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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상사 보광전
ⓒ 박도
'실상(實相)'이란...

'실상(實相)'이란 "만물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 모든 것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으로 곧 본체(本體)"라고 사전에는 풀이하고 있다. 그렇다면 실상사(實相寺)란 '만물의 본체를 자세히 따져서 밝히는 선사(禪寺)'인가?

실상사 선방에서 만난 도법 스님은 "생명의 진실을 규명해서 문제 해결해야만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런데 평생을 수도한 선사도 '생명의 진실', '삶의 본체'를 찾지 못한다는데, 어찌 나와 같이 오욕칠정을 가진 예사사람이 잠깐 동안 삶의 실상을 알 수 있겠는가.

아래 불가의 선시(禪詩)는 평소 내가 좋아하는 글로, 마음이 몹시 흔들릴 때 곱씹으면 조금은 고요해진다.

삶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난 것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다
뜬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삶과 죽음의 오고감이 또한 이와 같은 것이다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一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然


▲ 우리 옷 만들기 실습실
ⓒ 박도
지난 여름 아내가 인드라망 생명공동체가 주관하는 '생태농업 4계절 체험 여름 가족캠프'에 간다기에 따라 나섰다.

아내는 몇 해 동안 해마다 실상사에서 갖는 체험 학습 프로그램 중의 하나인 '우리 옷 만들기'에 강사로 나갔다. 올해는 후배에게 그 자리를 물려준 터라, 다만 교육이 끝나기 전날 참석해서 수강생들이 만든 작품을 한 번 살펴보고, 뒤풀이를 함께 해달라는 청을 받고 가는 길이었다.

요즘은 고속도로가 사통오달 거미줄처럼 잘 연결돼 있다. 안흥 집에서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출발해도 오후 2시 30분 무렵 실상사 들머리 인월 IC에 도착했다. 그때는 한여름 날이라 해는 아직도 겨울 하루해만큼은 더 남았다.

▲ 지리산 뱀사골 계곡
ⓒ 박도
그동안 지리산은 몇 차례 와봤지만 뱀사골 계곡은 가 보지 못한 터에, 마침 인터체인지를 벗어나자 뱀사골 안내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아내에게 부탁하여 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잠깐 주차간산(走車看山)할 셈이었다.

뱀사골 계곡은 소문대로 매우 깊고 경치가 좋았다. 다만 비경(秘境)의 계곡으로 오르는 길섶은 온통 자동차들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골짜기는 마치 도심의 풀장처럼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이 붐비는 게 나그네의 이맛살을 찌푸리게 했다.

잠시 머무는 것조차도 공해라 노고산을 오르는 지점에서 차를 되돌렸다. 실상사에서 조금 떨어진 귀농전문학교에서 하룻밤을 신세진 후 이튿날 아침 실상사로 내려갔다. 실상사 어귀에는 다음과 같이 안내하고 있다.

▲ 실상사에서 바라본 천왕봉
ⓒ 박도
지리산 천왕봉을 마주하고 자리한 이 절은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에 흥척스님이 처음 세웠다. 신라 말기 교학보다 참선을 중시한 선종의 여러 종파가 전국 명산에 절을 세웠는데, 실상사가 그 중 하나다. 정유재란(1597) 때 모두 불타 숙종(1674~1720) 때 건물 36동을 지었으나, 고종 때 화재를 당해 현재의 소규모로 복구하였다.

실상사는 훌륭한 스님을 많이 배출하여 한국 선불교의 위상을 드높였다. 경내에는 국보인 백장암삼층석탑을 비롯하여 보물 등 많은 문화재가 남아 있어, 이 절의 역사적 의의와 품격을 대변해준다.

천왕봉을 정점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자락이 절 앞으로 성큼 다가와 부처의 자비를 보이듯 포근히 감싸 안고, 지리산에서 발원한 맑고 투명한 반선계곡 물이 속세의 번뇌를 씻어주려는 듯 절 옆을 돌아 굽이쳐 흐르고 있다.…


삶과 죽음이 한 조각 뜬구름...

아내가 일찌감치 공양간에서 봉사를 하기에, 그 덕분으로 점심 공양을 든 후 도법 산사의 즉문즉설 설법을 들었다. 좋은 말씀이었다. 녹음기를, 노트를 지참치 않은 게 후회됐다.

인생 60을 '이순(耳順)'이라고 한 바, 이제는 어떤 말이라도 이해는 되지만, 그 반면에 기억이 좀체 되지를 않는다. 선사의 많은 말씀 중 그래도 이제까지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다음 두 마디다.

▲ 천왕문의 사천왕상
ⓒ 박도
"사람들이 똥오줌을 더럽다고 하는데 그것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삶의 근원 문제를 경제 논리로 풀려면 오히려 싸움판을 만들어놓는다"


말씀이 좋았지만 다 듣지 못하고 가는 길이 멀기에 중간 쉬는 시간 슬그머니 실상사를 벗어나서 북행 길에 올랐다.

삶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난 것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다


▲ 지리산 멧부리 장관
ⓒ 박도

▲ 본존불상
ⓒ 박도

▲ 실상사 3층석탑(보물 제37호)
ⓒ 박도

▲ 철제여래좌상(보물 제41호)
ⓒ 박도

▲ 선사의 설법에 귀기울이는 구도자들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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