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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들도 비정규야! 부모가 가난하니까 고등학교까지만 가르쳤지. 남의 집 애들은 대학교육까지 시키는데…"라고 말끝을 흐리는 김옥자(53, 여)씨는 10월 22일로 파업 109일째를 넘어서는 풀무원 춘천공장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다. 큰아들(29)은 전기 기능공으로 작은 아들(27)은 무직, 막내 딸(25)은 사무직 비정규 여성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한국사회가 직면한 전형적인 비정규직, 청년실업 상태에 놓인 한 가정의 표본이다. 뿐만 아니라 '가난이 대물림' 되고 있는 가정의 표본이기도 하다.

남편과 일찍 사별한 그는 시어머니를 봉양하며 11년 간 경기도 가평에서 강원도 춘천공장까지 매일 아침 8시30분까지 출근한다. 퇴근은 5시30분이지만, 매일 같이 잔업과 야간근무가 밤10시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일요일도 없이 일을 해도 한 달간 자신이 일한 노동의 대가는 100만원이 채 안 된다고 한다. 그의 기본급은 94년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70만원이다.

비정규직 철폐 (왼쪽부터) 민중가수 지민주, 류금신 씨가 문화제에 참석한 노동자들의 다시 한번 노래를 불러줄 것에 화답하는 <비정규직 차별철폐 연대가>를 부르고 있다.
ⓒ 김경목
10월22일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 및 비정규직 철폐 문화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인간답게 살고 싶은 소망의 분출구였다.

민주노총 강원본부 주최로 원주 우산동 상지대학교 들머리에서 저녁 7시부터 두 시간 동안 열린 '결의대회 및 문화제'는 민주노총 강원본부 산하 지역노조와 공무원 노조 원주시지부, 민주노동당 원주시당과 강릉과 원주의 비정규직 일반노조 조합원 200여명이 참가했다.

11월 중순경으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그리고 공무원 노조의 총파업이 예고된 가운데 열린 이날 결의대회 및 문화제는 시작부터 비장감이 감돌았다. 지난 9월 10일 정부는 비정규 노동자의 차별철폐와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겠다는 '비정규 보호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법안의 선언적 의미와 달리 정규직노동자조차 비정규노동자로 전환시킨다는 '알맹이는 없고 껍데기만 존재'하는 개악 법인 탓이다.

"비정규노동자를 양산하는 노무현 정권은 '반노동자 정권'이다"

민주노총 강원본부 김종수 본부장은 대회사에서 "이번 파업은 총자본에 대한 총노동의 투쟁"이라고 정의하면서 "총파업을 두려워한다면 노동자의 생존권과 삶의 터전은 보장받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자본과 정권에게 패배하는 상황이 도래한다면 "노동자는 서서히 죽거나 당장 죽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라고 분노하면서 "죽음의 위기를 막기 위한 방법은 정규직과 비정규노동자 간의 단결과 연대로 당면 위기를 돌파하는 길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일요일은 없다 ▲주5일 40시간 근무 ▲단일 호봉제 도입 ▲대학생 자녀 학자금 지원 ▲종합검진70% 비용지원 ▲임금 12.5% 인상 등을 요구하며 장기파업에 들어간 풀무원 춘천공장의 한 노동자가 '총파업 승리 결의대회 및 비정규직 철폐 문화제'에 참가하고 있다.
ⓒ 김경목
민주노총 강원본부 박경선 비정규위원장은 결의문에서 "이 땅에서 비정규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하면서도 언제나 잘리지 않기 위해 노예처럼 살아간다는 것을 말한다"면서 "비정규 노동자들은 거짓인줄 알면서도 노무현정권의 거짓말을 믿고 기다려 왔다. 그러나 비정규 노동자에게 돌아온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차별 받지 않을 권리마저 빼앗겼으며, 비정규 노동자를 더욱 더 확산시키려는 비정규입법 개악안만이 돌아왔을 뿐"이라고 노무현정부에 대한 포문을 열었다.

결의문은 또 "비정규노동자에 대한 차별은 노무현 정권을 비롯한 역대 정권의 친자본적인 노동정책과 신자유주의 논리에 입각한 자본의 노동자 억압정책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그로 인해 차별이 더욱 더 심화된 것"이라며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자본의 손에 맡기려는 노무현 정권은 반노동자 정권"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연대사에 나선 공무원노조 원주시지부 이기상 위원장은 "공무원은 노동자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공무원 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11월15일경으로 잡힌 전공노의 총파업에서 반드시 노동 기본권을 쟁취할 것"이라고 결의했다.

