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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대 보건행정학부 김원중 교수팀의 2003년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수면내시경 수술 환자에게 수면제를 과다 투약해 숨지게 하거나 거즈나 수술 가위 등을 체내에 남겨둔 채 수술 부위를 봉합하는 등 의료사고가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의료 과실로 한국에서 해마다 적어도 4500명, 많게는 1만명 가량의 환자가 숨진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미국은 어떻게 그러한 문제에 대처하는지를 살펴봄으로써 한국 내의 의료 분야 개혁을 촉구하고자 이 글을 올립니다.

미국 내 50개 주(州)들 중 약 30개 주에서는 의사들의 의료 과실 관련 정보들을 주의료위원회(State Medical Board)가 수집, 관리해서 인터넷을 통해 일반에 공개한다.

이 제도를 시작한 첫번째 주인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주의료등록위원회(Massachusetts Board of Registration in Medicine)가 주 내에서 의료 활동을 하는 의사들의 경력, 전문 분야, 병원 주소뿐만 아니라 과거 10년 동안의 의료 과실 법정외 합의, 과거 10년 동안의 의료 과실로 인한 처벌, 과거 10년 동안의 전과 기록 등의 정보들을 1997년부터 일반에게 인터넷으로 공개하고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되는 이유는 수준 미달의 의사들을 퇴출해서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과 재산을 지키고 의료 과실과 관련된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이다.

이러한 제도가 시행, 추진되는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미국 내의 의료 실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신뢰 받는 비영리 시민단체인 퍼블릭 시티즌이 미 의회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에서 예방 가능한 의료 과실로 인해 매년 적어도 4만4000명에서 9만8000명으로 추산되는 환자들이 사망하고 훨씬 많은 수의 환자들이 건강과 재정적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의 의료 체계가 낙후하다거나 미국 의사들의 질이 낮다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는 소수의 수준 미달 의사들이 의료 과실을 반복적으로 자주 일으키고 있다. 미국국립의료인자료은행(National Practitioner Data Bank)의 2002년도 발표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02년까지 단 5%의 의사들(20명 중에 1명 꼴)이 전체 의료 과실 관련 합의금 지급의 54%를 차지했다. 즉 소수의 문제 의사들에 의해서 집중적인 환자들의 피해가 야기되고 의료 과실과 관련된 사회적 비용이 대폭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실정 하에서 의사들을 감독하고 의료 서비스의 질을 감시해야 할 의무가 있는 각 주의 주의료위원회(과반수 이상의 위원들이 의사)들은 문제 의사들을 관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중요한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

미국국립의료인자료은행의 2002년도 발표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02년까지 5건 이상의 의료 과실 관련 합의금 지급을 초래한 의사들 중 단지 17%의 의사들(6명 중에 1명 꼴) 만이, 또한 10건 이상의 의료 과실 관련 합의금 지급을 초래한 의사들 중 단지 32.1%의 의사들(3명 중에 1명 꼴) 만이 주의료위원회에 의해서 징계(경고, 집행유예, 면허정지, 면허박탈)를 받은 실정이다.

미국 내의 의사들과 의료 과실 보험회사들은 반복적으로 의료 과실을 범하는 수준 미달의 의사들을 찾아내서 퇴출시킴으로써 환자들의 권익을 지키고 의료 과실 보험 비용을 절감하는 합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에 오히려 환자들의 소송 지향적인 태도가 문제의 본질인양 오도해 왔다(실제로는 예방 가능한 의료 과실들 중에 단지 12.5%(8건 중 1건 꼴) 만이 의료 과실로 제기된다). 그리고 피해를 당한 환자들이나 유족들이 법정에서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 로비 활동을 벌여 왔다. 결국 의료 과실과 관련된 사회적 비용은 결국 소비자인 환자들에게 전가됐다.

대다수 의사들의 집단이기주의와 감독기구인 주의료위원회들의 책무 소홀로 인해 환자들이 겪은 실제 피해 사례를 살펴 보자.

텍사스 주 휴스턴에서 1984년부터 의사 면허가 정지되기까지 약 20년간 활동했던 에릭 쉐피(Eric Scheffey)라는 척추전문 정형외과 의사는 그 기간 동안 불필요한 시술, 과다 청구, 그리고 수준 미달의 시술 등의 이유로 78건의 의료 과실 피해 제기를 당했다. 같은 기간 동안 일반 척추전문 정형외과 의사들은 평균 10건의 피해 제기를 당했다. 의료 과실 보험회사들은 그 중 45건의 법정외 합의 비용으로 1300만달러(약 146억원)를 지급했다.

형편 없는 수술 기술의 소유자였던 그는 26세의 경증 디스크 여성 환자를 평생 기저귀를 차야 하는 불구자로 만든 적도 있었고 43세의 디스크 환자를 과다 출혈로 사망시킨 적도 있는 등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했을 뿐만 아니라 코카인 복용으로 체포되기도 했다. 하지만 텍사스 주 의료 감독위원회는 그 문제 의사로 인하여 수십명의 환자들이 생명과 건강을 잃고 경제적 손실을 당했던 20년 동안 단지 몇 차례의 경징계를 내렸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2003년에야 면허정지처분을 내렸다.

