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낙태> <백혈병> <이혼> <인간은 누구나 장애인이다> <장기이식>. 여기에 나열한 유쾌하지 않은 제목들은 모두 노래곡명이다. 누가 이런 노래를 불렀으며 또한 어떤 의도로 작사 작곡을 했는지 좀 의문스럽지 않을 수 없다.

주인공들은 바로 작사 작곡가 고윤석(시인·39)과 '웹가수' 서정희(27)이다. 내가 서정희를 처음 알게 된 건 인터넷에서 그의 노래 <백혈병>을 우연히 듣고부터다. 지난 2000년 8월, 희귀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사는 한 친구를 채팅으로 알게 됐는데 그 친구가 이 노래를 파일로 보내줬다. 감성을 울리는 목소리와 멜로디, 애절한 그러나 범상치 않은 가사, 수백 번을 반복해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노래. 이선희 목소리도 닮고 리아같은 가창력을 가진 그녀. 먼저 가사와 두 곡의 노래를 들어보자.

낙태 : 작사 작곡 고윤석

잔인한 엄말 만났다 말하면 심하겠지만 / 아름다운 세상구경 나도 해보고 싶어 / 세상에 어느 영혼이 소중하지 않은 게 어딨어 / 날 버린 이유 있다 하여도 나는 살고 싶은 걸 / 너무 무서운 것들이 자꾸만 나를 죽이려 하고 / 나는 살고 싶은 맘에 몸부림 쳐보지만 / 내 영혼 너무나 작아 그런지 / 날 못 느끼는지 / 왜 모두 무서운 그런 일들을 막지 않는 거야 / 비록 난 영혼이 너무 작아서 말을 못하지만 /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순 있어 / 제발 날 지켜 줘 / 엄마가 날 버릴 만큼 아무리 힘들다 해도 다시 한번 생각해봐 진정 옳은 일인지 세상에 어느 영혼이 소중하지 않은 게 어딨어 /

백혈병 : 작사작곡 고윤석

나의 생명을 네게 나눠줄 순 없을까 / 창백해지는 널 볼 수 없어 / 내가 너의 두 손 꼭 잡아줄게 제발 날 위해 힘을 내 / 거짓이라도 좋아 / 너는 살 수 있다고 / 내게 말해줄 수는 없겠니 / 비록 헛된 희망일지 몰라도 / 제발 포기는 하지마 / 사랑한단 말 미처 못했는데 / 넌 내 곁을 떠나고 / 함께 보자던 하얀 목련꽃도 / 너를 닮아 너무 이쁜데 / 사랑하는 내 사랑아 / 내 지금은 비록 너를 보내지만 / 이걸 기억해 내 마음 속에/넌 화사한 꽃으로 피는 걸 /


▲ 서정희 노래 <백혈병>에서 백혈병에 걸린 가사속 주인공을 목련을 닮아 예쁘다고 표현했다. 역시 고윤석 시인의 시적 표현이 잘 드러나있다
ⓒ 윤태
시한부 인생 친구는 결국 <백혈병>이라는 노래를 선물로 주고 되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 얼굴도 목소리도 모르는, 다만 스스로를 '송이'라고 칭했던 그 친구. 서정희의 노래를 들으면 그 친구가 생각나고, 그 친구를 생각하면 서정희의 노래가 떠오르는 즉 슬픔과 추억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는 게 바로 서정희의 <백혈병>이었다.

그 후 인터넷에서 서정희의 다른 노래를 알게 됐고 목소리와 멜로디 그리고 그 가사에 대한 놀라움은 계속됐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자료는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없었다. 개그맨 아내이자 모델(방송인)인 서정희만 나올 뿐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작사 작곡가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노래할 때가 가장 행복했고 또 가슴아팠다"

그러다가 며칠 전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 서정희의 미니홈피를 어렵게 알게 됐다. 미니홈피를 통해 여러 차례에 걸쳐 인터뷰 및 취재요청을 했지만 그녀는 정중하게 거절하며 감사를 표했다. 자신이 부른 노래로 기사를 쓰는 건 좋은 일이지만 인터뷰는 응할 수 없다는 것이다. 노래와 인연을 끊은 지금 노래 불렀을 때가 가장 큰 행복했고 동시에 가슴 아팠던 때이며 지금은 아무 미련도, 후회도 없다고 메시지를 통해 밝힌 그녀.

시한부 인생 친구 이야기를 장문으로 써 보내고서야 긍정적인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은 단지 노래만 불렀을 뿐 노래에 관한 모든 사항은 작사 작곡가이자 음반 기획자인 고윤석 시인과 인터뷰를 하는 게 맞다며 그의 연락처를 알려줬다.

그가 자신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서정희 자신의 신상까지 고윤석 시인에게 일임하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받았다. 인천 월미도에서 찻집을 하며 라이브로 노래 부르는 등 여전히 음악을 사랑하는 고윤석 시인을 통해 이번 취재가 이루어졌다.

