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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매파 정치인이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입지 확보를 위해 대북 비밀협상을 펼쳤던 아베 신조 전 간사장의 이중적 행태를 비판하는 글을 재일 르포작가 유재순씨가 보내와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 아베 신조 간사장이 자신의 대리인에게 대북 협상을 위임한 위임장. 오른쪽은 아베 간사장 일행의 이중행각을 비판한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02.12. 14)
ⓒ 유재순씨 제공

정략과 전략에 따라 그 행보가 갈지자로 오가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아마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은 것 같다.

일본의 매파, 즉 강경파의 선두주자 정치인으로 대북 경제제재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아베 신조 자민당 간사장 대리가, 북한을 상대로 이중플레이를 한 행각이 드러나 앞으로 일본정가에 그 파문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아베 신조 간사장 대리는 고이즈미 수상이 두 차례(2002년 9월, 2004년 5월) 북한을 방문, 북일정상 회담을 가질 때부터 줄곧 대북외교를 반대해 온 매파 중의 매파여서 이번 그의 이중적 플레이 행각이 일본언론에 보도될 경우 엄청난 파장을 불러 올 것임은 필연적이다.

매파 정치인 아베 간사장의 대북 이중플레이

작년 북한의 외무성 대변인은 일본인 납치 피해 여성인 ‘요코다 메구미’씨의 일본측 유골 감정결과에 대한 아주 긴 성명서를 발표했다(북한측이 발표한 성명서 원문 그대로를 인용한다).

‘12월 8일 일본 내각관방 장관은 일본인 녀성 요꼬다 메구미의 유골에 대한 감정결과 <<본인과 다른 2명의 뼈>>라는 것이 판명되었다고 공표하였다...(중략)...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일평양 선언을 존중하는 립장에서 최대한의 인내성을 가지고 모든 것을 대하였다. 그러나 자민당 간사장 대리 아베와 같은 일본의 극우세력들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국가권력의 최고권좌를 노려 이미 오래 전부터 랍치 문제를 리용하여 <<공적>>을 세워보기 위해 우리를 2중 적인 얼굴로 대해오다가 자기 <<의도>>가 실패하자 악의에 차서 우리공화국을 헐 뜯으며 조일(북일)최고 수뇌상봉에서 이룩된 합의 리행에 결정적인 차단 봉을 내리려 하는 것이다...(이하 생략)"


사실 작년 12월 이 같은 성명서가 발표됐을 때, 한일 언론, 그리고 일본정치인 그 누구 한 사람(?) 앞의 인용한 문장에 대해 특별히 신경을 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저 일본측의 요코다 메구미 유골감정 결과에 대한 북한측의 화풀이 정도이거니 하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우연히 필자가 이에 대한 정보를 입수한 것은 약 열흘 전. 북한에 대한 취재신청을 하기 위해 조선 국적의 재일동포를 만났을 때, 그가 지닌 한 뭉치의 서류를 시선이 갔다. 바로 위의 성명서 전문이었다.

그 중 필자의 시선을 가장 강하게 끈 것이 바로 위에 인용한 문장. 왜냐하면 일본정치인 중 차기 수상 후보 1위를 달리고 있는 아베 신조의 이름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었다.

조선 국적 재일동포가 건넨 서류 한 뭉치

아베 신조가 누구이던가? 일본여당인 자민당 내에서 매파로, 한반도에 관한 한 늘 강경정책을 주장하며 북한에 대해서는 ‘대화’보다는 ‘압력’을, ‘평화’보다는 ‘전쟁’을 더 선호하는 극우 중의 극우 정치인이다.

작년, 전후 일본이 패전한 후 맥아더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 사령부(GHQ)에 의해 제정된, 전장 터에서 무기소지는 물론 전쟁을 금지하는 평화헌법에 대해, 일본이 먼저 ‘선제공격(북한에 대해)을 할 수도 있다’라고 하는 유사법 제정을 통과시킨 선봉장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정치명문가로 알려진 그의 가문을 보면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 전 수상은, 1945년 패전 후 비록 용케도 전범 재판에 회부되는 것은 면했지만 A급 전범으로 분류되기도 한 인물이며, 특히 식민지 시절 당시 조선인들의 강제연행, 징용, 납치를 주도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일본언론들은 아베 신조를 가리켜 비둘기파로 알려진 그의 아버지 고 아베 신타로를 닮은 것이 아니라 그의 외할아버지 기시 전 수상의 복사판이라고 평을 한다.

