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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7주째인 아내가 잠정적으로 직장을 그만뒀다. 약간의 피가 비치고 계속되는 복통증세로 급하게 병원을 찾은 후 유산기가 있다는 의사선생님의 충고에 따른 것이었다. 주사 한대 맞고 약국에서 약봉지를 받아 들고 나왔지만 걱정이 떠나질 않았다.

기다리는 임산부가 많았던 탓일까? 아니면 워낙 많은 임산부들을 대하면서 늘 봐오던 증세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것일까? 걱정이 돼 이것저것 묻는 아내와 내게 의사 선생님은 "건강한 아이 낳을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 봅시다"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런 의사선생님이 한편으론 야속하기까지 했다. 너무 걱정이 돼 속이 새카맣게 타들어갈 지경이었으니까.

그날 초음파 검사에서 7주째인 아기의 심장이 뛰고 있는 걸 확인한 아내와 나는 안심이 되면서도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유산기가 있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요즘 환경 탓에 잘 자라다가도 이유 없이 유산되는 경우가 많고, 또한 유산될 아기는 어떤 치료에도 불구하고 유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은 아내와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이를 방지하는 방법, 아니 유산될 확률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잘 먹고, 잘 자고, 최대한 편안하게 쉬면서 어느 정도 아기의 몸이 형성될 때까지 기다려보는 것이란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혼자 하는 출근길에서, 사무실에서, 밥을 먹으면서도 걱정스런 마음이 떠나지 않았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아내의 증상을 문장 검색해봤다.

많은 임산부들이 임신 초기에 피가 비치고 배가 약간씩 아프다는 증상 설명이 블로그, 지식검색에 있었다. '남들도 다 그렇구나'하고 안심하다가도 역시 끝에 가서는 '이러한 증상은 초기 임산부들한테 좋지 않은 현상'이라는 정보는 반드시 유산과 관련한 경우가 많았다. 전체 임산부의 20%가 이런 증상을 보이고 이중 몇% 는 유산이 되고.....

모든 걸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최대한 좋은 쪽으로 이끌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우선 아내에게 집안일 총금지령을 내렸다. 식사준비, 빨래, 설거지, 청소 등등. 가능한 한 계속 누워 있도록 했고 너무 오랫동안 누워 등이 아프면 안방, 거실, 건넌방을 한 바퀴 돌아다닌 후 다시 침대에 누워 안정을 취하도록 했다.

덕분에 내 생활은 많이 바빠졌다. 지인들과의 저녁 약속도 모두 취소했다. 일찍 퇴근해 집안일을 돌봤다. 집구석이 지저분한 그 자체가 아내에게는 엄청난 스트레스가 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터라 최대한 깔끔히 집안을 정리했다.

집안일 중 가장 고된 것은 아침 일찍부터 밥을 해야 하는 것이었다. 새벽잠에 푹 빠진 아내를 깨우지 않게 하기 위해 최대한 조용조용 밥을 해야만 했다.

▲ 임신한 아내를 위해 떡볶이를 만들면서 나는 행복한 상상을 했다.
ⓒ 김진실
아내가 퇴직한 날부터 나는 조그마한 도시락을 준비했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절약을 하기로 했다. 하루 3천원 점심 값을 절약해 아내가 죽고 못 살 정도로 좋아하는 떡볶이를 사주고 싶어서였다.

어제는 도시락을 지참하고 출근한 둘째 날이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내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떡볶이 5백원 어치 사가지고 갈까?"
"집에 떡살 있잖아. 직접 만들어 줘."

나는 무릎을 탁 쳤다. 엊그제 점심 때 <오마이뉴스> 윤대근 시민기자님을 만났는데 그가 집에서 만들었다며 떡볶이용 떡살을 꽤 많이 준 것이다. 그날 급하게 병원에 가느라 생각도 못 했는데,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엿, 고추장을 섞어 어설프게 떡볶이를 만들었다. 침대에 누워 있던 아내가 "와, 우리 신랑이 만드는 떡볶이도 먹어보고 오래 살고 볼 일이네"하며 농담을 던졌다. 떡볶이를 만들면서 식탁 한 편에 놓인 초음파 사진을 보며 나는 행복한 상상을 했다.

미래의 어느 날 나의 아이에게 초음파 사진을 가리키며 "이 작은 점이 바로 너야"라고 대화하는 행복한 상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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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소통과 대화를 좋아하는 새롬이아빠 윤태(문)입니다. 현재 4차원 놀이터 관리소장 직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존중하며 착한노예를 만드는 도덕교육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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