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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올해도 어김없이 어린이날이 다가왔습니다. 두 아들과 뭘하며 지낼까 1주일 넘게 고민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어린이날은 코앞으로 다가와 버렸습니다. 그냥 사람이 붐비지 않고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나들이나 가야겠습니다. 한해 두해 지나갈수록 아이들의 몸과 머리는 커가는데 부모랍시고 제대로 해준 것도 없는 것 같아서 미안한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요즘 주변에 어린이날을 생각할 여유도 없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가깝게는 젊은 아내가 투병중인 제 직장동료도 그렇습니다. 그는 벌써 한 달 넘게 종합병원 병실에서 아내를 돌보고 있습니다. 그는 아픈 아내 보기가 미안해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하루종일 병 간호를 하느라 몸도 마음도 갈수록 지쳐가고 있습니다.

"왜 내게 이런 일이 닥쳤는지 모르겠어. 아내가 완쾌만 된다면 1년, 아니 10년이라도 업고 다니겠어."

부부에게는 7살짜리 딸이 하나 있습니다. 철모르는 딸은 오늘도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할머니를 보채고 있겠지요. 유난히 엄마를 좋아하던 아이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어서, 가정의 불화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비정규직 노동자로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고, 사업실패로 생활고로 힘들어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두 아들과 어린이날을 어떻게 보낼까 하는 저의 고민은 사치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비정규직 양산, 한미 자유무역 협정, 평택 미군기지 강행, 현대자동차 비자금……. 세상에는 어두운 소식만 자꾸 나오고 있습니다. 모두가 행복하게 5월의 따뜻한 봄날을 즐길 수는 없을까요. 신명나게 일하는 세상은 우리에게 아직도 먼 얘기일까요.

문득 오래전 학교 다닐 때 자주 접했던 박노해의 시가 생각납니다. <손무덤>이라는 시입니다. 모두가 즐거워야할 가정의 달에 이 시를 떠올리자니 착잡합니다.


손무덤

-박노해

올 어린이날만은
안사람과 아들놈 손목 잡고
어린이 대공원에라도 가야겠다며
은하수를 빨며 웃던 정형의
손목이 날아갔다

작업복을 입었다고
사장님 그라나다 승용차도
공장장님 로얄살롱도
부장님 스텔라도 태워주지 않아
한참 피를 흘린 후에
타이탄 짐칸에 앉아 병원을 갔다

기계 사이에 끼여 아직 팔딱거리는 손을
기름먹은 장갑 속에서 꺼내어
36년 한많은 노동자의 손을 보며 말을 잊는다
비닐봉지에 싼 손을 품에 넣고
봉천동 산동네 정형 집을 찾아
서글한 눈매의 그의 아내와 초롱한 아들놈을 보며
차마 손만은 꺼내주질 못하였다
환한 대낮에 산동네 구멍가게 주저앉아 쇠주병을 비우고
정형이 부탁한 산재관계 책을 찾아
종로의 크다는 책방을 둘러봐도
엠병할, 산데미 같은 책들 중에
노동자가 읽을 책은 두눈 까뒤집어도 없고

화창한 봄날 오후의 종로거리엔
세련된 남녀들의 화사한 봄빛으로 흘러가고
영화에서 본 미국상가처럼
외국상표 찍힌 왼갖 좋은 것들이 휘황하여
작업화를 신은 내가
마치 탈출한 죄수처럼 쫄드만
고층 사우나빌딩 앞엔 자가용이 즐비하고
고급 요정 살롱 앞에도 승용차가 가득하고
거대한 백화점이 넘쳐흐르고
프로야구장엔 함성이 일고
노동자들이 칼처럼 곤두세워 좆빠져라 일할 시간에
느긋하게 즐기는 년놈들이 왜 이리 많은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선진조국의 종로거리엔
나는 ET가 되어
얼마간 미친놈처럼 헤매이다
일당 4,800원짜리 노동자로 돌아와
연장노동 도장을 찍는다

내 품속의 정형 손은
싸늘히 식어 푸르뎅뎅하고
우리는 손을 소주에 씻어들고
양지바른 공장 담벼락 밑에 묻는다
노동자의 피땀 위에서
번영의 조국을 향락하는 누런 착취의 손들을
일 안하고 놀고 먹는 하얀 손들을
묻는다
프레스로 싹둑싹둑 짓짤라
원한의 눈물로 묻는다
일하는 손들이
기쁨의 손짓으로 살아날 때까지
묻고 또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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