그의 아버지 아베 신타로는, 다케시타 노부로, 미야자와 전 수상들과 함께 일본정가에서 뉴 리더 정치인으로 각광을 받았던 인물. 특히 아베 신타로는 장인 기시와는 달리 외교정책에 매우 유연하게 대처하는 정치인으로 비둘기파로 분류가 됐다.

물론 이 같은 정치적 성향 때문에 뉴 리더 3인 중 유일하게 수상 직에 오르지 못했다는 소리를 듣긴 했지만, 자민당 간사장, 관방장관, 통산성장관, 외무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친 베테랑 정치인이었다.

그의 아들 아베 신조가 정치계에 입문한 것도 바로 아베 신타로가 외상에 재직 중일 때였다. 귀족들이 많이 다닌다는 세이케이 대학을 졸업한 후 잠시 미국의 캘리포니아 대학에 유학한 뒤, 일본에 돌아와 고베 제철소에서 샐러리맨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아버지인 아베 신타로 당시 외무장관이 그를 불러 들여 자신의 비서관에 채용한 것이 정치 데뷔였다.

당시 아베 신타로는 '코리아 게이트'로 유명한 박동선씨를 사적 대외 로비스트로 기용, 국제외교를 펼쳤는데 그 때 박씨의 소개로 필자도 비서로 있던 아베 신조를 만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때만 해도 아베 신조는 상당히 겸손하고 조용한 성격의 온화한 정치 성향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후 그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극우 정치인으로 변모한 것은 아마도 살아생전 끝내 수상 직에 오르지 못하고 1991년에 타계한 그의 아버지에 대한 한이 맺혀서인지 모르겠다.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복사판 아베

아무튼 기시 전 수상, 아베 신타로 전 외상에 이어 3대에 걸쳐 자민당의 최고 포스트 자리인 간사장 직을 지낸 아베 신조는, 1993년 아버지의 지역구인 야마구치 현에서 처음으로 당선된 후 2000년에는 모리 요시로 정권 내각의 관방 부장차관, 그리고 49세의 3선 의원으로서는 드물게 탤런트 정치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는 고이즈미 현 수상에 의해 전격적으로 자민당 간사장에 임명되어 일본정가는 물론 일본열도를 깜짝 놀라게 했다.

▲ 지난 2004년 7월 11일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도쿄의 자민당 본부에서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이 확정된 당원들 이름위에 붉은 장미꽃을 꽂고 있다. 오른쪽에 박수를 치고 있는 사람이 아베 신조 간사장이다.
ⓒ AP/연합뉴스

하지만 고이즈미 수상도 이때까지만 해도 아베 신조가 자기 뒤에서 배신을 행하리라고는 아마도 꿈에도 상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앞의 북한당국이 발표한 성명서 내용 중 중간 부분의 ‘국가권력의 최고권좌를 노려 이미 전부터 납치문제를 이용하여 공적을 세우려 2중적 얼굴을 대해’왔다는 인물이 다름아닌 아베 신조였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이북 내부에서 아베 제안에 놀아난 사람의 잘못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파렴치하고 용서할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아베 신조입니다. 우리 북조선에 대해 경제제재니 뭐니 하면서 일본에서는 극도로 강경한 대북정책을 주장하는 정치인이 우리에게 와서는 반대로 일본국민들의 정서를 생각해서 마음에도 없는 발언을 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일본의 차기 수상은 바로 자기이니까 납치 피해자 가족들의 일본 귀국은 고이즈미 수상을 통하지 말고 다음 수상이 될 자기에게 밀어달라고 애걸했단 말입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원하는 쌀과 경제원조는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주겠다고 장담도 했습니다. 글쎄 그런 인물이 또 일본에 돌아가서는 정 반대로 이야기를 한단 말입니다.”


북한 소식에 정통한 재일교포의 이같은 발언이 만약 사실이라면 일본정가는 엄청난 파문이 일게 된다. 그래서 그 증거를 보여달라고 열흘 전 북경에서 만난 필자가 요구했다. 그랬더니 아베 신조가 평양에 밀사로 보냈다는 일본인의 북한비자 신청서 복사본을 보여 줬다. 거기에는 이노우에라는 사람의 사진과 명함, 그리고 북한방문 비자 신청내역이 자세하게 적혀 있었다.

