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퇴근길 서울 2호선 지하철역 근처에서 사람을 가득 실은 마을버스가 출발하고 있다. 미처 타지 못한 승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 허환주
'낡았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 지저분하다. 비좁다.' 시민들이 마을버스하면 떠올리는 불만들이다. 마을버스는 일반버스보다 내부가 좁고 지저분한 데다 차체도 오래돼 승객의 불만을 자아낸다. 배차간격이 길어 승객의 발을 동동 구르게 하기도 한다.

산동네부터 강남까지 서울 전 지역에서 운행되는 마을버스는 현재 1286대. 서울시 마을버스 운송사업조합에 따르면,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서울 시민은 하루 120만명으로 추산된다.

"어쩔 수 없으니까 타지, 지옥이에요 지옥"

▲ 마을버스 내부. 좌석 곳곳이 청테이프로 도배돼 있다.
ⓒ 허환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 4월말 서울의 마을버스 업체는 121개사. 등록을 위한 최소기준인 7대를 보유한 곳이 30개사, 8~10대를 보유한 곳이 51개사, 10대 이상 보유한 곳은 40개사다.

마을버스의 배차간격은 최소 5분에서 최대 25분.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김모(홍익여고)씨는 "배차간격이 길어 줄이 길어지는 데다 마을버스 자체가 워낙 좁아 '구겨 타야' 한다"며 "마을버스가 지옥 같다"고 말했다.

이런 생각은 김씨만의 것이 아니었다. 마포구 아현동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만난 대학생 박모씨는 "집이 언덕 위에 있어 마을버스를 타면 편하지만 언덕 곳곳에 있는 방지턱을 지날 때마다 천정에 머리가 부딪힌다"며 불편을 호소했다.

최소형 마을버스의 내부 높이는 한국 남자의 평균 키인 173cm 정도. 남자 승객의 상당수는 등을 구부리고 서 있어야 한다. 출근 시간, 구부정한 회사원들의 모습은 마을버스에서 결코 낯설지 않다. 이뿐 아니라 서울의 한 동네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15인승 승합차 마을버스'도 있다.

테이프로 붙인 손잡이와 의자커버... 보기에도 민망

▲ 승합차 마을버스가 가파른 언덕을 오르고 있다(위). 승합차 마을버스에서 승객들이 내리는 모습.
ⓒ 허환주
낙후된 시설도 문제다. 서울에서 운행 중인 대부분의 마을버스에는 운전자 옆에 조수석이 있지만 거기 앉는 사람은 거의 없다. 카드 인식기 뒤 틈새로 돌아들어가 기어박스를 타고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수석 근처엔 청소도구가 놓여 있는 경우가 많다. 안 그래도 좁은 마을버스에 이런 자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의아한 일이다.

내부 상황은 더 심각하다. 찢어진 의자커버엔 청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떨어진 손잡이를 테이프로 붙인 버스도 있다. 마을버스 시설은 한 마디로 '참고 타야 하는' 수준이다.

이뿐 아니다. 차체가 찌그러지거나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 버스도 있다. 미관이 안 좋다는 수준을 넘어 안전 문제까지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이와 관련, 마포구 아현동에 사는 시민 이모씨는 "언덕에서 운행되는 마을버스도 많은데 노후한 마을버스가 자칫 사고를 내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고 안전 문제를 제기했다.

낡고 비좁아도 등록 기준 통과

적지 않은 마을버스가 불편·낙후·불안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요한 이유는 관련 규정이 허술해서다.

마을버스 운수업은 '허가제'가 아니라 '등록제'다. 등록 기준만 충족하면 관할 구청에 등록할 수 있다. 등록 기준은 '차량 7대 이상, 차량 규모에 맞는 차고 및 사무실 등 부대시설 확보'다. 마을버스가 아무리 낡고 내부가 비좁더라도 등록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다.

