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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지금은 키가 180cm이지만 그 때는 키가 160cm도 안될 정도로 작았습니다. 성격은 소심했고, 사춘기 때라 얼굴에는 여드름이 덕지덕지 했습니다.

강원도 화천 중학교를 다녔는데 남녀공학이었습니다. 그 시절 내 관심은 부끄럽게도 여자였습니다. 여자에 대하여 그리고 성에 대하여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풋내 나는 사춘기 시절이었습니다.

우리 집안이 기독교 집안이라 생활환경이 매우 보수적이었는데, 그런 틈바귀에서도 나는 성적 호기심으로 늘 목말라 했습니다. 우리 학교에서 제일 인기 있었던 선생님은 미술 선생님이셨습니다. 키는 조금 큰 편이고, 얼굴은 갸름하고 다리는 늘씬하게 쭉 뻗었습니다. 미술 선생님은 모든 남학생의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그 시절, 미니스커트가 유행했는데 미술 선생님은 하루도 안 거르고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타나시는데, 애들의 시선은 선생님의 늘씬한 종아리에 가 있었습니다. 목소리도 꾀꼬리 같았습니다. 수업 시간에 미술이론을 차근차근 설명하시는 모습을 보면 공연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가슴이 두근두근 거렸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여드름은 덕지덕지하고 까까머리 짓궂은 녀석들이 선생님의 팬티를 훔쳐보는 게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교실을 왔다 갔다 하시며 미술지도를 하시는데, 애들이 의자에서 몸을 수그려 조그만 화장거울로 선생님 미니스커트 밑에 대고 팬티 감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애들 사이에는 이런 말이 오고가곤 했습니다.

“오늘은 미술 선생님이 빨간 팬티를 입고 왔네! 야, 쥑여준다. 내일은 무슨 빤스 입고 올라나 기다려지네?”
“야, 나는 노란 빤스가 더 이쁘던데.”
“야, 미술 선생님은 빤스가 총천연색 시네마스코프로 있나봐! 만날 색깔이 바뀌는 걸 보니.”


그러면서 선생님의 팬티를 공책에 스케치해서 수업시간에 돌려보곤 했습니다. 미술 선생님이 우리 학교 초임이셨는데 애들이 그런 짓궂은 장난을 한다는 걸 다 눈치 채고 계셨을 텐데 여전히 미니스커트를 입고 학교에 오셨습니다. 미술 선생님이라서 미적인 감각 때문에 그랬을까요?

나중에는 애들이 더 용감해져서 아예 선생님 미니스커트 밑으로 고개를 갖다대고 직접 선생님 팬티를 감상하곤 했습니다. 선생님 팬티 이야기는 중학교 전체에 파다하게 퍼졌고, 사내 녀석들이 모이기만 하면 미술선생님 팬티 얘기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술수업이 거의 끝나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날 그린 그림을 선생님이 직접 하나하나 걷는데 애들이 작당을 해서 선생님 옆에 서너 놈이 서 있게 하고, 다른 애들이 교단에까지 진출해서 교대로 선생님 팬티를 감상하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이 시간을 끌며 그림을 제출하는 사이, 선생님은 교탁에 양팔을 집고 있었습니다. 교실 안은 혼란스러웠습니다. 바로 그 틈을 타고 아이들이 교단에 올라가 엎드려 선생님 팬티를 감상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 팬티를 본 녀석들은 재미있다고 입을 막고 키득 키득거렸습니다.

나는 아이들이 그 짓을 하는 것을 구경하면서 교단 오른 쪽에 서 있었는데 선생님이 갑자기 고개를 뒤로 휙 돌리셨습니다. 서너 놈이 선생님 미니스커트 뒤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고, 나는 그와는 거리가 있었지만 교탁 옆에 엉거주춤 서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얼마나 놀라셨는지 얼굴을 찡그리시더니 그대로 교실을 나가 버리셨습니다.

그 다음 시간은 점심시간이었습니다. 잠시 후 담임선생님이 나타나셔서 ‘누구누구’ 하고 이름을 부르는데 내 이름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부르는 놈들은 얼른 교무실로 와! 점심먹지 말고 와! 네놈들은 죽을줄 알앗!”

우리 담임선생님 별명은 ‘울퉁불퉁’이었습니다. 화가 나면 신고 있던 슬리퍼로 얼굴을 때리는 괴팍하고 무서운 선생님이셨습니다. 다섯 녀석이 교무실에 불려갔습니다. 선생님은 화가 단단히 나셔서 엎드려뻗쳐를 시키더니 대걸레 자루로 ‘빳다’를 치셨습니다.

교무실은 선생님들이 도시락을 잡수시면서도 우리가 맞는 것을 구경하고 계셨습니다. 다행히 미술선생님은 자리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빳다를 맞고 나서 담임선생님은 “너희 같은 놈들은 퇴학을 시켜야 정신을 차릴 놈들이야!” 그러면서 한참동안 훈시를 하더니 다짜고짜 반성문을 써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사실대로 쓰라고 하셨습니다. 16절지 갱지를 두 장을 나눠주시면서 두 장 가득하게 쓰라는 것입니다. 선생님은 누누이 “사실대로”를 강조하셨고, 하나도 빠트리면 안된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반성문을 쓰는 시간은 한 시간이었습니다.

다섯 녀석은 교무실 복도로 쫒겨나서 무릎을 꿇고 반성문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반성문을 쓰기는 써야겠는데 쓸 말이 없었습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나는 억울했습니다. 나는 거기에다 대충 이렇게 썼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선생님, 저는 정말 억울합니다. 저는 오늘 맹세코 선생님 빤스는 못 봤습니다. 사실 선생님 빤스를 좀 볼까 해서 교탁 옆에서 얼씬거리다 미술선생님이 고개를 돌리자 거기 제가 서 있어서 선생님이 저도 선생님 빤스를 보신 줄 오해하셨던 같습니다. 저는 선생님 빤스를 못 보았으니 무죄라고 생각합니다.”

대충 이런 요지였습니다. 담임선생님이 내 반성문을 읽다가 갑자기 박장대소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랬더니 다른 선생님들까지 달려와 내 반성문을 읽고 웃으시는데, 남자 선생님들은 오늘 벌어진 사태를 은근히 즐기는 것 같았습니다.

후에 나는 내가 무죄라는 사실을 미술선생님께 얘기하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습니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다닐 때 중학교 미술 선생님은 내 친구 형님과 결혼했습니다. 친구 형님은 고등학교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런데 웃기는 것은 그 다섯 명의 범인 가운데 한 놈이 바로 시동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까지도 나의 무죄함을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오해를 풀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치기어린 청소년 시절 짓궂은 행동이었지만 가장 재미있던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궁금한 것은 나는 유죄입니까 무죄입니까?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아련하게 떠오르는 청소년 시절을 생각하며 쓴 것이지 미술선생님을 조금이라도 욕되게 하는 심정으로 쓴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경험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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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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