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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쓰는 저는 지난 대선에서 '당신의 원칙과 소신'을 환호하며 노무현 당신이 이 나라 대통령이 되는 것이 '시대정신'이라며 많은 이들을 설득하여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조그마한 힘을 보탠 민중의 한 사람입니다.

전에도 몇 번인가 당신께 드리는 편지를 썼습니다. 저는 지금 당신과 당신이 소속한 정당이 추진하는 정책들 중 많은 부분에서 동의하지는 않지만,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것을 지금도 결코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지금의 대통령 노무현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노무현 대통령 후보의 정신과 정책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으로서 수많은 고급 정보와 또 많은 전문적 지식을 갖춘 인사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국가정책을 결정해야 하는 당신과 일개 상식을 가진 소시민의 판단이 같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당신이 한나라당과 대연정을 한다고 했을 때에도 처음에는 비판적인 입장이었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얼마나 많은 고민 끝에 내린 결단일까'라며 이해하려고도 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대통령으로서 당신의 충정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미FTA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참여정부와 함께 했던 이정우 교수, 정태인씨도 한미FTA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대 내지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 뿐만이 아니라 많은 경제학자들, 대다수의 국민들이 이들과 뜻을 같이 하고 있습니다.

물론 대통령으로서 많은 정보와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 신중하게, 아주 신중하게 결정하였으리라 생각은 합니다.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는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에 대통령이 가져야 할 신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테니까요.

또한 일반 국민들은 이들 문제에 대해 문외한일 수도 있습니다. 한 국가를 통치하는 대통령의 입장에서 볼 때 다수 국민들의 견해가 잘못되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수 국민이 반대한다고 해서 그것이 꼭 진리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이 제시하는 길이 옳고 진리에 가깝다면 국민이 싫어하는 정책일지라도 국가와 국민의 미래를 위해 추진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한미FTA 문제는 다른 것 같습니다. 한미FTA 체결로 우리에게 많은 장점이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미국의 경제현상을 모르십니까? 또 그들의 의도를 모르십니까? 시장숭상주의,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그들의 정체성을 모르십니까? 금융이나 서비스 부문에서 국제적 스텐다드가 채택되고 일부 경쟁력 있는 대기업들이 세계적 수준의 기업으로 거듭날 수는 있겠지만, 사회적 약자,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쓰러지고 도산할 것은 일개 국민인 제가 보더라도 불을 보듯 분명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왜 꼭 한미FTA를 참여정부 시절에 해야만 하는 것인지요? 당신을 지지해준 서민 대중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꼭 당신의 재임시절에 관철시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요. 그것을 체결하지 않으면 머지 않은 장래에 국가적 위기가 도래하는 것인지요? 그렇다면 당신께서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호소하십시오.

혹시 '일부 친미 관료들이나 친미 전문가들에게 포위되어 왜곡된 정보에 의해 대통령의 판단력에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아니면 대통령이 되어보니 일반 국민들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무슨 신통한 통찰력이라도 생긴 것인지요.

아무리 어리석은 국민이라도 그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정책을 접어야 하는 것이 정치인이 가져야 할 자세의 알파요 오메가가 아닌가요? 그것이 상식의 정치, 원칙의 정치 아닌가요? 대통령의 정책결정은 고도의 전문적 지식과 정보에 토대를 둔 과학적 정책결정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만일 그렇게 결정된 정책일지라도 주권자 국민이 원하지 않는다면 이룰 수 없는 것이 국민주권주의, 민주주의 시대의 정치원리 아닐런지요.

'감의 정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정치만으로도 국민들은 충분히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국민들이 노무현 대통령께 바라는 것은 '감의 정치'가 아닌, '과학의 정치', '상식의 정치'입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한미FTA 협상은 상대가 있고 대외적으로 국가 신인도 문제도 있는 것이므로 우리 뜻대로 쉽게 접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말처럼 '협상결렬'도 협상 내용의 하나임을 명심하시고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지기를 희망합니다.

한미FTA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꼭 가야만 할 당위라고 한다면 참여정부 이후의 정부에서도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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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 법학과 교수. 전공은 행정법, 지방자치법, 환경법. 주전공은 환경법. (전)한국지방자치법학회 회장, (전)한국공법학회부회장, (전)한국비교공법학회부회장, (전)김해양산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 (전)김해YMCA이사장, 지방분권경남연대상임대표, 생명나눔재단이사, 김해진영시민연대감나무상임대표, 홍조근정훈장수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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