사업등록은 구청에서 받지만, 노선은 서울시에서 분배·관리한다. 서울시는 2004년 버스 체계를 개편하면서 '마을버스 총량제'를 도입, 마을버스 차량을 더 늘리지 못하게 했다. 그 후 2년 동안 새로 등록된 마을버스는 한 대도 없다.

또한 마을버스는 관할 구청에서 1년에 각 2번씩, 교통안전공단에서 1년에 1번씩 환경 및 차량 관리 상태를 점검받는다. 하지만 차체에 고장이 난 곳이 있는지만 살필 뿐 차체가 얼마나 낡았는지, 내부가 얼마나 열악한지는 검사하지 않는다.

차량 정비와 관련해서도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내버스 회사들이 자체 정비사를 보유하고 있는 것과 달리, 대부분의 마을버스에는 자체 정비사가 없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는 "마을버스 차량을 외부에 맡겨 정비해야 하는 형편"이라며 "마을버스 회사들의 규모가 영세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용 부담이 부실한 정비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준공영제에 포함되지 못한 마을버스

▲ 열악한 마을버스 실내 모습. 거스름돈도 준비돼 있지 않고(맨 위), 문이 완벽하게 닫히지 않는 버스도 있으며(아래 왼쪽), 훼손된 의자에는 온통 청테이프가 붙어 있다.
ⓒ 허환주
이에 대해 마을버스 회사들은 시내버스와 달리 마을버스가 준공영제에 포함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항변한다. 한마디로 서울시 책임이 크다는 주장이다.

서울 시내버스는 2004년 7월 교통체계가 개편되면서 준공영제로 운영되고 있다. 버스 준공영제는 일부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공영제와 기존 민영제의 중간 형태로, 버스 전체의 운송 수입금을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제도다.

준공영제에 따라 시내버스 업체들은 현재 버스 1대당 하루에 52만원의 표준운송원가를 서울시에서 받고 있다. 운송수입이 52만원 이상인 시내버스든, 그 미만인 시내버스든 일률적으로 52만원씩 지급받는다.

시내버스가 준공영제에 포함되면서 각 버스의 운행 거리 등 비용 산출에 필요한 자료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게 서울시 설명. 서울시 교통국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으로 서울에서 운행되는 시내버스는 7766대(401개 노선).

그러나 마을버스는 시내버스와 상황이 다르다. 마을버스 업체들은 표준운송원가인 52만원을 일괄적으로 지원받는 시내버스와 달리, 서울시가 마을버스에 지급하는 환승손실보조금이 약속한 액수만큼 나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서울시 마을버스 요금 500원은 곧바로 마을버스 업체에 들어가지 않는다. 서울시는 승객이 한 번 환승하고 마을버스를 탔을 때 309원, 두 번 환승하고 마을버스를 탔을 때는 275원을 마을버스 회사에 지급한다. 박오장 서울시 마을버스 운송사업조합 이사장에 따르면, 마을버스 승객의 환승 비율은 85%.

환승요금만 지급할 경우 마을버스 업체들에 손실이 생긴다. 그래서 서울시는 2004년 버스체계 개편 당시 마을버스 1대당 하루 운송수입이 33만원(평균 800명을 태워야 나오는 금액) 미만인 경우 서울시에서 환승손실보조금을 지급하기로 마을버스 업체들과 협약을 맺었다. 이 보조금은 마을버스 1대당 하루에 최소 33만원의 운송수입을 올릴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로, 운송수입이 33만원 이상일 경우엔 지급되지 않는다.

시내버스와 마을버스에 지급하는 금액과 관련, 이맹윤 서울시 버스정책과 마을버스팀장은 "2004년 당시 용역을 맡은 외부연구소에서 버스 1대당 운행률, 인건비, 기름값 등을 감안해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제대로 지급되지 않는 환승손실보조금

그러나 마을버스 회사들은 서울시에서 대당 1일 운송수입 33만원을 맞춰주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박 이사장은 "차량 1286대 중 700대 정도가 적자"라며 "환승손실보조금을 제대로 받는다면 이렇게 열악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버스 회사 중 하루 운송수입이 33만원 이상인 경우는 40곳 정도며, 그 미만인 마을버스 회사는 80여곳.