서정희의 노래 인생... 12살 때 이승철 콘서트서 노래 불러

▲ 웹가수 서정희
ⓒ 영도뮤직
서정희는 대여섯 살 때부터 노래를 불렀다. 음악을 좋아하고 관광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 덕에 단체여행을 자주 따라갔는데 어른들이 보는 앞에서 노래를 곧잘 불렀다. 12살 때 콘서트 공연 기획을 하는 어머니 친구 덕분에 팬이던 이승철 콘서트를 관람할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인명사고가 나고 이승철이 팬들이 입원해 있는 병원에 있는 동안 콘서트는 지연되고 잠시 관중들을 위한 무대가 열렸는데 이때 서정희는 3천명 관중 앞에서 12살의 나이로 노래를 불렀고 '앵콜'에 힘입어 네 곡의 노래를 더 불렀다. 이때 '가수의 맛'을 어렴풋이 알았다.

중학교 1학년 때는 권인하 콘서트에 참석해 노래를 불렀다가 게스트로 나온 가수 이승철의 눈에 띄어 커피숍에서 마주앉는 영광과 함께 인연을 맺게 됐다. 그러나 음악세계의 어려움을 알고 있던 아버지는 이 길을 반대했다.

중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서정희는 큰 충격에 빠졌고 노래로 그 슬픔을 달랬다. 가수가 될 생각으로 다른 직업을 생각지 않았던 서정희는 기획사를 찾아다녔지만 노래를 잘 불러도 돈이 없으면 가수가 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IMF가 터지고 아버지 회사에 나가 일하면서 틈만 나면 백화점 앞이나 길거리 자선 공연장에 가 자청해 노래를 부르곤 했다. 가수가 되고 싶은 욕망을 그렇게나마 표출해야만 했다.

노래 부르기도 전에 "나가라" 무시 당하기도

그러다가 청소년 가요제에 참가 신청했고 예선 날 노래를 부르고 나오다가 고윤석을 만나 명함을 받았다. 서정희는 "저번 오디션 때처럼 또 돈을 요구하겠지"라고 생각하며 연락을 안했지만 고윤석이 먼저 연락을 해왔다. 그녀는 청소년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 후 서정희는 고윤석 밑에서 노래를 배웠다. 서정희와 함께 5~6명의 가수지망생이 있었지만 견디지 못하고 모두 중도 포기했다. 그러나 고윤석의 작사에 대한 열정과 노래에 대한 서정희의 열정은 그들을 더욱 끈끈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고윤석이 작사 작곡한 노래로 다섯 곡을 녹음한 후 기획사, 음반사를 찾아가 테이프를 돌렸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꾸미는 것을 워낙 싫어하는 서정희, 게다가 키는 150cm다보니 외모에 먼저 실망해 노래를 듣기도 전에 "나가라"하는 곳도 있었다.

"가수를 바꾸고 노래를 그대로 가져오라. 그러면 음반 제작하겠다"는 기획사측와 고윤석과의 대화 내용을 엿들으며 서정희는 좌절감에 빠졌다. 스스로 좌절하지 않아도 주변에서 외모만 보고 "가수 안 될 게 뻔한데 왜 그렇게 발버둥 치냐"는 냉소적인 답을 들어야 했다. 한번은 계약을 할 뻔 했는데 알고 보니 사기 집단임을 알고 계약 전날 취소하기도 했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서정희의 재능을 알고 있던 고윤석은 그녀를 버리지 않았다.

고윤석은 적금 깨고 아내한테 용돈을 타서 1999년 서정희 1집 앨범 < what is life? >를 냈다. 서정희는 소원을 이뤘고 무척 행복했으며 인생에 있어 고윤석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 CD로 음반이 나오긴 했지만 대중한테는 잘 알려지지 않고 주로 인터넷에서 음악이 돌았다. 공중파 방송을 타기에는 그 경제적인 벽이 너무 높고 두꺼웠기 때문이다.

결국 2집, 3집 곡까지 대략 뽑아놨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음반을 내지 못했다. 그 음반을 만드는 데 총 2천만원의 비용이 들었지만 수익은 올리지 못했다. 현재 둘 다 음악 활동은 접은 채 고윤석은 노래가 있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고 서정희도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 음반을 내는데도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들지만, 음반을 만들어도 뜨기까지 보통 힘이 드는게 아니다. 돈이 있어야 방송 통해 전국으로 알리고...결국 노래 실력보다는 음반 시장도 경제의 논리에 지배를 받는 실정이다.
ⓒ 윤태

"외모보다는 노래 실력으로 인정해줬으면..."
[인터뷰] 서정희 노래 작사작곡한 고윤석 시인

- 이러한 노래들(사회문제)을 작사 작곡하게 된 특별한 이유나 동기 있나.
"그동안의 노래들은 사회문제를 가사화하는데 한글의 특성상 음반, 방송 심의 등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요즘은 힙합의 랩으로 많이 표현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한정된 멜로디에 순화되고 절제된 표현 속에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기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작곡가들이 그런 것들에 많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는 외국과는 달리 전문 작사가의 위치는 작곡가의 의견에 좌지우지되는 상황이다. 음반을 제작함에 있어 일단 노래가사는 작곡가를 설득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러 3년 동안 전문 작곡 공부를 했지만 나처럼 이름 없는 작사가나, 시인에게 작사를 의뢰하지 않을 뿐더러 음악하고는 전혀 다른 삶(교사, 장사 등)을 살아왔기에 그쪽으로는 '연줄'도 없었다. 게다가 실험적인 그런 가사를 노래에 입히기에는 생소했기에 두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다루어야 하는 사회적 문제라고 생각했다."