이러한 실례를 통해서 보듯이 주 의료위원회는 문제 의사들을 징계하거나 퇴출시키는 데 소극적이다. 문제 의사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제도의 부재 하에서는 소수의 불성실하거나 무능한 의사들에 의해 환자들이 큰 피해를 보기 때문에 환자들에게 의사들의 주요한 의료 과실 정보를 공개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대다수의 정상적인 의사들은 이러한 제도에 의해 별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염려할 필요가 별로 없다.

의사들의 반발과 시행상의 문제점

의료 과실 정보 인터넷 공개 제도에 대해서 의사들의 집단적 반발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다.

매사추세츠 주의사협회의 전 회장인 바바라 라켓이라는 의사는 의료 과실 정보 공개 제도 하에서는 의료 행위 연수가 짧은 젊은 의사들의 의료 과실 기록이 아무래도 적기 때문에 오랜 연륜의 의사들보다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의료 과실 피해 제기가 잦을 수밖에 없는 고위험도의 시술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들이 환자들에 의해서 잘못 판단될 수도 있다고 우려한다.

또한, 펜실베이니아주 의사협회의 대변인인 척 모런은 공개된 의료 과실 정보로 인해 환자들이 의사들의 실력에 대해 잘못된 인상을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인터넷에 등재되는 의료 과실 소송의 횟수때문에 특정 의사가 실력이 없다는 잘못된 인상을 갖게 되거나 단지 비싼 재판 비용을 피하기 위해 보험회사들이 법정외 합의를 유도하는 경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정외 합의가 특정 의사가 과실 책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

이들의 공개 반대 이유를 요약하자면 소비자인 환자들이 서비스 제공자인 의사들이 범한 의료 과실에 대한 정보를 접하는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환자들이 공개된 정보를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지가 의문이라는 것이다.

그에 대한 반론으로 '공평을지향하는펜실베이니아시민들'이라는 시민단체의 대변인인 단 피는 의료 과실 정보 공개에 반대하는 의료인협회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단지 방법론적인 이유 때문에 상식적인 개혁을 반대함으로써 수준 미달인 의사들에 의해 더 많은 환자들을 위험에 처하게 한다고.

의료 분야의 개혁을 지향하는 미국의 많은 풀뿌리 시민단체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료 과실 정보 공개 제도는 매우 소수의 자격 미달의 의사들을 추려 내자는 것이 주된 목적이고 정보 공개 방식을 합리적으로 만듦으로써 정상적인 의사들에 대해서 소비자들인 환자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게 하자고. 가령 과거 10년 동안의 모든 의료 과실 문제 제기 횟수 대신에 처벌이나 법정외 합의로 귀결된 주요한 의료 과실 분쟁이 3건(고난이도 의료 분야의 경우는 4건) 이상일 때만 그 기록을 공개하는 식으로 말이다.

실제로 가장 먼저 의료 과실 정보 공개 제도를 시작한 매사추세츠 주의 주의료등록위원회 이사인 낸시 오더시에 의하면 의료 과실 정보 공개에 반대하기 위해 많은 의사들이 제기했던 우려스러운 예측들은 전혀 현실화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펜실베이니아 주하원 의원인 톰 탠그레티는 의료 과실 정보 공개 제도는 의료 과실 보험 비용 절감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펜실베이니아 주 내에서 40%의 의료 과실과 관련한 지급의 책임이 있는 2%의 의사들의 신상이 공개된다면 환자들이 그들을 외면함으로써 문제 의사들이 퇴출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의료 과실과 관련된 보험회사의 지출이 감소해서 정상적인 의사들의 보험료가 내려가는 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 물론 가장 중요한 점은 문제 의사들의 퇴출을 통해 많은 환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황

기득권에 집착하는 의사들은 현실적 필요에 근거한 취지가 정당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왜곡하며 방법론적 문제를 제기하면서 개혁에 반대한다. 하지만, 의료 과실 피해 당사자이자 의료 개혁의 최대 수혜자인 미국 시민들은 자주적으로 합리적인 대안 제시를 통해 값진 개혁을 이루어 내고 있다.

환자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생명과 건강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고, 의사들의 입장에서는 의료 과실 보험료 절감의 득을 보고, 사회적으로는 보험료 지급액과 법률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모두에게 유익한 제도라는 것이 나날이 증명되고 있다.

의료 서비스의 소비자들인 환자들이 의료 서비스 제공자인 의사들에 대해서 아는 것이 당연하다는 당위성뿐 아니라 현실적인 유익때문에 의료 과실 정보 인터넷 공개 제도를 시행하는 주들의 수는 계속 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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