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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0일 <오마이뉴스>구영식 기사가 쓴 <내년 1~2월에 내 진로 밝히겠다>라는 기사의 댓글에 달린 이춘풍님이 쓴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글귀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가끔 노 대통령의 낭만적인 정치가 저 같은 소시민에게 아쉬울 때가 많았습니다.

대통령이 이미 밝힌 대로 후보가 되고 난 뒤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 시계를 보여 주면서 동서통합을 이야기 한 뒤 지지도가 얼마나 떨어졌습니까? 또 최근 대연정을 말씀하시고 난 뒤도 그랬습니다.

민주 대통합이나 국민 화합을 위한 대연정은 명분이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명분 또한 상실한 것이라 여깁니다. 개혁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탄생한 정권이며, 또 그 개혁을 실현하기 위해 민주당과 분당을 하였는데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통합을 들먹인다는 것은 명분마저 상실한 것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리마저 얻지 못하였기에 많은 것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송양지인’이라는 고사를 설명하고, 명분과 실리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옳은지 우리 아이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아래는 아이들의 주장글입니다.


[명분] 눈앞의 이익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이 중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가 위험한 대량살상 무기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미국은 이런 증명되지도 않고 확실치도 않은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공했다. 부시는 이라크를 공격한 것은 해방 전쟁이라며 해명했지만 이것은 틀림없는 침략 행위였다. 미국은 이라크의 많은 석유를 얻었지만 다른 여러 나라의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미국은 석유라는 실리를 택하고 다른 나라들의 믿음을 잃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처럼 명분과 실리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서게 된다. 두 가지 모두 중요하나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있기 마련이다. 초나라의 양공은 실리보다는 자신의 명예와 명분을 중요시 여겼다. 비록 초나라가 대패하고 양공은 죽게 되었지만 양공은 어질고 훌륭한 인물로 기억되었다. 미국은 이라크를 침략하여 많은 것을 약탈하고 빼앗아 실리를 얻었지만 미국은 침략 국가라는 비난의 화살을 맞게 되었다. 아무리 많을 이익을 얻어도 다른 이들에게 존경 받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면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지금 당장은 미국이 많은 것을 얻었어도 믿음을 져버린 대가로 더욱 많은 것들을 잃을 날이 올 것이다.
 
삼국지에서 유비는 매우 어질고 훌륭한 인물로 나온다. 그가 도원결의를 하고 의병을 모아 황건적을 소탕할 때부터 그는 실리를 버리고 명분을 쫓았다. 신하된 도리로서 돈이나 벼슬을 탐닉하지 않고 오직 황제에게 충성하고 백성들을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그는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믿음을 얻었다. 많은 인재를 모으고 백성들의 마음을 얻은 유비는 촉나라를 세우게 된다. 이처럼 명분을 쫓는 것이 처음에는 고달프고 쓴 결과를 가져올지라도 잃어버린 실리로 인해 사람들의 존경과 믿음이라는 더욱 큰 재산을 얻게 된다.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돈이 아닌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야 한다. 돈은 써버리면 그만이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쉽게 얻을 수도, 쉽게 잃을 수도 없는 매우 귀중한 재산이다. 당장은 실리가 더 좋고 이익이 될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들의 믿음과 존경은 이에 비길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가져온다. 실리만을 쫓다가 더욱 많은 것을 잃을 수 있기에 명분을 우선시해야 한다. 소인처럼 당장 눈앞의 이익만을 보고 실리를 쫓기보다는 군자와 같이 더욱 멀리 내다보고 사람의 마음을 중요시하는 눈을 가져야 한다. (북경한국국제학교 고등부 1학년 공병현)

[실리] 명분보다는 실리가 중요...현실 상황 따져야

우리는 살아가면서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을 해야 될 때가 있다. 법과 양심, 명분과 실리 의 망설임 속에서도 선택이라는 것을 해야 할 경우이다. 이러한 명분과 실리의 망설임 속에서도 명분을 택한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송나라의 양공이다. 그리고 이 같은 상황에서 ‘송양지인’이라는 고사가 나왔다. 실리를 버리고 명분을 택한 양공의 행동은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나는 명분을 선택하고 자신의 군대를 패배로 이끈 양공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공의 행동이 바른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상대방이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 공격하는 것은 비겁한 짓이며, 싸움에 이긴다한들 그 어느 누구도 승리를 인정해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전쟁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전쟁은 자신이 적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하는 것이다. 이러할 때 전쟁의 목적을 잊어버리고 오직 명분이라는 것만을 중시한다는 것은 잘못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남들의 시선만을 중시하여 친구들과는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옳지 못한 친구들과 어울려 결국은 자신도 타락하게 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우리는 때에 따라서 남들의 시선보다는 그리고 명분보다는 실리를 중시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송나라와 초나라와의 전쟁이 바로 실리를 중시했어야 했던 때였다는 것이다.

또한 상대방이 어려울 때 공격하는 것을 옳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상대방이라는 것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자신의 동료와 자신의 적으로 말이다. 자신의 동료가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모르는 척한다면 이는 비겁한 짓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신과 적은 항상 경쟁 사이에 있는 것이며 서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쓴다. 이러할 때에 군자의 명분을 따지고 있는 것은 현실은 무시한 처사이다.

나는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실리를 택하여야 한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때의 현실 상황을 따져보며 올바른 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 것이며, 송나라 양공이 처해 있는 상황에서 명분보다는 실리를 택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북경한국국제학교 고등부 1학년 정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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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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