저녁 7시30분 2부 행사로 준비된 '비정규직 철폐 문화제'는 공무원노조 원주시지부 노래패 <어울림>의 '주문'과 '노래만큼 좋은 세상'으로 이어진 노동가요로 시작됐다.

이날 초청 받은 민중가수 김성만, 류금신, 지민주씨도 들불처럼 타오르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분노를 민중의 노래로 표현했다.

김성만씨는 "지난해 10월26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비정규노동자도 사람이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며 분신 사망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노조 이용석 열사의 절규를 잊지 말자"고 당부하면서 "비정규직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위해서 전면적인 총파업 투쟁에 나서자"고 말문을 열었다.

"저 높은 철탑 위에서 혹한의 바람이 와도 우리는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살아도 또 살아도 아아 노동해방, 죽어도 또 죽어도 넋이라도 울부짖는다. 또 다시 또 다시 총파업이여…."

그가 이용석 열사와 200여명의 노동자들을 위해서 부른 <불패의 전사들>의 일부분이다.

노동자여 해방을 선언하라! 이날 결의대회 및 문화제 사회를 맡은 민주노총 원주시협의회 김진혁 사무국장은 "총파업 결의로 비정규 개악법 안을 저지하자"고 말했다.
ⓒ 김경목
민노총 강원본부 25일부터 '총파업 승리' 위한 구체적 행보 돌입

민주노총 강원본부 김종수 본부장은 "10월 25일부터 총파업투쟁 승리를 위한 '강원지역 투쟁실천단을 꾸린다"고 밝혔다. 실천단은 민노총 강원본부 산하 사업장을 순회하며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열고, 비정규노동자들에게는 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와 동시에 총파업 찬반투표도 실시할 계획이다.

민노총 강원본부가 투쟁 실천단으로 총파업을 준비한다면, 공무원노조 강원본부는 지난 8월 21일 충북 옥천에서 열린 전국대의원대회에서 확정한 하반기투쟁계획에 따라 지부별 비상총회와 결의대회를 열고 투쟁기금 등을 모금했다. 공무원노조 강릉시지부의 경우 지난 20일 지부 비상총회를 열어 투쟁위원회 체제로 돌입하고 파업출정식을 벌였다. 25일부터는 강릉시공무원복무조례 및 근로기준법에 따라 '중식준법투쟁'에 들어간다.

이밖에 원주지역을 소재로 두고 있는 중부일반노조와 강릉비정규노조는 원주 상지대학교와 강릉대학교를 상대로 각각 사내하청으로 고용된 '청소용역 노동자의 직고용 승계'를 쟁점으로 하청업체와 원청인 대학을 상대로 교섭에 들어간다.

강원지역의 경우 이번처럼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대단위 총파업 결의준비를 한 적이 없었다. 지난 1996년 말 정리해고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일어난 97년 노동자 총파업과는 규모와 노동자의 의지 측면에서 대조적이다. 그만큼 노동자들이 삶의 위기를 피부로 느끼고 있는 탓이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조직되지 못했던 비정규사업장들이 하나둘 조직되면서 민주노총 강원본부의 힘을 실어주고 있다.

민주노총 원주시협의회 김진혁 사무국장은 "상지대학교 청소용역노동자들의 평균 나이는 60세임에도 불구하고 직고용 승계를 위해 투쟁하고 있다"고 젊은 노동자들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그는 "우리들이 총파업 결의와 조합원 찬반투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내어 거리를 온통 노동자들의 함성으로 가득 메운다면, 하반기 투쟁은 노동자의 승리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4년 가을, 노무현 정부는 자본의 요구대로 노동자의 사지를 옥죄기 시작했고, 노동계는 사슬을 끊기 위해 총파업을 경고했다. 건조한 가을산은 조그만 불씨에도 모든 것을 태워버리기 마련이다. 다가오는 11월이 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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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강원정치 대표기자, 2024년 3월 창간한 강원 최초·유일의 정치전문웹진 www.gangwoninnews.com ▲18년간(2006~2023) 뉴시스 취재·사진기자 ▲2004년 오마이뉴스 총선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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