서울시는 현실적으로 33만원을 맞춰주기 어렵다는 태도다. 이맹윤 서울시 버스정책과 마을버스팀장은 "시에서도 노력하고 있지만 33만원을 맞춰주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한 뒤 "수익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마을버스 업체 모두에 33만원을 보존해주는 것은 무리"라고 지적했다.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업체 쪽 문제를 감안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2004년 협약 당시 서울시는 마을버스 업체에 별다른 조건을 붙이지 않았다. 박오장 이사장은 "승객을 어느 정도 태우고 몇 번 운행해야 지원받을 수 있다는 식의 조건은 없었다"며 "수익성, 운행률 등이 떨어진다고 해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2004년 이 문제를 담당했던 임지윤 서울시 버스정책과 주임도 당시 마을버스 업체들에 특별히 조건을 붙이지는 않았다고 확인해줬다.

아울러 표준운송원가가 1대당 47만원(2004년)에서 52만원(2005년~현재)으로 오른 반면, 마을버스의 몫인 33만원은 같은 기간 동안 바뀌지 않았다는 점도 마을버스 업체들의 불만 사항. 차종채 서울·경기지역 마을버스 노동조합 위원장은 "환승손실보조금을 높이지 않으면 마을버스 요금을 올릴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준공영제, 필요성은 공감하지만 도입 방식 놓고 설왕설래

▲ 서울 ㅇㅇ동에서 운행중인 '승합차 마을버스'. 잦은 문 개폐 때문에 뒷 차체가 찌그러져 있다.
ⓒ 허환주
마을버스 관계자들은 근본적인 대안으로 준공영제를 제시한다. 박오장 이사장은 "마을버스가 준공영제에 포함되면, 노후한 차량을 개선하고 정비 인력을 확보할 수 있는 재정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차 위원장도 "근본 방안은 준공영제"라며 동의했다.

박용훈 대표도 "서울시의 현 교통체계는 브라질 도시인 꾸리찌바의 교통체계를 모방했지만, 꾸리찌바 시 당국이 간선버스, 소형차, 봉고차 등 모든 운송수단을 지원하는 것과 달리 서울시는 그렇지 않다"며 준공영제 도입에 찬성했다.

그러나 박용훈 대표는 "준공영제 도입 전에 복잡한 노선부터 개편해야 한다"고 전제조건을 제시했다. 마을버스 사업이 '돈이 되던' 초창기에 우후죽순격으로 개설된 노선 중 일부가 중복되거나 교차하는 문제를 지적한 것.

박오장 이사장도 "그런 상태에서 차량총량제가 실시되면서, 이용 수요가 늘어나 마을버스 차량을 늘려야 하는 노선에서도 충분히 차량이 늘어나지 못해 시민이 불편을 느끼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현재로선 준공영제 도입이 쉽지 않아 보인다. 서울시와 마을버스 업체가 이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다르다.

서울시도 원칙적으로 준공영제를 반대하지 않는다. 이맹윤 서울시 버스정책과 마을버스 팀장은 "2년 전 버스체계 개편 때 마을버스도 함께 개편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건이 있다. 이 팀장은 "2년 전 대부분의 업체가 주차장 확보 등 준공영제 편입 조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며 "서울시에서 요구하는 조건만 충족하면 언제든지 마을버스도 준공영제로 운영될 수 있다"고 말했다.

마을버스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박 이사장은 "열악한 마을버스 업체가 무슨 수로 돈을 마련해 주차장을 짓겠느냐"며 "서울시 정책은 한마디로 마을버스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교통 혁명'이라 불리며 서울시 버스 정책이 개편된 지 2년. 그러나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마을버스는 지금도 많은 위험 요소를 안고 달리고 있다.

▲ 서울에서 운행 중인 마을버스가 언덕 위 방지턱을 오르고 있다. 뒷범퍼가 심하게 찌그러져 있다.
ⓒ 허환주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