- 현재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노래가사를 쓰기 위한 한 방편으로 시를 쓰게 됐다. 당시 어린 마음에 시를 쓰면 나중에라도 노래가사를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늦은 사춘기의 방황은 노래의 감미로운 선율과 가사에 많은 마음의 안식과 위안을 받았기에 나도 나중에 누군가에게 조그마한 위안이 돼야겠다는 철없는 생각으로 음악을 시작하게 됐다. 그래서 내 시도 노래가사와 비슷한 그런 운율을 가진 게 특징이다."

-주로 인터넷(웹)에서 노래가 많이 알려졌는데, 일반 대중에게 크게 알려지지 못한 점에 대해 아쉬움은 없나.
"많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있었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나왔듯이 음반이라는 것은 경제논리에 의해 결정되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요즘은 외모와 상관없이 음악성이 뛰어난 가수들도 인기를 끌기도 하지만 아직은 외모의 중요성이 더 크다. 설령 외모가 안 되는 가수라도 여유 있는 기획사에서 수익성을 보고 기획하기도 하지만 신생기획사나 자금의 여유 없는 기획사의 경우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모험이기 때문이다. 서정희씨와 나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거나 혹은 무모하거나 또는 모험을 감수할 수 있는 기획사를 만났더라면 어떻게 풀려나갈지 모를 일이다."

- 요즘 사회는 윤리, 도덕이 땅에 떨어진 시대라고 흔히 말한다. 그만큼 입에 담지 못할 험악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에 일침을 가하는 가사(내용)로 노래를 만들 계획 없나.
"서정희 2집 앨범에 실릴 예정이었던 곡이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장애인이다> <장기이식 >등의 노래를 준비해놨는데 경제적인 여건상 앨범을 내지 못하고 인터넷에서만 유통됐다. 유명한 가수의 경우 타이틀곡은 작사․작곡료를 제외한 순수 녹음비와 세션비(기타, 드럼, 악기 녹음)의 경우 최하 100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물론 더 많은 경비를 들이는 경우가 태반이다. 우리한테는 감히 상상이 안 되는 금액이다. 아쉽지만 그렇게 접어야했다. 용돈을 조금씩 모아서 2집 노래 몇 곡을 녹음하곤 했는데 지금은 이마저 어려운 형편이다.

기회와 여건만 된다면 다시 서정희와 함께 독특한 노래를 만들고 싶다. 하지만 역시 음반 장벽은 높기만 하다. 어렵게 음반을 낸다 해도 방송에서 20회 이상 노래가 나가야 음반회사에서도 음반을 푸는데 신인 노래 방송타기가 쉽지 않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결국 돈이 있어야 이것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또한 외모 때문에도 애로사항이 많다. 외모와 돈이 아닌 오로지 노래 실력으로 승부를 걸려고 하니 사실 막막하다."

- 요즘 서정희씨의 근황은 어떤가.
"내가 보기엔 노래 잘하고 정말 끼 있는 친구다. 인천에서 개최한 청소년 가요제에서 처음 만났고 150cm의 작은키 때문에 처음엔 중학생인 줄 알았다. 만약 중학생이었다면 대박이 났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때 생각하면 슬그머니 웃음도 난다. 그가 노래를 그만둔 것 역시 경제논리에 지배되는 현실의 벽을 뼈저리게 체험했기 때문이다. 1집 활동 때에도 때 마침 뮤직비디오를 공중파에서 틀어주겠다고까지 했는데 우리에겐 그런 경제적인 능력이 없었다. 방송 타는 것도 다 돈이 있어야 했으니까. 지금은 여행사에서 근무하면서 미니홈피를 통해 팬들과 소식을 나누는 정도이다. 음악활동은 일체 하지 않고 있다."

-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지금도 가끔 내가 만든 노래들을 듣곤 한다. 음악을 하면서 힘들었던 기억들 때문일 수도 있지만 음악을 크게 듣다 보면 실제로 내가 그 노래 가사 속의 상황이 된 것 같아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날 때가 있다. 그 당시에 <이혼>이라는 곡도 철저하게 아이(서정희)의 입장에서 쓴 것이고 이혼한 내 친한 형님의 딸 입장에서 쓴 것이다. 물론 나 또한 아이를 키우고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 내 노래가사로 나 스스로 위로받고, 다짐하고, 삶에 조심하고 하심(下心)하게 되니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선물인 셈이다." / 윤태



덧붙이는 글 | [블로그] 서정희씨의 노래 <백혈병>을 전해주었던 시한부 친구의 사연


태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3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