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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을 끌어온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 현대 비자금 150억원 수수의혹은 25일 결국 무죄가 선고됐다. 하지만 박 전 장관은 수사 과정에서 나온 '곁가지'로 인해 법정 구속됐다. 사진은 지난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병문안 온 박 전 장관.
ⓒ 연합뉴스 서명곤

20년 대 3년. 148억원 대 1억원.

대검 중수부가 수사한 박지원-현대비자금 사건은 박씨를 변호한 소동기 변호사 등 변호인측의 '완투승'으로 끝났다. 대한민국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사전에 일찍이 이런 일은 없었다.

지난 4월 열린 박지원 전 문화관광부 장관의 파기환송심 결심공판 때까지도 검찰은 원심에서와 마찬가지로 박 전 장관에게 징역 20년과 추징금 148억5천만원을 구형했다. 그러나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이재환 부장판사)는 25일 선고공판에서 150억원 수수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손길승 SK 회장과 고 박정구 금호 회장으로부터 각각 7000만원과 3000만원을 받은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3년형과 함께 추징금 1억원을 선고했다.

이로써 이번 사건은 중수부 수사의 오점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150억원에 대해 검찰이 구형한 '20년'과 재판부가 선고한 '무죄'는 천양지차이기 때문이다. 검찰은 1억원에 대해 징역 3년형을 이끌어낸 것으로 위안을 삼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몸통'에 해당하는 150억원에 대한 무차별 계좌추적을 하는 과정에서 나온 곁가지이다.

"대한민국 중수부 사전에 이런 엉터리 수사는 없었다"

중수부의 '무리한 기획수사'로 인한 박지원-현대비자금 사건의 '무죄 사유'는 이미 중수부장 출신의 S 변호사와 중수부 출신 현직 J 검사의 '충고'로도 예고된 바 있다.

S 변호사는 원심 판결 직후에 기자에게 "공판기록을 다 봤다"면서 "대한민국 중수부 사전에 이런 엉터리 수사는 없었다"고 말했다. S씨는 또 "증거(물증)는 하나도 없고 인간이 조작 가능한 증거(증언)뿐"이라면서 "이런 엉터리 수사를 가지고 (뇌물수수 혐의에)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S씨는 이어 "검사가 범죄혐의가 있는 자를 '협박'하면 대개 자기가 살려고 거짓말을 하는데 중수부는 이것(거짓말)을 증거라고 내세운 것뿐이고 물적 증거는 하나도 없다"면서 "결국 죄지은 자들이 죄를 면제받기 위해 박지원 전 장관에게 뒤집어씌운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심지어 이 사건을 수사한 당시 중수부의 현직 J 검사는 "이 사건에서 판사가 무죄선고 취지의 판결문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 5가지"를 공언할 정도였다.

C 검사는 "이 사건의 유력한 증거는 박지원에게 CD를 건넸다는 이익치의 진술인데, 이씨는 이미 99년 현대중공업 주가조작사건 때에 구속된 전력이 있고 나중에 대선 때는 정몽준 후보가 시킨 것이라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으나 검찰은 이씨가 거짓말한 것으로 판단해 정 후보를 무혐의 처리했다"면서 "결국 이익치의 진술은 신빙성이 약하기 때문에 판사가 얼마든지 무죄판례 논거를 댈 수 있다"고 공언했다.

C 검사는 우선 "이 사건의 유력한 증거는 박지원에게 CD를 건넸다는 이익치의 진술인데, 이씨의 진술은 신빙성이 약하기 때문에 판사가 얼마든지 무죄판례 논거를 댈 수 있다"면서 이른바 '플리 바기닝'(Plea Bargaining) 의혹을 강력히 암시했다.

C 검사는 특히 "이익치씨는 이 뇌물수수 사건에서 처벌 받을 사람인데도 오히려 검찰수사에서 면죄를 받았다"면서 "그 때문에 범죄가 있는데도 처벌 받지 않은 이씨는 증뢰물 전달자라 하더라도 거짓말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판사가 100% 무죄 사유 판결을 쓸 수 있다"고 공언했다.

계좌추적 오히려 150억원 관련 결백 입증 계기

검찰이 이익치씨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계좌추적을 하지 않고 끝내 기소하지도 않은 것은 피해 당사자들이 직무유기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 등의 혐의로 고발할 수조차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도 박지원씨 사건을 수사했던 N 검사는 오히려 "이익치씨 계좌추적은 왜 합니까"라고 반문했다. N 검사는 또 이익치-김영완 두 사람의 공모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리는 이익치가 김영완과 짜고 배달사고를 냈을 가능성은 다른 정황상 전혀 없다고 본 것이다"고 말해 그 가능성을 부인했다.

CD 150억원 가운데 박지원씨나 가족, 그리고 주변 참모들이 쓴 돈의 흔적이 전혀 없다는 점도 '무리한 기획수사'임을 입증하는 단서이다. 이 사건의 또다른 핵심 증인인 김영완씨가 검찰에 보낸 진술서에 따르면, 박씨는 150억원 가운데 30억원 가량을 가져다 썼고, 그 가운데 최소한 2~3억원은 수표로 건네졌다. 앞서의 중수부장 출신 S씨는 그 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50억원 가운데 30억원을 가져다 썼으면 박지원 본인이나 주변 인사들로부터 돈을 쓴 흔적이 나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증거다. 그런데 그런 흔적(증거)이 전혀 없다. 참모들과 사돈네 8촌까지 계좌 추적했는데 아무것도 안나왔다. 그래서 엉터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검찰은 150억원의 흔적(증거)를 찾기 위해 광범위하게 장기간 계좌추적을 벌였다. 그렇게 계좌추적을 해서 추가로 기소한 것이 손길승 전 SK 회장으로부터 받은 7000만원과 박정구 전 금호 회장으로부터 받은 3000만원이다. 박씨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수수사실을 인정했다.

그런데 검찰은 3000만원 쓴 것도 계좌추적으로 잡아내면서 그 100배인 30억원을 쓴 흔적을 찾지 못한 것이다. 결국 검찰은 역설적이게도 계좌추적을 통해 오히려 150억원 수수혐의에 대한 박씨의 결백을 입증해준 셈이다.

중수부의 '창' 막아낸 끈질긴 탐사 추적 변호

150억원 부분과 관련해 변호인측이 검찰에 '완투승'을 거둔 것은 중수부가 수사를 잘못한 측면도 있지만 변호인측이 방어를 잘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변호인측 '방패'가 '세상에 뚫지 못할 방패가 없다'는 중수부의 모순덩어리 '창'보다 더 강했다는 얘기다.

김주원 변호사는 처음부터 이 사건을 '제로섬 게임'으로 규정해 이익치씨 발언의 모순과 허점을 파고들었다. 특히 소동기 변호사는 김영완씨의 국내외 행적에 대한 탐사추적 변호와 함께 검찰 논리의 허점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변론으로 재판부의 무죄 심증을 강화했다.

물론 박지원씨도 법정에서 일관된 진술을 해서 재판부에 신뢰감을 준 것으로 평가받는다. 재판부도 변호인들과 피고인의 일관된 논지와 진술을 사실상 그대로 수용했다.

그러나 재판부의 보석 취소 결정으로 '완봉승'의 기회를 놓치고 거둔 '완투승'마저 빛이 바랜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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