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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르키즈스탄의 수도 비쉬켁의 모습
ⓒ 김준희
키르키즈스탄의 수도 비쉬켁은 작은 도시다. 키르키즈스탄이라는 나라의 전체 인구가 500만 명 정도이고 그 수도인 비쉬켁의 인구는 대략 60만 명이라고 한다. 키르키즈스탄의 면적은 한반도 전체 면적보다 조금 작은 편인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넓이를 가진 땅덩이에 인구는 500만 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키르키즈스탄은 산악국가다. 우리나라에도 산이 많지만 키르키즈스탄하고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키르키즈스탄 국토의 80%가 해발 1500m 이상이고 그 중 40%가 3000m 이상이라고 하니, 이건 산이 많은 나라가 아니라 나라 자체가 하나의 산맥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키르키즈스탄을 가리켜 '중앙아시아의 스위스'라고 부른다. 산악국가이면서 자연경관이 빼어나 이런 명칭이 생겼을 것이다.

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의 국경을 넘는 것은 의외로 간단했다. 혹시라도 거주등록이나 다른 문제를 트집 잡지 않을까 내심 긴장했지만 국경 관리인은 여권과 출입국 카드를 한번 훑어보더니 출국도장을 찍어주었다.

알마티에서 비쉬켁으로 오는 길은 넓은 초원과 완만한 경사의 산이 조화를 이룬 모습이다. 나는 비쉬켁으로 오면서부터 키르키즈스탄에 매력을 느꼈다. 중앙아시아가 가지고 있는 골치아픈 실크로드의 역사나 이슬람 유적과는 관계없이, 그냥 자연풍광을 여행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키르키즈스탄이 딱일 것이다.

비쉬켁에 도착해 시내를 헤메다가 중심가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작은 호텔을 찾았다. VIP 호텔이라는, 작지만 깨끗한 호텔에서 이틀을 묵기로 했다. 가격은 하루에 1200솜. 솜은 키르키즈스탄의 화폐단위인데 ×25하면 대충 우리 돈으로 계산할 수 있다. 나라를 옮겨다닐수록 점점 더 환율계산하기 어려워지는 느낌이다.

거창한 타쉬켄트, 복잡한 알마티와는 달리 비쉬켁은 작고 조용하다. 왕복 8차선 도로도 별로 없고 알마티에서처럼 빵빵거리는 차도 없는 곳이다.

이런 비쉬켁의 중심가는 '츄이' 거리다. 츄이거리를 산책하듯 걷다보면 하루만에 비쉬켁의 중심부를 대강 둘러볼수 있다. 대통령 궁과 마나스 동상과 국기게양대와 백화점 등이 이 거리를 중심으로 모여있다. 난 지도를 들여다보며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거리에는 많은 학생들이 보였다. 특히 마나스 동상 앞의 거리에는 오전부터 많은 학생들이 책을 옆구리에 끼고 무리지어 있었다.

그리고 많은 노점상이 있다. 개비담배와 사탕을 놓고 파는 아주머니, 체중계를 놓고 한 번 이용할 때마다 1솜씩 받는 아주머니, 차가운 청량음료 한잔에 3솜씩 파는 상점, 바나나 한송이에 10솜을 받는 과일 상점 등 많은 노점이 있고 사진사들도 많이 있다.

어떻게 한국에 갈까? 키르키즈스탄은 여행의 마지막 나라이니까 이제 귀국준비를 해야한다. 비쉬켁에서 한국으로의 직항은 없다. 그렇다면 다시 카자흐스탄으로 가서 알마티 직항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중국을 거쳐야 한다. 카자흐스탄에 다시 가고싶지는 않다. 그래서 난 중국으로 들어가 베이징을 거쳐 칭다오로 이동, 칭다오에서 배를 타고 귀국하기로 했다.

▲ 국기게양대(좌측)와 자유의 여신상
ⓒ 김준희
▲ 자유의 여신상
ⓒ 김준희
이렇게 마음을 정한 후에 시내를 둘러보았다. 국기 게양대 옆으로 자유의 여신상이 서 있다. 키르키즈스탄이 구소련으로부터 독립한 것은 1991년, 구소련 시절에는 이 광장에 레닌의 동상이 있었다고 한다. 독립을 하면서 레닌의 동상은 박물관으로 들어가고 대신에 이 여신상이 지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옆에 있는 국기게양대에는 붉은 키르키즈스탄의 국기가 있고 두 명의 키르키즈스탄 군인이 부동자세로 서 있다.

