 기회를 통해 다시 한 번 전국의 밤바다에서 배의 길잡이 되어 수고하시는 등대지기 여러분들에게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2007년 새해부터는 등대의 불빛처럼 밝게 빛날 것을 기대하면서 그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바란다.

힘들고 외로운 사람들도 밤바다를 비추는 등대를 보면서 삶의 희망과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재언 기자는 한국섬살리기운동본부(http://www.islandtv.co.kr) 본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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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원 연구원으로 2019년까지 10년간 활동, 2021년 10월 광운대학교 해양섬정보연구소 소장, 무인항공기 드론으로 섬을 촬영중이며 포털사이트 네이버의 재정 후원으로 전국의 유인 도서 총 447개를 세 번 순회 ‘한국의 섬’ 시리즈 13권을 집필했음, 네이버 지식백과에 이 내용이 들어있음, 지금은 '북한의 섬' 책 2권을 집필중

이 기자의 최신기사책 '북한의 섬'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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