"다음 수상이 될 나를 밀어주면 대북 경제원조하겠다"

▲ 아베 신조 간사장의 대리인인 이노우에 요시유키가 작년 1월 16일자로 작성한 북한 비자 신청서. 후지쯔산업 소속으로 돼 있는 이노우에의 방북목적은 '합영실무 '협의'로 기록돼 있다.
북한측의 주장은, 직선적인 정치적 발언으로 대중적 인기가 높은 다나카 마키코 전 외상이자 현 중의원의 아버지인 다나카 가쿠에이 전 수상이 이룩한 중-일국교 수교처럼, 자신도 임기 내에 북일수교를 맺으려는 고이즈미 현 수상의 대북 외교정책에 딴지를 걸지 말라는 것이다.

거기에다 북한에 밀사를 보내서는 일본국민들의 정서를 운운해가면서 일본에서 하는 말, 평양에 와서 하는 말이 180도 다른 그의 이중적 행태를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것도 고이즈미 수상의 정부 라인에서 사람을 보내 북한당국과 한참 교섭을 벌이는 과정에서 비밀리에 밀사를 보내, 자신을 차기 수상 후보로 키워 준 고이즈미 수상을 배반하고 북한 당국에게 자기를 밀어달라고 한 것은 국적을 불문하고 정치인으로서 도의상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아베 신조의 제안에 잠시 흔들렸던 북한 당국은 대일외교 창구를 고이즈미 수상라인으로 단일화 한 덕분에 2004년 5월, 고이즈미 수상이 재방북했을 때 일본인 납치 피해자 가족을 일본에 보낼 수 있었다.

북한 소식에 정통한 재일교포는 요즘 들어 아베 간사장 대리가 대북경제 제재를 더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은 것은, 북한 당국이 자신의 제의를 들어주지 않은 분풀이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뿐만 아니라 ‘자민당 간사장’에서 ‘간사장 대리’로 그 직위가 내려 앉은 것은 혹시 북한에 밀사를 보내 교섭했던 행위가 고이즈미 수상에 발각되어 문책을 받은 것이 아니냐 하는 의견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 일본언론도 고개를 갸웃거려 온 터라 북한측의 주장에 무게를 더하게 한다.

한편 아베 신조는 현재 북한에 대해 한 달 정도의 기한을 두고 북한이 변하지 않을 경우 경제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에 이어, 지난 10일 북한이 핵무기 보유 사실과 6자회담 불참 선언을 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제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다. 경제제재를 가해야 할 여건이 조성되었다’라고 선포했다.

북 "제의 들어주지 않자 아베가 분풀이 하는 것"

한편 이에 대해 주일 하워드 베이커 미국 대사는, 강경 일변도의 아베 간사장 대리의 주장에 대해 “대북 경제제재론은 한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 등과 서로 의논하고 협력해서 내려야 할 결론이다”라고 제동을 걸었고, 우익계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마치무라 노부다카 외상도 "대북제재는 6자회담 진전상황을 보아가면서 한.중.미국 등 관계당국과 협의해가면서 의견을 조정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또한 북한에 대한 정책의 키를 쥐고 있는 당사자인 고이즈미 수상은 10일, 북한이 핵무기보유 사실과 6자회담 불참 선언을 한 뒤에도 ‘대화를 통한 대북외교전략’에 대한 자세를 계속 견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아무튼 고이즈미 수상에 의해 전격적으로 발탁, 파격적인 인사라며 일본정가를 깜짝 놀라게 했던 아베 신조. 그런 그가 일본인 앞에서는 북한 체제를 무너트려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떠들면서 정작 북한에 가서는 대 국민용 발언이었다면서 고이즈미 수상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일본인 납치피해자 가족을 귀국시킨 것처럼 보이게 밀어달라고 했던 교섭 내막을 만약 일본언론과 국민들이 알게 될 경우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고 또 아베 자신은 일본국민들 앞에 어떻게 변명을 할까?

구 일본군 위안부 방송을 둘러싼 NHK방송처럼 방송하지 말라는 압력을 담당 피디에게 가한 적이 없다고 또다시 거짓말을 할까?

▲ 유재순씨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쉽게 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왜냐하면 이미 북한 측에서 그에 대한 거짓말을 예상하고 확고한 증거물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만약 그가 밀사 파견사실을 부인하고 더 나아가 지금처럼 강경한 대북경제 제재를 외칠 경우, 북한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북한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일본언론에 공개할 경우, 그 파문은 일파만파로 번질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말을 믿고 후원했던 일본국민들이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일본의 한 언론사가 이에 대한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재빨리 움직이고 있어, 아베 신조의 그 당당한 대북경제 제재 발언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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