조금 더 걸어가면 마나스 동상이 나온다. '마나스'란 인물은 '마나스 서사시'로 유명한 전설속의 인물이다. 예니세이 강 부근에 흩어져 살던 키르키즈 인들을 규합, 위구르 족과 싸우면서 현재의 영토에 정착할때까지 키르키즈인들을 이끌던 인물이다.

마나스와 그의 아들, 손자와 관련된 많은 이야기들을 '마나스 서사시'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아미르 티무르를 떠받들 듯 키르키즈스탄에서는 마나스를 자기나라 영웅으로 만들고 있다. 마나스 서사시는 키르키즈스탄 초등학교 교재에서도 취급될 정도라고 한다.

▲ 마나스(가운데)와 그 부하의 동상
ⓒ 김준희
▲ 마나스 동상
ⓒ 김준희
백화점까지 둘러본 후에 시내에 있는 한 여행사로 향했다. 오다가 본 몇개의 여행사 중에서 가장 그럴 듯해 보이는 '키르키즈여행'에 들어가자 영어를 잘하는 한 직원이 나를 맞아주었다. 이 곳을 통해 중국비자를 받고 항공권을 예약해야 한다. 중국비자를 신청하기 위해서 카드로 결제를 하고 여권을 맡겼다. 중국비자를 받는데는 일주일이 걸린다.

"여권없이 키르키즈스탄 여행할수 있어요?"
"어디 여행할 건데요?"
"탈라스하고 이식쿨 호수요"

여행사의 여직원은 많은 비자가 붙어있는 내 여권을 한장한장 넘겨보았다.

"탈라스는 갈때 카자흐스탄 국경을 넘어야 하니까 여권이 없으면 곤란해요. 국경에서 여권 검사를 하거든요"
"그럼 이식쿨 호수는요?"
"여권 복사해 가면 이식쿨 호수는 아무 문제 없어요"

어찌되었건 이제부터 일주일 간은 여권없이 복사본 만으로 여행하게 생겼다. 별문제야 없겠지만 그래도 좀 찜찜하기는 하다. 여기서 북경으로 가는 직항은 없단다. 비쉬켁-우루무치-북경 항공편이 일주일에 두번, 수요일 금요일에 있는데 세금 포함한 가격이 328 달러라고 한다. 예상보다 싼 가격이다. 일정을 좀 더 잡고 예약하기로 하고 난 다시 거리로 나왔다.

탈라스에 가는 것이 문제다. 카자흐스탄 국경을 통과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탈라스에는 꼭 가야만 한다. 좀 쉬운 방법이 없을까? 이 생각을 하면서 거리를 걷던 나에게 이번에도 행운이 찾아왔다.

▲ 비쉬켁의 중심가 츄이거리
ⓒ 김준희
"여행객이야?"

옆을 보니까 둥글둥글한 인상의 현지인이 나와 나란히 걸으며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응"
"어디에서 왔어?"
"한국에서"
"널 어디선가 본것 같아서"
"날 봤다고? 난 어제 여기에 도착했는데"
"비슷한 사람이랑 착각했나봐"

선한 인상의 이 사람에게는 웬지 경계심이 느껴지지 않는다. 내가 물었다.

"비쉬켁에 살아?"
"아니. 탈라스에 살고 있어"

순간적으로 잘못들은 것이 아닌가 느껴졌다.

"탈라스? 탈라스에 산다고?"
"응. 왜?"
"아니 그냥. 탈라스에 가고 싶거든"
"내가 내일 오전에 탈라스로 돌아갈건데. 괜찮으면 나랑 같이 가자"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좋은 행운이다. 내가 다시 물었다.

"비쉬켁에는 일 때문에 온거야?"
"응. 일 때문에 며칠 출장온거야"
"여기서 탈라스까지 가려면 몇시간이나 걸려?"
"한 4-5시간 정도?"
"카자흐스탄 국경을 통과한다면서?"
"아니 꼭 그렇지도 않아. 그냥 키르키즈스탄 영토만 거쳐서 갈수도 있어"

그는 나에게 자기의 신분증을 보여주었다. 유럽과 연관된 정보기관에서 일을 하고 있는 그는 28살의 '에르킨'이라는 이름의 친구다. 러시아어와 키르키즈어는 물론이고 영어와 독일어까지 구사한다는 에르킨은 나와 함께 길을 걸으면서 얘기했다.

내가 지금 묵고 있는 숙소가 비싸다고 하자 그는 싼 숙소만 고르지말고 안전한 곳을 찾으라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밤에는 위험하니까 돌아다니지 말고 안전한 숙소에만 있으라면서 나에게 자신의 휴대폰 번호를 알려주었다. 난 에르킨과 동행하기로 했다. 이런 기회는 다시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2005년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몽골-러시아(바이칼)-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키즈스탄을 여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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